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구조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구조이지 인간이 아니다. 구조는 늘 인간에 앞서 존재하며 인간은 구조의 그물망 속에 갇혀 있으면서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동적 존재일 뿐이다. 알튀세르를 포함한 구조주의적 문화 분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이것이다. 문화의 의미는 늘 인간 바깥의 어떤 요소(그것이 텍스트 내의 요소들 간의 관계이든, 언어든, 이데올로기든)에 의해 생성된다. 인간은 그 다른 요소들에 대해 수동적인 객체의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그렇게 보면 인간의 주체적 실천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해 온 역사는 부정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바처럼 구조주의는 늘 현재의 구조에 집중해 왔지, 인간과 인간에 의해 추동되어 온 역사적 변화에 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흔히 구조주의가 반인간주의적이고 반역사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_160~161쪽
무엇보다도 세대 담론 자체의 함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특정한 세대를 특정한 명칭으로 호명하는 것은 대부분 기성 언론과 지식인, 정치권, 기업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관심과 이해관계에 따라 젊은 세대를 규정하고,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이용하고자 한다. 2020년대 들어 자주 호명되고 있는 이른바 ‘이대남’, ‘이대녀’, ‘MZ세대’ 같은 명칭이 대표적이다. 사회 전체의 구조 속에서 세대와 계급, 젠더 같은 범주들이 교차하면서 길항하는 양상을 제대로 보지 않고 외부적으로 규정되는 세대 담론에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다. _204쪽
K팝의 세계적인 인기는 소셜미디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4년 자신들의 미국 공연을 알리기 위해 거리에서 직접 전단지를 돌리던 방탄소년단이 불과 몇 년 만에, 내놓는 음원마다 빌보드차트를 석권하는 스타로 성장한 것에는 소셜미디어의 힘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그들이 빌보드에서 여러 차례 ‘톱소셜아티스트’상을 받았을 만큼 소셜미디어는 그들의 음악을 알리는 수단이었고 국경을 넘어 팬들과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ARMY)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방탄소년단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퍼 나르는 것을 넘어, 이들에 관련된 동영상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퍼뜨리기도 하고 신곡의 가사를 각 나라 언어로 번역해 올리기도 한다. 이는 단지 방탄소년단의 경우나, 몇몇 팬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수용자는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나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좋아하는 스타와 관련된 2차 콘텐츠를 생산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생산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_219쪽
이렇게 사유를 외주화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집단지성은 합리적으로 구현될 수 없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자유로운 정보의 소통과 수용자의 능동적 실천 그 자체가 늘 지성적인 대중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담론의 장이 단지 미디어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재단되고 인터넷상의 공론이 주목경제의 시장 논리에만 맡겨진다면 합리적인 집단지성의 형성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집단은 사유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지성적 사유의 주체는 각각의 개인일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집단지성 자체가 아니라 비판적인 능력을 갖춘 지성적 대중의 형성에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일정 정도 수용자의 선택성과 주체성을 보장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매스미디어 시대의 대중사회적 양상과 완전히 다른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문화 상황을 낳을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그 기술의 사회적 이용 형태가 어떤 형식으로 구조화될 것인가의 문제에 달려 있다. _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