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거 형 같은데.”
“뭐?”
“그 동물화 있잖아. 잘 봐봐.”
가족들은 그제야 목에 금메달을 걸치고 발가락 하나에 터지기 일보 직전의 슬리퍼를 끼고 있는 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설마.”
그때 태웅의 눈에 베란다의 한쪽 구석에 놓인 장독이 보였다. 태웅은 둔탁한 앞발로 독의 뚜껑을 열고 한쪽 발에 된장을 묻혔다. 그러고 유리문으로 가 발자국을 두 번 찍고 작대기를 두 번 그었다. 유리에 묻은 된장은 익숙한 글자가 되었다.
웅.
_22쪽
가족이 아닌 소중한 존재. 그 첫사랑이 비둘기라니. 이름도 성도 없는, 똥구멍이 웃는 모양인 것만 알고 있는 수컷 비둘기가 첫사랑이라니.
세희는 처음으로 이상한 소원이 생겼다. 그것은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가 마법사이길 바랐던 거나,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새 휴대전화가 있었으면 했던 지난날의 소원들과 결이 달랐다.
자신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고, 덩치가 아무 일 없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현실을 덤덤히 받아들인 소원이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덩치가 조금만 다쳤기를, 다시 우두머리가 될 수 없더라도 무리로 돌아와 예전처럼 자신과 함께하기를 빌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내어줄 것은 내어주어야 하는, 엄마가 말하던 어른들이 소원을 생각하는 법을 따른 순간, 세희는 말랑거리던 제 마음이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_63~64쪽
그러나 세상만사가 늘 그렇듯 일은 예기치 않은 식으로 진행된다. 3학년 중에서 사자로 동물화된 아이가 나타나며 서열 피라미드는 또 한 번 뒤집힌 것이다. 소문에는 그 아이가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엄친아’에 전교 회장이라나.
곰인 태웅은 사자인 엄친아 전교 회장에게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하고 일인자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엄친아 사자가 등장해 동물화 세계의 질서를 평정한 이후 학교는 더욱 조용해졌다. 크고 작은 힘겨루기와 대립이 있었지만 점차 잦아들고 제각각의 질서를 찾았다. 힘을 아끼고 절제하는 사자 앞에서 그 누구도 제힘을 꺼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면 동물화도 성적순이었던가.
_140쪽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었다. 대장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간다는 전제는 시기도 가능성도 모두 불확실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다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사람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지 몰라도 국영은 아니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넌 원해서 들개가 됐냐? 사람으로 돌아가고 말고도 우리 생각대로 되겠냐고.”
“난 비밀을 알아.”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는 비밀?”
“그 반대. 계속 들개로 남는 비밀. 사람이 되려고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갈 수 있는데 들개로 남아 있는 건 우리 선택이거든. 내 말만 잘 들으면 우리는 같은 날 사람이 될 수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국영은 오스스 소름이 돋아올랐다.
_1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