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와 동시에 장님이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하더니,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서고, 절름발이가 목발을 거꾸로 들고는 뒤를 쫓아오는 것이었다. 그랭그와르는 깜짝 놀라 달리기 시작했다. 장님도 달리고 절름발이도 달리고 앉은뱅이도 달렸다. 골목으로 달려 들어갈수록 마치 진창 속을 기어가는 달팽이 같은 모습의 인간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지하실 환기창에서 기어 나오고, 어떤 이들은 아우성을 치며 진창 속에 뒹굴고 있었다. -45쪽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출현은 지체 높은 아가씨들 사이에 야릇한 효과를 빚어냈다. 그녀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어둠침침한 거실로 들어오니 더욱 아름다워 보였는데, 그녀는 마치 밝은 햇빛 아래 놓여 있다가 어둠속으로 옮겨진 횃불 같았다. 여자들은 서로 한 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자신들보다 아름다운 그녀에 맞서 단번에 전선을 구축했다. -84쪽
이 광경에는, 현대의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무언가 알 수 없는 현기증 같은 것, 형언할 수 없는 거센 도취의 매혹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세모꼴에서부터 사다리꼴에 이르는, 또 원뿔형에서부터 다면체에 이르는 모든 기하학적 형상들이 인간의 얼굴 속에 나타났다. 더군다나 어린아이의 주름살에서부터 죽어가는 노파의 주름살까지, 산돼지의 주둥이에서부터 새의 부리까지, 모든 연령대와 온갖 짐승들의 형상이 차례로 떠오르는 그 일그러진 인류의 만화경을 한번 상상해보라. -28쪽
과연 너무나도 기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인지라 대회에 참가한 다른 후보자들도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면체 코에 입은 말굽 같았고, 찌그러진 왼쪽 눈은 잡초처럼 자란 붉은 눈썹에 덮여 있었으며, 게다가 오른쪽 눈은 커다란 무사마귀 탓에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이빨은 드문드문 빠져 있는데다가 나머지는 들쭉날쭉했고, 그 중 하나는 코끼리 어금니처럼 윗입술 위로 뻐드러져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기괴함 위에는 심술과 놀라움, 슬픔이 종잡을 수 없이 서려 있었다. -22쪽
이제 나는 온몸이 떨리고 정신을차릴 수 없다. 박사인 나는 학문을 우롱했고, 귀족인 나는 내 성姓을 버렸고, 신부인 나는 미사 시간을 음란한 생각으로 도배했다. 그것도 모두 나를 매혹한 너 때문이다. 나는 이제 우리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네가 나를, 너 자신을 가엾게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곧 땅에 쓰러져버릴 것이다. -177쪽
콰지모도가 그를 심연에서 끌어내려고만 했다면 손을 뻗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신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이집트 여자를 보고 있었다. 귀머거리는 조금 전까지 부주교가 있던 자리에 팔꿈치를 기대고는, 지금 이 순간 그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대상인 그녀에게서 단 한 번도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는 마치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꼼짝하지 않았고, 입도 열지 않았다. 오직 한 줄기 눈물만이 그의 외눈에서 조용히 흘러내렸다. -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