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죽음이 등을 마주 댄 부조리한 삶. 이것이 내 평생의 화두였으며,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죽음 아닌 ‘탄생’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채집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생명 기억과 그 무한한 시원의 에너지가
한류(韓流)의 원동력이며 21세기 생명화 시대의 원동력이다.
비로소 한국인 문화 유전자의 모든 암호가 풀린다!
채집 시대로부터 농경, 산업, 정보화 시대를 넘어가는
거대한 문명의 파도타기!
저자는 삶의 끝자락에서 오히려 ‘탄생’을 이야기한다. 생명을 생각하고 텅 빈 우주를 관찰하면서, 모든 것을 부정해도 살아 있는 자신은 부정할 수가 없으며, 숨을 쉬고 구름을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그에게 생명은 소중한 선물 그 자체다.
저자는 죽음을 알려고 하지 말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추적하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또 그전의 조부모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계속 거슬러 가면 36억 년 전 진핵 세포가 생겼던 순간까지 간다. 그렇게 계산하면 우리의 나이는 36억 플러스가 된다.
정보화 시대 다음에는 생명화 시대가 온다. 인공지능(AI)이 산업 시대와 연결되면 재앙이지만, 생명화 시대의 기술로 사용되면 달라진다. 인류가 가장 행복한 시대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인적 자본, 사회 자본, 문화 자본, 자연 자본. 그다음에 오는 것이 ‘생명 자본’이다. 한국인에게는 오래전부터 생명 자본의 풍부한 의식과 경험이 있다. 그것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갖고 살아온 이들이 우리 한국인이다. 아득한 채집 시대로부터 장구하게 이어져 온 문화 유전자, 인류 문명이 태동한 태생기의 기억을 품고 사는 한국의 생활 문화 속에 그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앨빈 토플러의 오류는 인류 문명의 물결을 농경 시대부터 계산했다는 점이다. 인간 문화, 문명의 텃밭인 수렵채집 시대부터 계산했어야 한다. 거기에 대우주의 생명질서가 녹아 있으며, 인간의 유전자나 두뇌 등 모든 생장의 조건은 수렵채집 시대 때 형성된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정보 문명의 최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에 채집 문화의 흔적을 가장 많이 지닌 집단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를 선두에서 이끌어가는 오늘날에도 나물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 한 예다. 우리는 정보조차도 ‘캔다’라고 말한다. 호미로 나물을 캐던 풍습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음식 문화의 본류도 나물 문화다. 일부러 뿌리를 키워 콩나물을 만들고, 심지어 토끼도 안 먹는 콩잎까지도 먹는다.
채집민은 낯선 열매와 풀을 먹기 전 반드시 냄새를 맡고, 혀로 맛보며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정보를 파악했다. 짐승들이 다니는 길, 어디를 가야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있는지 생사가 걸린 정보 수집 활동을 매일 해야만 했다. 저자는 채집형 한국 문화가 한류(韓流)의 원천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한 손에 호미를 들고, 다른 손에 최첨단 스마트폰을 든 한국인을 떠올리면 다가올 생명화 시대의 연결고리가 보인다.
한국인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끝없는 생명과 문화의 순환,
그 시간과 공간의 너울에서 건져낸 낯설고도 친숙한 이야기들.
이제야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갖게 되었다.
저자는 생명 자본의 시대를 열어가는 한국인의 이야기를 켜켜이 채집하고 드러낸다. 아이의 나이를 셀 때 서양에서는 엄마 배 속에 있는 시간은 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문화 문명이 아이를 키운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이미 한 살이다. 태아는 자신이 알아서 태반을 만들고, 호르몬을 분비하고, 필터로 걸러내고, 배 속에서 나갈 때를 결정한다. 인간의 문화는 학습 이전의 상태로, 누가 가르친 게 아니다. 태아에게는 태생기의 거대한 생명 질서, 우리가 모르는 대우주의 생명 질서가 있다. 그러니 태중의 아이를 한 살로 보느냐, 보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그건 자연과 단절된 문화 문명으로 사느냐, 아니면 대우주의 생명질서를 바탕으로 오늘의 문명과 연결하며 사느냐의 문제다.
한국 사람은 그것을 연결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는 아기를 안고 자며, 포대기로 업고 다닌다. 최대한 엄마와 밀착하게 하기 위해서인데, 이는 엄마 배 속의 환경과 이어주기 위해서다. 산모가 미역국 먹는 나라도 한국뿐이다. 태중의 양수는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하다. 과학은 생명이 바다에서 육지로 왔다고 말한다. 반면 서양에서는 아기를 낳자마자 요람에서 재운다. 다시 말해 엄마 배 속, 자연과의 단절이다. 한국 문화에는 여성이 물질을 하기 위해 구덕을 사용했던 제주도를 제외하면 그런 요람이 없다. 한국은 요람을 사용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고, 포대기로 업어 기르니 ‘분리 불안’ 같은 말을 모르고 살던 민족이다. 게다가 우리 출산 문화에는 새 생명의 탄생을 돕고 AS(애프터서비스)까지 맡는 삼신할머니라는 ‘생명의 여신’도 있다.
저자는 생명 자본을 깊이 간직했던 한국인의 문화가 한류는 물론이거니와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뤄낸 원동력임을 제기한다. 또한 우리의 ‘막 문화’ 속에 담긴 원초적 생명력의 의미를 파헤침으로써 어떻게 지금의 한국인으로 이어왔는지 여정을 풀어낸다.
저자는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를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고 말한 바 있다.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책은 검색, 사색, 탐색의 삼색이 통합되어 있는 거대한 지적 그물망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재미있고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게 한국인을 이야기한 책은 없다. 한국의 대표 지성이자, 이야기꾼으로 펼쳐내는 한국인 이야기는 우리 한국인을 더욱 깊게 들여다보고,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되어가는 우리를 긍정하게 해주며, 더 나아가 우리가 생명화 시대의 주역임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