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쪽
제가 만났던 마스터 조향사들, 니치 향수 브랜드 설립자들과의 향기로웠던 시간을 통해서 그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향수를 만드는지, 또 지금까지 향수에 관해 제가 배운 내용, 왜 사람마다 향수를 다르게 느끼는지 등에 대해 적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향수 매장에 갔을 때 자주 듣는 향수의 계열, 노트에 따른 향수들, 향수 시향하는 방법 등과 관련해 제가 평소에 자주 들었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적었습니다.
13쪽
내게 맞는 향수를 찾는다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알아나가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향수를 조금 더 편안하게 즐기고, 향수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자신을 알아나가길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22-23쪽
“저는 향수를 만들면서도 수많은 경쟁에서 실패했어요. 인생은 그 자체가 고난과 시련이며, 우리는 시련을 친구로 여길 수도 있고, 적으로 여길 수도 있어요. 저는 시련을 친구로 여기기로 생각했어요.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에요. 실패를 통해 배우지 않는다면 그게 진짜 어리석은 거예요. 똑같은 실패를 계속할 수는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나쁜 것으로 보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실패는 배움의 승리다.’라고요.”(프란시스 커정과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64쪽
“당신의 꿈이 당신이 누구인지와 일치하는지 확실히 해야 해요. 당신의 성격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을 꿈꾸지는 마세요. 그 꿈이 다른 사람들의 것이 아닌, 당신의 꿈인지 확실히 알아야 해요. 그러고 나면 당연한 말이지만, 끈질기게 하세요! 열정을 가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에요. 우리는 보통 우리가 소질 있는 것에 열정을 갖게 된답니다. 기어코 밀고 나가세요.” (프레데릭 말과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165쪽
(눈 수술 후) 계속 엎드려 지내야만 했기에 숨을 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향수들을 오른편에 두고서 공기 중으로 분사하고는 했습니다. 특정한 향 하나만을 지정하게 되면 그 향을 만날 때마다 이 수술 후의 시간이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다양한 향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전신마취 수술을 했을 때 병원에 들고 갔던 향은 지금까지도 선뜻 다시 맡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움직이기도 힘들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지만 그렇게 다른 향수를 맡으면서 조금은 다른 공간으로, 시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향수가 가진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이지 않는 순간에 보이지 않는 향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169쪽
“우주에서는 무슨 향이 날까?”
우주 비행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쓰고, 스모키하고, 아크 용접할 때 날 듯한 금속 향이 난다고 합니다. 은하의 중간에 있는 거대한 우주진운dust cloud, 궁수자리B2Sagittarius B2에는 많은 프롬산 에틸ethyl formate이 있으니 라즈베리와 럼의 향을 닮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해적의 술이라고 알려진 럼rum, 럼주 중에서 가장 유명한 바카디 특유의 풀장 소독약 내음이 떠오르는 그 향에 라즈베리를 더한 향, 럼 앤 라즈베리Rum and Raspberry 칵테일을 떠올렸습니다.
173쪽
향수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존재하게 합니다. 그 향기가 바람을 만나 세상을 여행할 때 누군가에게 좋은 감정, 기억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그게 제가 바라는 제 인생이라는 향수입니다.
181쪽
인간인 우리에게 향은 기억과 감정을 그리게 만들어주는 물감이고 붓이니까요. 그리고 그 ‘기억Memory’과 ‘감정Emotion’이 바로 ‘나ME’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향수가 나만의 고유한 기억과 감정을 찾고, 원하는 기억과 감정을 만들고, 나를 찾아가는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190쪽
향수의 향을 맡을 때 그 향이 내게 선사하는 감정과 기억에 초점을 맞춰보세요. 조향 인스트럭터들인 파리 라티잔 파퓨미에르의 셀린느와 퍼퓨머리 프라고나르의 샹탈 모두 제게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향수의 원료를 시향하고서 그 향의 이름이 무엇인지 맞추려고 하지 말라고요. 그 향의 이름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향을 통해 만나는 우리 안의 기억과 감정이 중요하다고 하면서요.
246쪽
기존 향수 프레임에 넣기 어려운,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향수들이 많이 출시되면서 더 이상 향수를 성별로만 구별 짓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별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남녀공용 향수, 성별 없는 젠더리스 향수는 일부 특정 향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향수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277~278쪽
독일의 센트 커뮤니케이션의 로베르트 뮐러 그뤼노브Robert Müller–Grünow는 저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아침 눈을 감고 몇 개의 향을 맡고 난 후 그 향을 말로 설명하는 방식을 권했습니다. 차츰차츰 맡는 향의 숫자를 늘려가면서 말이죠. 중요한 것은 향이 불러일으키는 순간을 기억해보고, 언어로 설명해보려 시도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는 “나 자신이 이해한 향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이 추상적인 활동은 정말 어려워요. 나의 감정, 나의 기억에 집중하는 그 행위는 결국 두뇌에 좋은 훈련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향을 맡는 것은 두뇌를 활성화시키는 것과 같다는 말과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