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칼둔(1332~1406)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븐 칼둔에 대한 평가는 칭송과 찬양의 극치다. 14세기의 인물 이븐 칼둔은 『무깟디마』에서 이슬람 역사를 바탕으로 마그립의 문명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최초로 역사를 학문으로 정립시켰다. 그는 역사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비판했고, 오류를 감지할 수 있는 통찰력과 판단력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것은 새로운 학문의 시작이었고, 역사학자들에게는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과 미래에 대한 진취적 동기를 부여했다. 특히 그는 ‘아싸비야’로 호명되는 사회·정치적 실재를 사용해서 왕권을 설명했고, 궁극적으로 법의 목적은 문명을 보전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무깟디마
이븐 칼둔의 역작 『충고의 서, 아랍인과 페르시아인과 베르베르인 그리고 동시대의 위대한 군주들에 관한 총체적 역사서』는 전 7권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이다. 『무깟디마』는 그중 제1권 서문에 해당하며 690쪽 분량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부 : 우주의 문명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의 문명 일반과 이에 관련된 부문들
2부 : 베두인 문명, 야만 민족, 여러 부족들에 대한 상황
3부 : 일반적인 왕조, 왕권, 칼리파위, 정부의 관직
4부 : 지방과 도시 그리고 나머지 문명사회에서 발생하는 조건들
5부 : 생계수단, 이윤과 기술의 다양한 양상
6부 : 다양한 종류의 학문과 교육방법
제1부는 역사학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기록의 오류를 문제로 제시한다. 이런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자들이 무조건적 기록 행위를 삼가고 사건의 배경과 진위를 검토한 후에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견 ‘독자의 텍스트 의심’을 연상시키는 이 진술은 그가 『무깟디마』에서 펼치는 첫 번째 주장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왜냐하면 그의 첫 번째 주장은 인간의 합리적 사고와 논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제2부 베두인 문명, 야만 민족, 여러 부족들에 대한 상황에서 이븐 칼둔은 베두인이 시간적으로 도시민보다 앞서 등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명화의 근원으로 알려진 사회학적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베두인과 도시민을 차례로 정의했다. 우선 베두인을 농경과 목축을 하는 자들로 정의했다. 또한 2부에서 『무깟디마』의 핵심 용어라 할 수 있는 ‘아싸비야’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아싸비야’는 혈연 집단이나 그와 유사한 집단에 존재하는 연대의식이다. 그는 부족의 ‘아싸비야’ 개념을 강조했고, 지도력은 ‘아싸비야’를 지닌 집단의 몫이고 ‘아싸비야’의 궁극적인 목표는 왕권이라고 정의했다. 이후 ‘아싸비야’는 『무깟디마』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언급된다.
제3부에서는 왕조, 왕권, 칼리파위, 정부의 관직 등에 관한 진술이 있다. 이븐 칼둔은 왕권의 속성을 영광의 독점, 사치, 안정과 평정을 구하는 것이라고 소개한 후 왕권의 속성상 왕조는 영광을 독점하고 왕조는 사치와 안정된 생활을 한 이후 노쇠기에 접어든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도 3부에서는 영화를 누리는 왕조의 사치품으로 나팔과 깃발, 옥좌, 조폐소, 인장, 대형 천막과 가리개 등을 언급하고 그 기원을 소개했다. 특이한 점은 이븐 칼둔이 전쟁의 장에서 보여준 해박한 군사지식이다. 또한 3부에는 왕조 말기에 부과되는 상세의 폐단, 군주의 상업 활동이 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징세를 어렵게 만든다는 내용도 있다.
제4부에서는 지방과 도시와 여러 문명사회를 언급했다. 그는 왕조가 도시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성립되었고 도시는 왕권의 부차적인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도시의 가격에 대해 언급한 뒤 재물을 모으려는 도시민은 계급과 직위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또 왕권의 권좌인 도시는 왕조의 붕괴로 멸망하게 된다는 논리를 펼치며 도시민의 삶을 자세히 설명했다. 도시민은 베두인 시절 지녔던 용맹함, 강인함, 순박함의 정신을 모두 잃어버리고 자신의 신변과 재물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원을 필요로 하게 되고, 다양한 기술직이 도시에서 넘쳐나게 된다는 것이다.
5부에서는 생계수단, 이윤과 기술의 다양한 양상에 대해 설명했다. 이븐 칼둔은 “이윤은 인간 노동의 가치다”라고 단언했다. 또한 재물을 단시간에 늘리려면 고위직에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세태도 지적했다. 다양한 기술에 대해서도 소개했는데 예를 들면, 농업, 건축기술, 목공기술, 직조와 재봉기술, 조산기술, 의학기술, 글쓰기, 서예, 필사기술, 음악기술 등이 있다. 특히 조산술에 대한 기록에서 조산원이 생명을 다루는 전문 직업인으로 신생아가 젖을 뗄 때까지는 의사보다 더 필요한 존재라고 언급했다.
제6부에서는 다양한 학문과 교육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인류문명에 있어서 학문과 교육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지식 교육은 여러 기술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코란의 주석학과 독경학, 하디스학, 피끄흐, 상속법, 칼람학 등을 소개함으로써 이슬람 관련 학문의 발전과정을 역사적 사건 위주로 자세히 소개했다. 또한 인간의 행위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사고가 그 첫 걸음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부분 역시 그의 인간 중심적 철학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