1)
아빠 가시고기가 왜 죽어버리는 걸까.
책에는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았어. 하지만 뻔하지 뭐. 새끼 가시고기들을 지키기 위해 있는 힘을 몽땅 다 써버린 탓이겠지.
가시고기는 언제나 아빠를 생각나게 해. 그럴 때면 내 마음속에서는 슬픔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
아, 가시고기 우리 아빠. p.14
2)
사락골에 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저절로 그렇게 됐어.
사락골에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 조금 갑갑하긴 했지만 즐거웠어. 아빠 얼굴도 언제나 햇살처럼 밝았고.
살고 싶어.
살 수만 있다면 약이든 주사든 견뎌낼 자신이 있어. 그동안 내가 훌쩍 컸다는 뜻일까? 하여튼 난 살고 싶어.
사락골에서처럼 다시 즐거웠으면 좋겠어. 그러면 아빠의 얼굴도 다시 환해지겠지. p.15
3)
외국에 맞는 골수가 있는지 알아보는 일은 굉장히 까다로웠습니다. 다행히 의사선생님과 예전에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일본에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다움이에게 맞는 골수를 가진 사람을 찾았습니다.
미도리.
스물다섯 살의 일본 여성이었습니다. p.30
4)
“치료받고, 치료받고, 자꾸만 치료받았잖아. 그때마다 아빠는 마지막이라고 했어.”
내가 투덜대자 아빠는 크게 고개를 흔들었어.
“이번에는 달라. 진짜 마지막.”
“어떻게 달라?”
“다움이의 병은 나쁜 나무와 비슷해. 옛날 치료는 나무를 베어낸 거야. 그런데 나무 뿌리가 살아서 자꾸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냈거든. 이번에는 의사선생님들이 나쁜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기로 했단다. 이제 더 이상 재발은 없어. 다시는, 다시는.” p.45
5)
“다움이를 나한테 넘겨. 당신은 포기해.”
“넘기라고? 포기하라고? 아이를 물건처럼 이야기하는군.”
“말꼬리 잡지 마. 이제부터는 내가 다움이를 책임지겠어.”
“뒤늦게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프랑스에 있는 동안 내 마음은 편했을 것 같아?”
“다움이 엄마인 건 인정해. 하지만 다움이는 절대로 데려갈 수 없어. 절대로!” p.67
6)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악성 종양입니다. 간단히 말해, 간암입니다.”
아빠의 귀에 의사선생님의 말이 더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귀가 먹먹해지고 머릿속이 텅 비워졌습니다.
빛도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중력 공간으로,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p.99
7)
결심하고 또 결심했어. 아무리 힘들어도 이번에는 꼭 이기고 말 거야. 아빠를 다시는 슬프게 만들지 않겠어.
건강해져서 퇴원할 날만 생각하기로 했어. 다른 생각을 하면 머리만 더 아프니까.
아빠 손을 잡고 사락골에 갈 생각을 자주 해.
그때 흰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어. 눈을 밟아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해.
사락골에는 눈이 오면 지붕까지 쌓인대. 오히려 잘 됐지, 뭐. 아빠랑 눈을 치우고 그 눈으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