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예술철학 입문서다. 예술철학 입문서는 ‘예술에 관한 학문’이라는 현대적 의미에 맞게 이론뿐 아니라, 예술현상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가장 많이 접하는 ‘현대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칸트, 헤겔, 분석미학의 관점을 소개하면서도 예술철학의 중요한 개념인 ‘예술 정의’, ‘미와 숭고’, ‘예술작품’, ‘미술관’, ‘매체’, ‘현대예술’ 등을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이 이론적 내용을 바탕으로 서양 미술사 전반을 이해하는 커다란 틀을 제공한다. 이 책에 소개된 ‘예술재현론’, ‘예술표현론’, ‘고전주의’, ‘낭만주의’ 같은 범주들은 현대 이전 미술을 해석하는 바탕이다. 이에 반해 현대예술은 ‘예술종말론’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이 입문서는 ‘예술종말론’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예술철학의 다양한 개념과 예술사 전반을 이해하려 한다. 입문서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어색할 수 있다. ‘관점’은 이미 특정한 편향성을 담고 있고, 입문서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해석학이 밝히듯 ‘중립적/객관적’ 관점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만약 어떤 입문서가 중립적인 관점을 지녀야 한다면, 역설적으로 그 책은 결국 아무런 내용도 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 예술은 ‘예술종말론’의 관점을 통해 현대 이전 예술과 구별된다. 현대예술은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로써 전통예술과 달리 ‘자기반성적’이다. 예술이 자기반성적이라는 것은 예술이 자기정체성을 묻는다는 뜻이다. 전통예술가는 이미 예술가로 인정받은 스승을 따라하면서, 자신의 제작행위와 제작품 모두 ‘예술’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현대예술가는 자신의 행위와 작품 모두가 ‘예술’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스스로 의식하면서,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현대에는 예술에 관한 일반적인 정의(定義)가 없다. 그래서 예술가는 스스로 자신만의 정의를 제시하고 입증해야 한다. 독자 또한 작품을 앞에 두고 자신만의 예술 정의를 생각해야 한다. 현대예술은 끊임없이 자신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런 현대예술의 자기반성성은 네 가지 흐름을 낳게 되는데, 다양한 형식실험 예술, 자기정체성을 묻는 예술, 추상예술, 전통예술로의 복귀가 그것이다.
이 입문서는 미술을 중심 예술현상으로 택했다. ‘선택’했다는 것은 미술이 아닌 것, 즉 음악이나 문학, 조각, 건축 등을 논의에서 ‘제외’했다는 의미이다. 입문서라는 한계는 이런 ‘선택’과 ‘제외’를 용인한다. ‘미술’로 한정함으로써 우리는 ‘예술종말론’이라는 관점을 쉽게 이해할 뿐 아니라 이 관점을 예술현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현대미술이 관점의 중심에 놓여 있다. 예술철학은 우리의 예술경험에 도움을 줘야 한다. 예술경험은 대개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이 입문서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