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지혜와 처세의 보고, 이솝 우화
358가지 우화를 원본 그대로 복원한 이솝 우화 전집의 결정판!
1. 「이솝 우화」는 어른을 위한 우화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잘 안다고 여겨지는 것일수록 오히려 수많은 오해와 편견에 둘러싸여 있기가 쉽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이솝 우화도 바로 그러한 경우일 것이다.
이솝 우화에 대한 가장 흔한 편견은 ‘어린이들을 위한 재미있는 교훈집’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솝 우화에는 많은 유익한 교훈과 재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교훈은 어린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든가, 남을 도와주라든가 하는 식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오히려 강자가 득세하고 약하고 어리석은 자는 생존할 수 없는,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지혜이다. 그러므로 이솝 우화는 어린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새롭게 소개되는 작품 가운데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원형으로 한 것이 유난히 많다. 그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처럼 사랑하고 질투하며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이야기들이 빠지게 된 이유는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신화적인 요소가 약해졌으며, 또한 기독교적인 세계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은 편저자가 고의로 누락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따라서 이솝 우화는 풍부한 신화와 문학성까지를 포함한 이야기로 새롭게 읽을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이솝 우화를 단 한 편이라도 꼼꼼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솝 우화가 얼마나 재치 있고 유머가 넘치며 때로는 삶에 대해 통렬한 시선을 담고 있는가를 금방 알 수 있다.
2. 삶의 냉혹함을 소재로 한 우화에서부터 동성애 문제를 다룬 우화까지
「좋은 일과 나쁜 일」 우화 소개
불운 때문에 생긴 나쁜 일들은 행운 때문에 생긴 좋은 일들의 힘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계속해서 행운의 뒤를 따라다녔다. 행운은 하늘로 올라가 제우스에게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물어보았다. 제우스는 그들에게 모두 한꺼번에 인간들을 찾아가지 말고 한 번에 하나씩만 찾아가라고 대답했다.
인간들과 가까운 곳에 사는 나쁜 일들은 끊임없이 인간을 찾아오는 반면, 하늘에서 내려와야 하는 좋은 일들은 그렇게 띄엄띄엄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번 책을 통해 소개되는 「좋은 일과 나쁜 일」과 같은 이야기를 보면 이솝이 결코 삶에 대해서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삶의 고통과 불공평함을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만약 어린이들에게 굶주린 개들이 강 건너에 있는 먹이를 얻기 위해 미친 듯이 강물을 들이켜다가 결국 물 때문에 배가 터져 죽고 말았다는 내용의 「굶주린 개」와 같은 우화를 들려준다면 어린이들은 어떤 교훈을 얻기보다는 삶의 냉혹함을 먼저 느낄 것이다. 그것은 「노인과 죽음」과 같은 우화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힘든 삶에 지친 노인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정서에 어울리기 힘들 정도로 어둡고 비극적이다. 동성연애자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제우스 신과 수치심」의 경우에도 어린이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다소 무리가 따른다. 동성애는 그리스 문화의 한 가지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성들 사이에서의 사랑이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었으며, 스파르타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솝 우화가 ‘어린이들을 위한 교훈집’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편견 때문만은 아니다.
기독교적인 경건주의와 엄숙주의가 팽배해 있던 빅토리아 시대나 에드워드 시대의 사람들은 이솝 우화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역자의 가치관에 따라 많은 우화들을 누락시키거나 첨삭했으며, 기독교적인 교훈을 갖다 붙이기도 했다. 서양 문화가 청교도적인 경건주의와 도덕주의에 물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이야기에는 반드시 윤리적인 교훈이나 훈계가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유명한 크록살 번역본 같은 경우에는 번역자 자신이 직접 집필한 작품이 절반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또한 「당나귀와 개구리」라는 우화를 살펴보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당나귀를 보고 개구리들이 “잠깐 빠졌는데도 저렇게 울어대니 우리처럼 이곳에서 오래 살게 되면 어떤 소리를 낼까?”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끝에 ‘더 나쁜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잘 참고 견디는데, 조금만 불편해도 참을 줄 모르고 불평하는 나약한 사람들도 있다’라는 해석이 붙어 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늪에 빠진 것은 개구리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일에 불과하지만, 당나귀에게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 똑같은 일이라고 해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생명을 다투는 중요한 사건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아닐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혹은 죽어가는 당나귀 옆에서 한가한 소리나 늘어놓고 있는 개구리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우화일 수도 있는 것이다.
3. 난세를 살아가는 정글의 법칙 가득
이솝 우화는 기독교적인 윤리관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리스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솝 이야기의 세계에서 자비나 연민 따위는 찾아볼 수 없으며, 대개 잔혹하고 인정 없는 사람들, 교활하고 악한 살인자나 배신자, 사기꾼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솝에게는 인간 역시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정글의 법칙에 의해 지배당하는 존재였다. 이솝 우화 속에 유난히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단지 우회적으로 풍자하거나 비유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인간의 삶이 동물적인 본능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다는 생각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동물을 타자로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는 언제나 서로 상반된 감정이 흐르고 있다.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수식어를 넣음으로써 그 명제의 명료함을 흐리고 동물과 유사한 혹은 그보다도 못한 인간을 인정하고 싶어하고 더 나아가 동물을 이상화하고 신성화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근원, 즉 동물성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나온 동물이기에 스스로 ‘인간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설정해야 하는 짐을 지고 있는 인간은 동물과 인간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길을 어렵게 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성이라는 전혀 새로운 본성을 가지는 데 성공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성이란 단지 얄팍한 문명의 속임수에 불과할 따름인가. 아니, 오히려 동물성의 타락인가. 그러므로 동물은 인간 자신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가장 가깝게 바라볼 수 있는 타자가 된다. 언제나 인간이 자신과의 변별점을 찾아야만 하는 타자. 그러나 동시에 인간 자신이 애써 이룬 정체성의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타자.
이솝이 그려내고 있는 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바로 이러한 타자의 반영이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친화적으로 인식하는 이솝의 생각은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성에서 야만성을 걷어내지 않고 동물과 동일시하는 이솝 우화의 야만성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고전 학자들은 이솝 우화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영문판 전집이 출간되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4. 이솝은 실존했던 인물인가?
이솝과 이솝 우화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이솝이 쓴 우화가 그토록 유명한 것에 비해, 실제로 이솝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알려진 몇몇 사실들도 진위를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이솝 우화들도 과연 어떤 이야기가 이솝이 직접 지은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힘들며, 이솝 우화로 알려진 이야기 중에서 상당 부분이 사실은 이집트나 리비아 등지의 다른 나라에서 수집된 우화들이라는 것이다.
플라톤 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이솝의 생애』라는 고서는 대부분 이솝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솝은 기원전 6세기 초반에 살았으며 기원전 564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솝에 관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저술로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헤로도투스가 쓴 『역사』가 유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솝은 이아드몬이라는 사모스 시민의 노예였으며 아폴로의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뛰어난 재주와 말솜씨를 지니기는 했지만, 못생긴 추남에다가 기형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마도 이솝은 고대의 도시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치르던 도중에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이솝은 주인의 집사나 비서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나 논쟁에 있어서도 재치 있는 우화로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이외에도 이솝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대부분 후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믿을 만한 자료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불확실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5세기 후반 그리스에서 이솝이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우화 작가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아리스토파네스와 같은 유명한 희극 작가는 이솝 이야기를 대단히 좋아해서 자신의 작품 속에 직접 이솝의 이름을 언급하거나 이솝 이야기를 여러 번에 걸쳐 등장시켰다. 이솝 이야기가 널리 인용되고 그에 대한 지식이 자랑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갇혀 사형 집행을 기다리면서 이솝 우화를 운문으로 만들고 싶어했다는 사실은 그리스 시대에 이솝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였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5. 「이솝 우화」는 어떻게 보전되었나?
그리스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이솝을 가장 높이 평가한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수께끼나 속담, 전설 등을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일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그러한 작업의 하나로 이솝 우화도 수집했으며, 그것을 체계화하는 것은 제자들에게 맡겼다. 그리하여 기원전 300년경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료인 테오프라스터스의 제자 드미트리우스가 거의 백여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솝 우화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 세기 동안 이 책은 이솝 우화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판본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드미트리우스가 아니었으면 이솝 우화의 대부분은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카멜레온도 『리비아 이야기』라는 우화집을 엮었는데 그중에 일부가 오늘날까지 이솝 우화로 전해지고 있다. 카멜레온은 그 후에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우화를 수집하여 우화집을 만들었다. 그 밖의 테온이라는 또 다른 작가도 프리지아와 이집트의 우화들을 집대성하고 정리했다. 이렇듯 몇몇 사람이 엮은 우화집의 일부, 혹은 전부가 오늘날 이솝 우화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솝이 직접 자신의 우화를 글로 써서 남겼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오히려 이솝의 명성이 높아지자, 우화라면 모두 이솝의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우화집은 패드루스가 라틴어로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작가와 제작연도가 불분명한 그리스 산문으로 된 우화집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근래에 와서 이솝 연구가들에 의해 몇몇 연구본이 출간되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1927년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된 에밀 샹브리(Emile Chambry)가 엮은 『이솝 우화집』이다. 샹브리 판본은 이솝이 살아 있었다고 추정되는 기원전 6세기 이전과 이후, 그리고 작가가 분명히 밝혀진 것을 제외하고 이솝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우화 358편을 그리스어 제목의 알파벳 순으로 배열하여 묶어 놓았다. 이 판본은 이솝 연구가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가장 믿을 만한 판본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른을 위한 이솝 우화 전집』의 텍스트인 올리비아 템플과 로버트 템플이 미국에서 완역한 『AESOP The Complete Fables』도 바로 이 판본에 의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어떤 우화가 과연 진짜 이솝의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이솝 우화 전집』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텍스트의 편집자가 선택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샹브리 판본 『Esope Fables』는 이솝 우화 전집을 대표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6. 358가지 이솝 우화, 원본 그대로 복원
그 이전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이솝 이야기 영역본은 핸포드(S. A. Handford) 번역의 펭귄판이다. 그런데 이 판본에는 이 책에 실린 358편의 절반 정도에 달하는 182편의 우화가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어른을 위한 이솝 우화 전집』은 에밀 샹브리의 이솝 우화집을 바탕으로 하여 358편의 이야기를 모두 실었다. 그리고 가능한 원문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애썼다. 그러므로 내용에 따라서는 어린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나, 혹은 너무나 지나치게 삶의 현실에 대해 냉소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우화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그것이 바로 권력을 장악한 소수의 자유민들이 수많은 노예들을 거느리고 살았던 그리스 시대에 현명한 노예로 살아야만 했던 이솝의 처세술이며 지혜인 것이다.
이번에 문학세계사에서 출간된 이솝 우화집은 고대적 우화를 모두 모아서 마무리하는 「나오는 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잠자는 지혜를 배우고 촌철살인적인 처세술을 익히기 위한 「들어가는 문」이다. 수사학적으로는 온갖 정의와 도덕이 난무하고 판치는 오늘날이지만, 나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고난을 견디는 의지를, 강자에게 맞서는 정의보다는 위기를 넘기는 꾀를 언제나 먼저 염두에 두었던 이솝의 지혜가 더욱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솝이 남긴 우화를 읽으면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출간을 통해 「이솝 우화」가 다시 읽히는 기회가 보다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어려운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또다시 사자와 여우와 당나귀가 함께 사는 정글 속에 내던져진 듯하다. 때로는 사자를 통해 강자의 오만을, 때로는 여우의 간계를, 때로는 당나귀의 어리석을 정도의 순진함을 경계해야 할 때이다. 부디 이솝의 동물들로부터 반면교사를 통해 인생의 바다를 지혜롭게 건너가는 항해술을 배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