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가 만드는 낙원은 어디까지나 환상에 불과하다. 검색 엔진, 앱, 스마트 기기의 배후에는 항상 노동자
가 존재한다. 그들은 글로벌 시스템의 변방으로 밀려나 단돈 몇 센트를 받고 데이터를 정리하거나 알고리즘을 감독하는 일 말고는 달리 살아갈 방편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_ 11쪽
테슬라 같은 기업에 필요한 인력 중 상당수는 무인 자동차가 도로를 무사히 달릴 수 있도록 데이터를 깔끔
하게 주석화하는 일을 담당하는 노동자다. (…) 이 경우 테슬라 같은 기업이 사내에서 데이터 훈련을 수행하는 경우는 드물고 주로 범남반구에 외주를 준다. 2018년에 이런 미가공 데이터 중 75퍼센트 이상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몰린 베네수엘라인들에 의해 라벨링됐다. _ 34~35쪽
머잖아 하나의 안정적인 직업만 갖고 있는 사람들과, 다른 한편으로 아침에는 남의 개를 산책시키고, 낮에
는 남의 집을 청소하고, 저녁에는 친구 역할을 대행하고, 밤에는 온라인 작업을 찾아야만 하는 사람들로 이분화된 새로운 양극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_ 119쪽
지금 가난한 피박탈자들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들의 공동체를 겁박하기 위해, 혹은 노동 과정에서 그들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들을 부지불식간에 훈련시키고 있다. 이른바 마르크스의 생생한 악몽보다도 더 악몽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_ 128쪽
결국 노동자는 자신이 수행하는 작업으로 누가 무엇을 통해 이득을 보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시가전과 문화 말살의 도구로 사용되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동원되고 있는 셈이다. 미세노동 사이트를 이용하는 난민들이 사실상 자신들을 탄압하는 기술 개발에 가담할 수밖에 없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비극이다. _ 137쪽
어두컴컴한 지하 세계에서 알고리즘의 부속물로서 알고리즘을 개선하고 확장하고 감독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이 무엇의 일부분인지도 모른 채, 또 외부에 그 존재가 철저히 은폐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대형 플랫폼이 원하는 노동의 형태가 바로 이런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불투명하고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 _ 140쪽
미세노동 사이트에는 노동자들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프로필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애초에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존재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_ 141쪽
지금과 같이 성장이 둔화되고, 고용이 회복될 기미가 없는 시대에는 위기가 닥쳐 실업률이 치솟으면 보통은 실업자들이 여러 형태의 하등 취업 상태에 빠지면서 비공식 저임금 노동만 영구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말인즉 실업은 사라지지 않고 그저 허울만 바꾼 채 불안정성, 불완전 취업, 노동 빈곤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_ 188쪽
지금 우리에게는 상상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자본주의를 넘어 세상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을 한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누가 그런 세상을 실현할 것이냐”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론 베나나브는 “비전이없는 운동은 맹목적이지만, 운동이 없는 비전은 훨씬 더 무기력하다”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_ 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