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에 대하여
김미옥
시간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없다.
생물이 노화하듯 무생물도 풍화하고 침식되며 소멸로 나아간다.
자신이 태어난 장소로 돌아가서 흙으로 동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시간이 주는 놀라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끼 낀 담장, 세월이 묻은 벽돌, 오랜 손길로 윤이 나는 마루, 그리고 폐허의 아름다움.
자연의 감가상각이 건축물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경우다.
사람도 그렇다.
노년에 이르러 영혼이 아름다운 인간을 만나면 나는 감탄한다.
세상이 준 수많은 상처를, 인간을 이해하는 단초로 쓰는 이를 보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환경과 경험이 존재를 규정함에도 상황을 초월하는 인간은 경이의 대상이다.
쇠락이 완성의 과정이 되는 존재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래된 건축물을 만날 때 나는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그런데 세월과 관계없이 처음부터 늙어있는(?) 건물을 만날 때가 있다.
안도 다다오의 콘크리트 노출 건물을 보았을 때 친구와 나는 함성을 질렀다.
처음부터 늙은 애인을 만나 늙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물론 그의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이다.
‘처음부터 늙은 양식’이 카페의 유행을 휩쓸지 예상하지 못했다.
신장개업 카페들이 유행처럼 인더스트리얼(Industrial)인테리어로 콘크리트를 노출시켰다.
‘막 사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 홍보문구가 생각났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노후 양식은 비위생적인 느낌이어서 천정에서 뭐가 떨어질까 염려됐다.
어쩌면 건축의 역사는 세월과 환경으로부터 건물을 지키려는 투쟁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건축미를 얘기하지만 건축가는 건물의 완성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보았을 것이다.
풍화하고 노후하는 건물을 유지 보수하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나는 인문학도 좋아하지만 건축이나 물리학, 유전학 같은 자연과학서적을 즐겨 읽는다.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 자연과학 책을 집어 들면 머리가 명료해진다.
지금 내가 읽은 건축학 책은 『풍화에 대하여』이다.
미국 대학의 건축과 교수 두 명이 공저한 이 책은 ‘건축물로 사유하는 철학 서적’으로 읽힌다.
어떤 영역이든 경지를 넘어서는 순간 철학이 되지 않는가.
간단하게 말하면 이 책은 풍화와 시간으로 건물의 생애주기를 말하지만 행간에서 인생을 읽게 된다.
풍화에 의해 건물이 지속적으로 변형되는 것을 소멸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새로운
시작으로, 건물이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가는 ‘완성의 과정’으로 본다.
노후과정을 지체하기 위해 건축자재에 대한 수많은 혁신이 있었지만
‘폭풍이 몰려와서 자연이 그 힘을 드러내 보여주기까지’ 결함은 알 수 없었다.
일례로 『빛나는 도시』로 유명한 프랑스의 건축가 코르뷔지에는
“전 세계를 위한 건축”으로 어떤 기후와 환경에서도 섭씨 18도를 유지할 수 있는 단열벽을 도입했는데 이중 유리벽이었다.
내부 공기 순환시스템을 가동해서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를 차단했다.
이 폐쇄유리벽은 여름철 건물을 온실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나라에도 성남시청과 용인시청 등의 관공서 건물이 이 건축방법으로 유리건물을 지었다가
여름엔 찜통이 되고 겨울엔 시베리아가 되었다.
첨단 냉난방 내부 공기 순환시스템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폐쇄벽은 결국 창문을 내어 개방벽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풍화 현상을 건축에 활용한 역사적 사례와 모더니즘 건축이 간과했거나 잃어버린 것을 주도면밀하게 짚어낸다.
1920년대의 모더니즘 건축 이전의 건축물이 유기적인 재료를 사용해서 자연과 함께 소멸했다면
이후의 건축물은 무기적인 재료로 노화를 거부하며 영원한 젊음을 꿈꾸었다.
그러나 유기질 재료는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무기질 재료는 소비재로써 폐기된다.
이 책은 자연을 거부하는 모더니즘 건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저자는 건축을 말하지만 ‘풍화’라는 단어가 주는 다의성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옛 건축물보다 튼튼한 재료로 아파트를 짓고 수명을 40년으로 재건축을 추진한다.
영원한 젊음을 추구하듯 건물을 완성하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해 건물을 파괴한다.
현대는 미학이 가치를 앞서는 시대이다.
영혼이 아닌 육체를 보는 시대가 불안하다.
『풍화에 대하여』는 미국건축가협회AIA의 건축이론상을 수상했다.
소감을 말하자면 전문서적과 대중서적의 경계에 있어 가독성이 좋다.
건축을 인생과 바꾸어 읽으면 생각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