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수십 년간 지적 장애에 관심을 기울여온 한 역사학자가 1700년대부터 현재까지 영국과 유럽사에 퍼져 있는 지적 장애 및 지적장애인의 역사를 추적한 이야기다. 먼저 일상 속의 재판 기록과 속어, 유머, 소설, 시, 풍자만화, 회화, 기행문학 등 다양한 대중적 창작물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낸다. 그리고 18세기부터 서구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지적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관념 및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사상, 지능 및 인종주의에 관해 깊숙이 파고든다.
- 재판 기록과 속어, 유머, 소설, 시, 회화, 풍자만화 같은 수많은 자료 수집을 통해 지적장애인들의 과거 이야기와 다른 동시대인의 생각과 사고방식까지 읽어냈다.
18세기, 19세기 지적장애인에 대한 판결 내용과 증언들을 흥미롭게 서술하고, 평범한 거리에서 들을 수 있었던 속어 사전과 만담집 등에서 이들에 관한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찾아낸다. 워즈워스의 시, 디킨스 소설, 풍자만화가 길레이, 윌리엄 호가스의 그림 등 이 대표적이다.
- 19세기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수많은 지적장애인이 외딴 시설에 격리된 이른바 ‘대감호 시대’에 주목하고 증언 등을 통해 그 안에서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지적장애인은 빅토리아 시대 개혁 대상자 중 가장 열등한 집단에 분류되어 처음에는 구빈원으로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백치는 고칠 수 있는 병도 아니었기에 새로운 시스템에서 문젯거리가 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소수의 의사들은 백치전문시설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 지적 장애에 대한 잘못된 관념 및 사고방식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 제국주의, 계몽주의, 우생학, 진화심리학, 공리주의 등 당대에 퍼져 있던 여러 사상과 지능 및 인종주의에 관해 깊숙이 파고든다.
역사가마다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저자는 ‘이성’을 중시했던 계몽주의 사상에 더해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등장한 급진주의와 반동적으로 일어난 보수주의적 분위기가 중상류층의 불안감과 더불어 우생학을 등장시켰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 홀로코스트보다 앞서 나치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단종 조치 후 어린이를 비롯하여 잔혹한 집단 학살을 자행했는데, 여기에는 또 다른 놀라운 사실도 들어 있다.
1933년 정권을 잡은 국가사회당 아돌프 히틀러는 권력을 잡자마자 ‘유전병을 지닌 자녀 출산을 막기 위한’ 단종법을 통과시켰다. 또 유전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추정된 어린이들에게 독극물을 주입하거나 아사하게끔 감금하여 수많은 어린이들을 곳곳에서 학살했다. 이후 집단 학살 장소로 가스실이 선택됐다.
- 계용묵의 소설 『백치 아다다』에 나오듯, ‘백치’는 과거 한국사회에서 지적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그밖에 우리말로 번역한 은어 및 비속어들은 이 책이 비록 서구의 지적 장애 역사지만 과거와 현재 한국사회의 지적장애인들의 위치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형사 사건으로 재판에 불려 나온 증인들은 백치 모습을 이런 말로 묘사했다. ‘그는 멍청했어요.’ ‘그는 이해가 늦고 우둔했어요.’ 또 ‘멍청이’, ‘덜 떨어진 사람’, ‘모자란 녀석’, ‘우둔한 사람’, ‘머리가 텅 빈 녀석(판단력이나 분별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 등은 일상에서도 흔하게 사용됐다.
- 정의상 지적장애인은 문해력 부족으로 자신에 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아 그만큼 기록물이 드물고 역사가들로부터 소외되거나 관심을 끌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더 의미 있는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어느 역사가의 지적처럼 ‘학습장애인이 역사에서 소외됐다는 사실은 그들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타고난 탁월한 지능을 활용하여 평생 연구에 매진했을 대다수의 학자들이 지적 장애나 낮은 지능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거나 받아들이기는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정신병 및 광증의 역사 또는 정신질환의 역사가 백치의 역사를 가려왔던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