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110개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불평등 상식’을 전복하다!
―민주당 정책통의 소득주도성장론과 진보경제학 비판
―수출이 잘되면 불평등이 커지고, 수출이 작살나면 불평등이 줄어든다?
―상층은 수출과 연동된 ‘좋은 불평등’, 하층은 고령화와 연동된 ‘나쁜 불평등’
―‘1992년 한‧중 수교’는 한국경제 불평등 확대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
―한국경제 불평등은 ‘중국발 불평등’…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은 주요 원인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에 관한 ‘5가지 통념’은 모두 틀렸다
―2018년 소득주소성장 정책, 30년치 연평균 취업자 증가의 1/4 수준 쇼크
―진보경제학의 불평등 축소 실패는 ‘원인 분석’부터 틀린 분석을 했기 때문
민주당의 대표적인 정책통인 최병천의《좋은 불평등》은 책 제목도 파격적이지만, 내용은 더욱 파격적이다. 책은 초반부터 후반까지 온통 불평등에 관해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통념과 상식을 뒤집는다. 단, 110개의 데이터에 근거하여 치밀하고 꼼꼼하게.
문재인 대통령은 탄핵 촛불의 열망을 안고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불평등’을 줄이면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포부를 담아 추진한 정책이 소득주도성장론이었다. 그러나 최저임금 1만 원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론은 2018~2019년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고,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며 결국은 후퇴했다. 어느 순간부터 소득주도성장론도, 불평등 이야기도 문재인 정부에서 사라졌다.
《좋은 불평등》은 서문에서 ‘문재인 정부의 숨겨진 업적’이 3가지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문재인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정책 대부분을 실천한 ‘25년짜리 진보정책’을 실천한 ‘25년짜리 진보정부’라는 점이다. 둘째, 성적표가 제출됐다. 셋째, 성적표를 잘 분석하면, ‘역사의 다음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평가한다. 최저임금 1만 원 정책도,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단지 대통령 개인, 경제참모 몇 명의 아이디어, 민주당만의 정책이 아니라 ‘한국 진보세력의 합의사항’을 이행했다는 것이다. 즉, 소득주도성장론의 정책 실패는 한국 진보의 ‘집단지성이 집단오류를’ 일으킨 경우였다고 지적한다.
한국 진보세력이 불평등 문제에서 집단적 오류를 일으킨 근본 이유는 한국 진보세력이 공유하고 있던 ‘불평등에 관한 통념’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불평등에 관한 5가지 통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평등 확대는 1997년 외환위기부터 시작됐다.[시점] 둘째, 불평등 확대는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확대 때문이다.[원인, 3대 적폐론] 셋째, 불평등 확대는 민주정부 10년, 보수정부 10년의 잘못 때문이다.[정치권 책임론] 넷째,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해롭다.[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 다섯째, 불평등은 국내적 요인에 의해 작동한다.[일국적 분석]. 《좋은 불평등》은 풍부한 데이터와 단단한 논증을 통해 이러한 5가지 통념이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5가지 통념은 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럼, 한국경제 불평등은 어떻게 작동했다는 것인가? 《좋은 불평등》은 ‘제대로 된 분석’을 보여주기 위해, 1980년부터 최근까지 불평등의 시계열 추이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한국경제 불평등은 ‘3대 변곡점’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1980년부터 최근까지 동일한 방법으로 조사가 진행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추이를 보면, 한국경제 불평등은 1994년에 최저점을 찍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간 등락을 보이다가 2015년을 최정점으로 최근까지 하락하는 중이다. 1994년 최저점, 2008년 중간고점, 2015년 최고점이 한국경제 불평등의 3대 변곡점이다. 《좋은 불평등》은 3대 변곡점 각각의 작동 원인을 데이터에 근거하여, 역사적 사건과 연결하여 추적한다.
한국경제 불평등은 ‘중국발 불평등’…
불평등 시작은 1997년 외환위기 아닌 1992년 한‧중 수교 이후부터
일단, 많은 경제학자들의 오해와 달리 한국경제 불평등은 ‘1997년 외환위기부터’ 증가한 것이 아니다. 1994년부터 증가했다. 다시 말해, 외환위기 이전에 이미 증가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1994년 즈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좋은 불평등》은 그 원인을 ‘1992년 한‧중 수교’에서 찾는다. 저자 최병천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경제 불평등의 시작점은 1997년 외환위기가 아니다. 1994년부터 시작됐다. 이는 한국경제 불평등이 1997년 외환위기가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해, 국내적 사건과 국제적 사건 3가지가 맞물려서 작동했다. 3가지 사건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92년 1~2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1992년 8월 한·중 수교다.”
—4장 <1994년 불평등 미스터리, 그 해답을 찾아>, 59쪽
이를 입증하기 위해, 《좋은 불평등》은 8개의 데이터를 보여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전후한 노사분규 추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제조업 임금 및 노동 생산성에 미친 영향, 노태우 정부 시절 공산권 국가의 수교 현황, 1980년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해외직접투자(FDI) 추이, OECD 국가들의 저기술·제조업 고용 비중 추이, 산업별 취업자수 변화 추이, 신발산업과 의류산업에서 한국과 중국 수출액 추이 자료다.
이런 방식으로 1994년 변곡점, 2008년 변곡점, 2015년 변곡점을 모두 설명한다. 3대 변곡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국경제사의 주요 사건들, 세계경제사의 주요 사건들, 중국경제사에서 주요한 정책 변화가 한국 불평등 30년의 역사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수출이 대박 나면 불평등이 증가하고, 수출이 작살나면 불평등은 줄어든다.
상층 소득이 오른 경우는 ‘좋은 불평등’, 상층 소득이 작살난 경우는 ‘나쁜 평등’
예컨대, 노무현 정부는 당시 민주노동당 등의 진보세력으로부터 불평등을 확대한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좋은 불평등》은 이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노무현 정부 때 불평등이 확대된 것 자체는 맞지만, 그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것은 2001년 12월이었는데, 이후 중국경제는 급성장한다. 경제성장률은 약 12%, 중국의 수출 증가율은 약 25%, 한국의 대중국 수출증가율은 약 30%에 달했다. ‘중국에 대한 수출 대박’으로 인해, 한국 대기업 노동자들의 성과급(상여금)이 급증한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 때 불평등이 증가했던 진짜 이유는 ‘수출 대박과 연동된 불평등’이었다. 내용적으로 볼 때, ‘좋은 불평등’이었다고 진단한다.
불평등 개념을 ‘하층소득 대비 상층소득의 격차’로 정리하면 불평등의 변동요인을 세분화할 수 있다. 불평등이 증가하는 경우는 3가지다. ① 상층이 오르는 경우, ② 하층이 떨어지는 경우, ③ 중간층이 얇아지는 경우다. 불평등이 줄어드는 경우도 3가지다. ④ 상층이 가라앉는 경우, ⑤ 하층이 오르는 경우, ⑥ 중간층이 두터워지는 경우다. 중국의 2001년 WTO 가입 이후, 한국경제 불평등의 증가는 대중 수출의 급증이 한국 대기업 노동자의 성과급 상승으로 연결된 경우다. 즉, ① 상층소득이 오른 경우였다. 물론, 중국에 대한 수출 대박 덕분에 수출, 투자, 고용도 모두 증가했다. ‘좋은 불평등’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반대로, 좋은 불평등이 있으면, 나쁜 평등도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다. 그 해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 불평등은 오히려 줄어든다. 경제위기가 터졌는데, 왜 불평등이 줄었을까? 그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선진국발 경제위기’였기에 세계 교역량 축소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세계 교역량이 축소되자 한국 수출이 줄어든다. 이 경우, ④ 상층이 가라앉은 경우다. 2008년~2011년의 기간 동안 한국경제 불평등은 오히려 축소된다.
즉, 수출이 대박이 나면 한국경제 불평등은 증가한다. 수출이 작살나면 한국경제 불평등은 축소된다. 2015년을 최정점으로 불평등이 최근까지 줄어드는 것도 같은 이유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4년 시진핑에 의해 ‘신창타이(新常態)’가 선언된다. 신창타이는 ‘중국판 뉴노멀’이었다. 신창타이 이후, 중국은 산업구조 고도화, 중간재의 국산화, 무역의존도 축소 정책을 추진한다. 이후 한국의 대중 수출액이 급감한다. 동시에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 제조업의 위기가 발생하고, 동시에 불평등이 줄어든다. 즉, 대중국 수출 급감 → 한국의 제조업 위기 → 한국의 불평등 축소는 같은 원인의 다른 현상이었다. 이 경우 역시도 ‘나쁜 평등’에 해당한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제무역이 축소되고 수출이 줄어들면 한국경제 불평등도 줄어든다. 국제무역이 개선되고 수출이 증가하면 한국경제 불평등도 증가한다. 2008~2010년 기간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한국경제 불평등이 줄었던 이유다.”
―6장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은 왜 축소됐는가>, 112쪽
2018년 소득주소성장 정책,
30년치 연평균 취업자 증가의 1/4 수준 쇼크
《좋은 불평등》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3부의 전반부는 1994년 변곡점, 2008년 변곡점, 2015년 변곡점을 중심으로 한국경제, 세계경제, 중국경제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서 작동했는지 설명한다. 책의 후반부인 4~5부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소득주도성장론의 문제점을 집중 분석한다. 특히 최저임금 1만 원을 중심으로 취지, 집행, 결과를 데이터에 근거해서 다룬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의 문제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1990~2020년의 30년치 취업자 증감 수치를 보여준다. 경제위기가 있던 4개년도를 제외하면 취업자 증가 규모는 연평균 40만 명이었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16.4% 인상했던 2018년에는 취업자가 9.7만 명 증가했다. 즉, 30년간 연평균 증가 규모와 비교하면, 4분의 1로 쪼그라든 것이다. 30년치 취업자 증감 수치를 보면, 2018년에 9.7만 명의 취업자 증가는 ‘경제위기 수준의’ 고용 쇼크임을 알게 된다.
《좋은 불평등》의 특징은 데이터에 근거해서 실제 결과를 보여주되 한 걸음 더 들어간다는 점이다. 저자 최병천은 정책 실패의 ‘원인의 원인’을 추적한다. 2018년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이 불평등 확대로 귀결됐다.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은 왜 불평등 확대로 귀결됐을까? 3가지 원인을 지적한다. 첫째, 임금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이 서로 상충관계일 수 있음을 몰랐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저임금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면 저임금노동자는 ‘노동자 집계’에서도 퇴출되고, 임금 불평등 집계에서도 퇴출된다. 그래서 임금 불평등도 줄어들고, 저임금노동자 비율도 줄어든다. 하지만 퇴출된 저임금노동자는 가구소득에서는 집계된다. 가구소득 불평등은 오히려 커지는 이유다. 둘째, 누가 ‘진짜 하층’인지 몰랐다. 진짜 하층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셋째, 저임금노동자의 실체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저임금노동자는 소규모-저부가가치 사업장 종사자다. 저임금이어서 저부가가치 사업장인 것이 아니라, 저부가가치 사업장이어서 저임금인 것이다.
《좋은 불평등》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들어간다. ‘불평등과 계급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4개의 불평등, 4개의 계급, 4개의 관점을 연동하여 제시한다. 4개의 불평등이란 ① 자본-노동 불평등, ② 자본-자본 불평등, ③ 자본-노동 불평등, ④ 노동-비노동 불평등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비노동 불평등이다. 비노동이야말로 ‘노동자조차도 되지 못하는’ 하층의 진짜 실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65세 이상 노인들이다.
좋은 불평등, 좋은 평등, 나쁜 불평등, 나쁜 평등
고용-성장과의 관계에서 입체적 사고 필요
《좋은 불평등》은 “경제성장 좋은 놈, 불평등 나쁜 놈, 무찌르자 불평등” 등의 1차 방정식적 사고를 통렬히 깨부순다. 책 전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불평등에 관한 그간의 통념이 ‘진영론’에 갇혀 있던 사고임을 폭로한다. 실제 한국경제 현실에서는 좋은 불평등, 좋은 평등, 나쁜 불평등, 나쁜 평등의 4가지 경우 모두가 작동하고 있음을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풍부하게 보여준다.
《좋은 불평등》의 논리를 쭉 따라가면, ‘불평등 담론’ 자체가 해체되는 것을 알게 된다. 불평등 축소가 절대선이 아니고, 불평등 확대가 절대악이 아님을 알게 된다. 불평등은 그 자체로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 불평등과 고용의 관계, 약자의 처우개선 여부에 의해서 ‘좋은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이 갈라질 수 있다. 불평등에 대한 선악 이분법적 접근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불평등, 경제성장, 고용, 투자, 수출 등의 경제지표를 종합적이고, 균형 있게 사고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좋은 불평등》이 강조하는 대안의 방향은 ‘환경변화’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재적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난 70년을 돌아보고 향후 30년을 전망한다. 이러한 전망 속에 3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① 경쟁력 강화, ② 계층 사다리, ③ 하층을 끌어올리는 불평등 완화다. 이 중에서 하층을 끌어올리는 불평등 완화의 핵심은 ‘초고령화 대책’이다.
《좋은 불평등》은 여기서도 초고령화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한국적 특수성 3가지를 강조한다. 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령화 속도, ② 소득 보장과 생존의 4가지 결합 방식, ③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균형이다. 이 중에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균형은 윤석열 정부의 주요 현안과도 연결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에 기초연금을 현행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인상한다고 공약했다. 문제는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 급여액 분포 비율이다. 20만 원 미만(18.9%), 20~40만 원(44.3%), 40~60만 원(17.8%), 60~80만 원(7.9%), 80~100만 원(4.6%), 100~130만 원(4.1%), 130만 원 이상(2.3%) 순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40만 원 미만 수급자가 총 63.2%이고, 40만 원 이상 수급자는 총 36.9%다. 내 돈으로 보험료를 내는 국민연금 급여액도 40만 원 미만자가 대부분인데, 내가 직접적으로 보험료를 내지 않는 기초연금도 40만 원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 가입자 입장에서 불만을 품게 되거나 국민연금 가입에 소극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현행 기초연금은 ‘하위 70%’에게 지급된다. 문제는 하위 70%의 소득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2022년 현재 65세 이상 부부 가구 기준금액은 288만 원이다. 《좋은 불평등》은 현행 ‘하위 70%’ 지급방식을 ‘정액제’로 변경할 것을 제안한다. 즉, 지급대상 기준을 현행 부부가구 288만 원으로 동결하고, 나머지는 물가 인상분만큼만 반영한다. 이 경우, 최대 장점은 재정 절감 및 후세대에게 급진적 증세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복지는 하방 경직성이 강한 분야이기 때문에 한번 올리면 나중에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생긴 재원 절감분을 75세 이상의 하층 노인에게 ‘보충연금’으로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균형도 달성하고, 빈곤율도 줄이고, 불평등도 완화하고, 후세대의 과도한 증세 부담도 완화하는 대책이다.
팩트와 정책의 힘으로,
‘진영론’에 갇힌 불평등 통념을 과감하게 전복하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정책통인 최병천이 쓴《좋은 불평등》은 정책과 데이터를 중심으로 진영론에 갇히지 않고, 진영과 진영을 자유자재로 뛰어넘는다. 북방외교와 어르신 빈곤 정책에서는 노태우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칭찬한다. 최저임금 1만 원의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 평가를 한다. 1992년 이후 대구 섬유산업과 부산 신발산업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 아니었다고 해명한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정부 시절의 불평등 증가는 ‘대기업의 수출 대박’ 때문에 발생한 좋은 불평등이었기에, 당시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의 비판이 잘못된 비판이었다고 재반박한다.
대학 교수와 지식인들조차 진영론에 줄 서며, 오히려 ‘내로남불’이 표준이 된 시대, 110개의 데이터로 무장한《좋은 불평등》은 이중 삼중으로 우리의 통념을 뒤집는다. 불평등에 관한 그간의 통념을 통째로 뒤집고, 진영론적 사고에 갇혀 있던 정치적 통념 역시 뒤집어버린다. 팩트와 정책의 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