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내가 겪는 우울, 왜 남들과 다를까
1. 할 일이 있는데 손에 안 잡혀요_주요 우울 장애
“선생님 제가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힘들어요”, “기운이 없어요” 혹은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해요”, “이유 없이 눈물이 자꾸 나와요”, “슬퍼요”, “입맛도 없고 침대에 누워있기만 해요”라는 식으로 말한다.
# 그냥 힘들 뿐, 우울증은 아니라고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보통 상담실에 와서 호소하는 말이다.
“힘들어 보이네요”라고 말을 건네면
“아니요. 괜찮아요. 잠만 제대로 자면 살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잠 때문에 힘들기는 하지만 우울증은 아니라고 ‘부인(denial)’하는 것이다. ‘잠’ 하나로 우울증을 의심할 수는 없지만, 우울증을 확인하는데 꼭 하는 질문이 ‘수면의 질’이다.
우울증으로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의 특징은 잠이 안 와 휴대폰을 뒤적이거나 TV를 밤늦게까지 그냥 틀어놓고, 혹은 유튜브 몇 개를 계속 돌려보기도 한다. 전자파와 빛이 계속 노출되어 생체시계가 낮이라고 착각해 수면의 질이 더 나빠진다. 잠이 안 오면 억지로라도 불을 끄고 눈을 감는 행동수정을 통해 잠을 못 자는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의 병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과 함께 힘든 무의식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억압(repression)’이 일어난다. 보통 잠을 못 잔다거나 두통 때문에 괴롭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우울한 마음을 몸으로 푸는 신체화 증상이다.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손에 안 잡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기도 한다. 사람들은 “요즘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요즘 누가 우울을 숨길까, 우울은 감기라면서,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은 정신병’이라는 인식 때문에 아직까지도 터놓고 잘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우울증에 취약한 기질도 있으나, 만성통증, 갑상선 질환, 암, 당뇨병 등과 같은 신체적 질환, 가족, 사회적 관계, 경제적 문제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말하자면, 임신이나 출산 우울증과 같은 경우도 기질보다는 상황적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 우울증 진단과 유사질병과의 차이
■ 개념
주요 우울 장애는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심각한 고통을 느끼며, 학업이나 직장, 집안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을 제대로 못한다. 심지어는 집중을 못 하고 산만한 것 같아 혹시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냐고 묻는 내담자들도 있다.
일상생활은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우울증은 아니지만, 답답해서 밖에 나가면, 집이 생각나고, 친구를 만나면 못 만난 다른 친구를 생각하고, 현재에 안주를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음이 딴 데로 자꾸 이동하고, 허공에 있는 것처럼 멍하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외로움, 공허감, 불안함의 감정들은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처리하지 못한 부정적 감정들로 인해 산만해지는 것이다.
집중이 안 되고 잘 잊어버려도 ADHD라기보다는 우울증 때문이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대학생 중에는 자격시험이나 학점 이수를 제때 못해 명문대에 다니면서도 머리가 나빠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울증과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의 경우 동반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해서 전문가의 감별이 필요하다. ADHD는 어릴 때 기질적으로 발병하는 경우가 많으며, 입시 낙방이나 이혼, 가족의 죽음, 암 발병과 같은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울 증상이 나타나기 쉽다.
실제로 부모가 갑자기 이혼하고 나서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을 못 하고 산만 증세가 심해져 상담실에 데려오기도 한다. 우울증인지 ADHD인지 두 가지 진단을 놓고 고민할 때 가족 상황은 중요한 변인이 되며, 우울증으로 최종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상태에서 처음에는 진짜 자기감정을 대면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슬프거나 화가 나는 데도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가 두려워 미소를 짓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갑상선 계열의 질병이나 뇌의 질병으로 인해 우울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뇌나 기질과 같은 생물학적 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 뇌파, MRI, PET 사진 같은 것을 찍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우울증인지 객관적인 확인을 받고 싶다면 상담실이나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서 ‘풀 배터리(full battery)’ 심리 검사[지능 검사, 다면적 인성 검사(MMPI), 벡(Beck)우울 검사, 문장 완성 검사(SCT), ‘집, 나무, 사람(HTP)’ 그림 검사, 로샤 검사 등]를 받거나, 최소한의 주요 검사인 ‘코어 배터리(core battery)’ 심리 검사[MMPI, SCT]를 해보는 것이 좋다. 검사 소요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둘 중 하나를 권유하게 된다.
평가 초기에 심리 전문가의 관찰과 면담, 심리 검사, 가족 치료사의 가족 체계를 보는 다각적인 면을 통해 최종 우울증을 진단한다. 무엇보다 기질, 사회적 관계, 몸의 질병 등, 포괄적인 원인과 정확한 진단에 따라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드물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2020년 자해·자살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는 3.9%로 대부분의 연령층이 전년도에 비해 감소했지만, 유일하게 20대에서 14.6% 증가했다(데일리안, 2021.10.15).
코로나 이후 무기력감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며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평소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직장 동료와 회식을 하며 풀기도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서 대인관계 단절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
초롱 씨 역시 늦게 일어나고 기운이 없어 식사도 거를 때가 종종 있다. 직장도 다니기는 하는데 긴장하며 일하다 보면 우울할 때가 많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주변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핸드폰 카톡방 전체를 훑어보고 찾아낼 때는 ‘내가 요즘 왜 이러지? 바보가 된 것 같다’며 호소했다.
라면 끓인다고 물을 얹어 놓고 잊어버리기 일쑤고 마트 계산대에 물건을 맡겨놓고 찾으러 갔다가 몇 번 줄인 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 헤매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리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행간의 말을 잘못 이해하여 오해를 빚기도 한다. 누구나 한 번씩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정신줄을 놓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한 번쯤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우울감 정도로 지나칠 수 있지만, 방치하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시기를 놓치지 말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 심리 TIP ]
숙면만 취해도 우울증은 감소된다. 침대의 매트리스를 바꾸는 것, 잘 때 안대와 커튼으로 빛을 차단하는 등, 숙면의 환경으로 바꾸어준다. 대신 낮에는 커튼을 걷어올려, 생체 시계가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