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현실과 동일성 회복에의 몸짓
등단 47년을 맞은 중진시인 이태수 시인의 열일곱 번째 시집 『꿈꾸는 나라로』(문학세계사)가 출간됐다. 『거울이 나를 본다』, 『내가 나에게』, 『유리창 이쪽』에 이어 역시 1년 만에 펴낸 이 시집에는 「나를 기다리며」, 「고요를 향하여」, 「무장산 계곡」, 「수묵화 속으로」, 「한결같이」, 「코로나에게」, 「거리 두기 7」 등 70여 편이 실렸다.
‘실존, 현실, 초월(꿈)’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깊은 사유로 삶의 철학을 명징한 서정적 언어로 구현하는 그의 시는 삭막한 현실을 벗어나 참된 자아를 되찾으려는 열망과 초월 의지에 불을 지펴 새롭게 투사하고 껴안는 꿈의 현상학을 빚어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현실을 통찰하면서 기쁨과 슬픔, 빛과 어둠, 로고스와 파토스가 교차하는 심층을 서정적 언어로 떠올리는 그의 시는 ‘나’라는 두 자아 사이에서 참된 자아를 찾아나서는 도정을 다각적으로 그린다. 그 결과 무늬는 상실의 아픔과 정신적 방황, 영혼의 상처와 소외감, 비판과 용서, 관용과 초월 의지 등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연작시 「거리 두기」에서 “가까운 적 없이 멀어진 사람들을 / 마스크 낀 채 바라봐야 할 뿐”인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이 단절감은 사람 간의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뜰에 활짝 핀 영산홍 앞에서도 / 마스크 낀 채 거리를 둡니다”라고 되뇌듯이, 인간과 자연의 단절이라는 비애에 닿는다. 더구나 이 이 폐해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코로나 바이러스뿐 아니라 / 등 뒤로 날아드는 칼, 안 보이지만 / 꿈속에서도 잠을 깨게 하는 / 칼날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고도 토로한다.
하지만 시인은 “사람의 아들”(예수 그리스도)이 매달린 “그 십자가를 우러러 무릎을 꿇”고 “저들이 하는 짓을 알아도 / 입 다물고 견디기로” 하면서 참고 기다리려 한다. 자신이 몸담은 현실에 대해 “도무지 세상은 어디로 가는지 / 멈추지 않고 가고 있어 / 낭패 날 게 불을 보는 듯한데 / 세상만 바뀌면 된다고 / 자기네 세상이면 그뿐이라고”(「걱정」)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하지만, 상처를 준 사람들까지 포용하려 한다. 이 관용과 더불어 “다시 밝아오는 아침”을 기다리면서, 상처도 아픔도 없는 새로운 삶의 지평이 어두운 현실 저편에서 활짝 열리기를 소망한다.
꿈을 모티프로 하는 현실 초월 의지는 그의 시집들에서 지속적으로 목도되는 시세계의 중요한 축이다. <꿈꾸는 나라로>라는 이 시집의 표제가 암시하듯이, 초월 의지는 돌올한 빛깔로 여기저기 나타난다. 그 초월은 어느 먼 별나라로의 일탈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참된 자아를 되찾고 자기 동일성을 회복하려는 실존의 의식 활동이다.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모든 것이 물화된 즉자처럼 생명을 잃어갈 때, 시인은 대자적 존재로서의 자유의지를 실현하면서 실존적 한계상황을 초극하려 한다.
자연을 매개로 하는 현실 초극 의지는 ‘꿈’을 통한 존재 전환의 몸짓으로 이어진다. 시인이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원시의 자연으로 들어서는 순간, “찰나와 영원이 하나같”고 “지나간 시간도 다가오는 시간도 /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만 같”(「풀잎 하나」)은 느낌에 이르며, 이 원융의 세계에서 시인은 현실에서 상처받고 훼손된 자아에서 벗어나 자연이 주는 내적 평화를 꿈꾼다. 「라 팔로마」에서 “천사와 같은 비둘기의 은빛 날개”에 실려 “꿈꾸는 나라”로 비상하고 싶은 소망을 반복적으로 되뇌고, 「무장산 계곡」에서는 “맑고 깨끗한 마음의 근원은 / 오르는 데 있지 않다”고 ‘내려감’의 덕목을 강조하듯이, 현실 초월은 상승만이 아니라 비움과 내려옴을 통해서도 구현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나는 때때로 / 물이 되고, 새가 되고 싶다 / 때때로 나는 / 나무가 되고, 바위가 되고 싶다”(「나는 때때로」)는 대목은 이 같은 깨달음을 구체적으로 말해 준다. 황량하고 쓸쓸한 삶의 한 지평에서 상승과 하강의 끈을 팽팽히 밀고 당기며 자아의 꿈을 구현하려는 이 같은 태도에서 생의 활력과 치열한 시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진엽 시인은 해설에서 그의 시에 대해 “깊은 사유와 울림으로 충전된 삶의 철학을 명징하게 구현하고 있다. 우울한 실존의 한계상황 속에서도 아프게 음각된 영혼의 상처를 외롭게 어루만지며, 시인은 꿈을 통한 초월 의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상실감과 단절감으로, 때로는 삭막한 현실의 부조리에 그의 실존은 높낮은 파동으로 흔들리기도 하지만, 싱그러운 자연과 부단히 숨결을 나누면서 훼손된 자아의 동일성을 회복하려는 끈질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 혼신의 몸짓이야말로 낯선 생의 지평에서 모든 번민과 고뇌를 판단중지해 내면의 괄호 안에 넣은 다음, 삶을 새롭게 투사하고 껴안아 보려는 꿈의 현상학임이 분명하다.”고 풀이했다.
바라보기와 꿈꾸기-철학적 깊이가 심화된 서정시
마음 어둡고 무거워지면
꿈꾸는 나라로
외롭고 슬프고
괴로워도 꿈꾸는 나라로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도
꿈꾸는 나라로
꿈속의 세상에
닿기까지 꿈꾸는 나라로
꿈을 꾸다 쓰러질지라도
꿈꾸는 나라로
시 바깥에서도
한결같이 꿈꾸는 나라로
―「한결같이」 전문
시인은 꿈꾸는 나라로 가기 위해 간절한 소망에 사로잡힌다. “마음 어둡고 무거워지”거나 “외롭고 슬프고 / 괴로워”질 때, 아니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 우울해질 때면 “꿈꾸는 나라로” 가자고 반복적으로 토로한다. 시인은 욕망과 위선, 슬픔과 상처로 얼룩진 현실에서 벗어나 인간의 순수가 훼절되지 않은 꿈의 세계로 안착하고 싶어진다. 이 잠재몽이 상징하듯이 시인이 얼마나 현실에서 실존적 아픔과 고독을 느꼈으며, 얼마나 간절하고 집요하게 “꿈꾸는 나라”로 가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미지의 세계는 시인의 마음 깊이 내재된 고요하고 평화로운 영혼의 처소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초월의 꿈을 꾼다는 것은 결국 내면에 은폐된 순수한 자아를 회복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나타낸다.
이태수 시인의 이 열일곱 번째 시집은 반세기에 가까운 시력이 말해주듯이, 깊은 사유와 울림으로 충전된 삶의 철학을 명징하게 구현하고 있다. 우울한 실존의 한계상황 속에서도 아프게 음각된 영혼의 상처를 외롭게 어루만지며, 시인은 꿈을 통한 초월 의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상실감과 단절감으로, 때로는 삭막한 현실의 부조리에 그의 실존은 높낮은 파동으로 흔들리기도 하지만, 싱그러운 자연과 부단히 숨결을 나누면서 훼손된 자아의 동일성을 회복하려는 끈질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 혼신의 몸짓이야말로 낯선 생의 지평에서 모든 번민과 고뇌를 판단중지해 내면의 괄호 안에 넣은 다음, 삶을 새롭게 투사하고 껴안아 보려는 꿈의 현상학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