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철학’은 그 어떤 특별한 철학 이론을 표방하지 않는다. 이 철학은 정신철학, 종교철학, 예술철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자연철학의 한 분야다. 보편성을 다루는 철학과 정반대랄까. ‘바다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철학적 사고와 바다가 어떤 관계인지 묻는다. 이런 접근의 강점은 개념이라는 메마른 땅을 여행하며 뭔가를 두 눈으로 직관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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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발상지는 바다다. 철학의 근본원리는 물이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철학자로 여겨지는 인물은 기원전 600년경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다. 그의 고향 도시 밀레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강력한 교역 중심지로 소아시아의 서부 지역에서 육지가 혀를 내민 것처럼 바다와 맞닿은 곳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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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언제나 빛과 태양과 불로 생각함과 깨달음의 과정을 두 눈으로 보듯 그림처럼 그려 보여 주기는 했지만 플라톤은 우리 인간이 처한 상황 전체를 묘사하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바다도 끌어들였다. 이런 묘사에서 바다는 불순하고 혼탁한 지식이 떠도는 곳으로 그려진다. 속세에 더러워지고 뒤틀린 영혼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자 플라톤은 영혼을 저 거친 심해에서 혹사당하는 바다의 신으로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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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들어 바다를 도덕적 관점에서 관찰할 필요를 느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왜 그런 필요성이 대두되었는지 살피기 위해 잠깐 지금까지 우리가 거쳐 온 생각 여행을 되돌아보자. 고대의 자연철학자들은 바다를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보고 신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견해에 정면으로 맞선 사람이 플라톤이다. 바다는 신적인 것이 전혀 아니며 도덕을 위협하는 추악한 것이다. 섬을 무대로 삼은 유토피아 문학은 더 나은 사회질서를 구상하며 플라톤으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태도만큼은 달리했다. -91p
우리가 자연재해라고 부르는 것도 이 이론의 입장에서는 전체의 정연한 질서에 따르는 현상일 따름이다.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며 무질서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코스모스는 절대 카오스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은 대립하는 요소들의 다툼을 이용해 무한히 다양한 모습을 빚어내면서도 통일체를 유지한다.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젊은이와 노인이, 약자와 강자가, 나쁜 것과 쓸모 있는 것이 긴장감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듯 이 무명의 철학자는 습함과 건조함, 냉기와 온기 같은 “서로 모순되는 근본 요소들”이 모든 것을 떠받드는 “동일한 질서를 이루어 자연과 운명을 만들어 낸다.”고 썼다. -132p
칸트가 보는 우주와 우리 인간의 지구는 결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르고 루크레티우스와 비슷하며 기독교와 일치한다. 칸트가 보는 바다도 영원한 질서 안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 지구의 불안정성과 소멸성의 영향을 받는다. 당시 칸트는 베를린 아카데미가 상금을 내건 물음에 답하면서 바다가 지구의 자전에 제동을 걸어 “지구가 꾸준히 그 회전의 정지 상태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18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