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 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일 년만 살아 보자고 이곳을 찾았을 때, 비로소 오랜 숙제에 손을 댈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작은 생태계의 꿈틀대는 생명력을 그림으로 남기기로 한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제라늄 로베르티아눔’의 영어 이름은 ‘역겨운 밥 아저씨’. 향이 매우 고약하다. 스치기만 해도 악취가 진동해서 마녀들이 집 앞에 심어 아무도 얼씬대지 못하게 했다는 설이 있다.
--- p.23
여러해살이풀인 작약은 마법의 꽃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자 박물학자였던 플리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작약은 밤에만 꺾어야 한다. 낮에 작약을 꺾다 딱따구리에게 들키면 두 눈을 잃을 수 있다. 또 작약의 뿌리를 꺾은 사람은 치핵에 걸릴 수 있다.”
--- p.27
아칸서스 잎의 모양은 코린트 양식의 그리스 건축물에서 기둥머리를 장식하는 등 고전주의 건축과 미술의 장식 모티브로 활용되었다. 그리스 신화 속 아칸서스는 님프였다. 아폴로가 납치하려 하자 그녀는 아폴로의 얼굴을 할퀴어 상처를 냈다. 화가 난 아폴로가 그녀를 가시 돋친 연보라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 p.53
병도 주고 약도 주는 대나무. 1년 365일 변치 않는 이 푸르름을 나는 사랑한다. 바람이 불 때면 들려오는 대나무가 파도치는 아름다운 소리를 사랑한다. 대나무 숲은 사시사철 머무는 찌르레기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하지만 혹독했던 지난겨울, 수분 가득한 몸으로 추위를 맞아서인지 대나무 줄기는 2월이 되자 그을린 빵처럼 갈색이 되어 버렸다. 잘라 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기적처럼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 p.57
나무에서 배가 떨어져 상하게 되면 들쥐 녀석들이 몰려든다. 때로 구근을 파헤쳐 놓는 것도, 작은 흙더미를 만드는 것도, 나무뿌리와 덩이줄기가 녀석들의 주관심사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다 우리 고양이 밀라와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 앞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그 모든 것이 정원에서의 삶인 것을.---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