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스하우젠 교수는, 평균 기온 상승 폭 1.5℃를 넘지 않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치 정해진 금전적 예산처럼 지금 씀씀이를 줄이지 않다간 나중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IPCC가 1990년에 처음 보고서를 내놨을 때는 약 1500Gt(기가톤)의 탄소 예산이 남아 있었는데, 30년이 흘러 6차 보고서를 내놓는 지금은 이 가운데 3분의 2를 이미 써 버려 500Gt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지금의 배출량에서 더 늘어나지 않게 유지만 한다고 가정할 때, 15년이면 다 써 버릴 양이라는 것이죠. - ‘Ⅰ. 2021년, 탄소중립 ‘원년’이 되다’ 중에서
1990년, IPCC는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10년에 0.3℃씩 지구 평균 기온이 올라 2025년엔 1℃, 2100년엔 3℃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990년대 기준에서 본 ‘지금’처럼 배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마다 역대 최고를 경신했죠. 그 결과, 지구는 이미 산업화 이전 평균(1850~1900년)보다 1.09℃나 더워졌고, 극한 고온 현상은 산업화 이전보다 4.8배 증가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대응을 미룬 30년 사이, 한반도의 기후도 달라졌고요. (……) 우리나라의 위상도 달라졌죠. 개발도상국에서 OECD 가입국으로 그리고 국제 공인 선진국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탄소중립을 향한 여정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를 과연 갑작스러운 변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과거의 30년은 나름대로 여유 부릴 수 있는 시간이었을지라도 앞으로의 30년은 다릅니다. 지금 당장 지구가, 한반도가 처한 환경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지위로 보더라도 말이죠. 더는 물러설 곳도, 대응을 주저할 시간도 없습니다.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5℃ 이내로 묶을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단 하나뿐입니다. 지금 당장 온실가스 감축을 시작해 2030년엔 50% 감축, 2050년엔 탄소중립을 이룩하는 바로 그 시나리오 말입니다. - ‘Ⅱ. 탄소중립, 글로벌 의제로 거듭나다’ 중에서
경제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얼마나 심각할 거로 내다봤을까요? (……) 2025년, 지구의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불과 1.2℃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미 경제적 피해가 현실로 다가옵니다. 경제학자들이 예상한 연간 피해액은 무려 1조 7천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917조 6천억 원에 달합니다. 해마다 천조 단위로 피해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GDP로 따지자면, 전 세계 GDP가 연간 1% 줄어드는 거고요. (……) 우리가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지 않고, 그저 기후변화의 속도를 지금보다 조금 늦추는 수준에 그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3℃ 오르지만, 그 시점이 2100년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를 따져 본 건데요, 전 세계 GDP는 4% 감소하지만, 피해액은 연간 36조 1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도저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의 손실입니다. 이 때문에 응답자의 66%는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그로 인한 편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즉각적이고도 대대적인 전략이 경제적으로도 정당성을 지닌다는 데 경제학자들의 뜻이 일치한다는 것이 명확해진 겁니다. - ‘Ⅲ. 탄소중립,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다’ 중에서
2019년 12월, 유럽연합을 시작으로 중국(2020년 9월), 일본(2020년 10월) 등 세계 각국은 잇따라 탄소중립을 선언했습니다. 2021년 연말 기준, 전 세계 136개국이 이 흐름에 동참했습니다. 국가적인 선언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실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체인 기업들도 하나둘 온실가스 감축의 길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자발적 모임인데도 생각보다 큰 강제력과 영향력, 구속력을 갖는 모임, 바로 재생에너지 100% 캠페인 ‘RE100(Renewable Energy 100)’의 사례입니다. RE100은 ‘지구적 관점’에서 보자면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기특한 캠페인입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제품 생산에 쓰이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기로 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인 관점’에선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이 모임에 우리나라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이제야 하나둘 가입하고 있죠. 세계적으로 RE100 캠페인에 동참한 기업은 이미 300곳이 넘습니다. (……) 당장 이 캠페인의 영향권은 어떻게 될까요? RE100에 참여한 기업들뿐 아니라 이들 기업과 거래하는 협력사들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일례로 BMW는 배터리 등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LG화학이나 삼성SDI 등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자동차, IT, 금융, 식음료 등 분야와 상관없이 많은 기업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RE100은 앞으로 ‘ISO 인증’처럼 하나의 국제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 ‘Ⅲ. 탄소중립,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다’ 중에서
과연 애플의 이 프로그램이 지구를 걱정하는 공급업체들의 선의에만 기댄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미 자사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는 애플이 제조 과정에서도 1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할 것을 선언한 만큼,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려면 반드시 재생에너지만 사용해야 하는 산업 생태계가 구축된 결과입니다. (……) 애플이 다른 기업보다 유달리 지구를 아껴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세계 각국은 탄소국경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FTA를 통해 관세 장벽이 없어진 상황에서 탄소 배출량이 하나의 새로운 장벽 또는 경쟁력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죠. 지속해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 처지에서 보면 선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는 것이 곧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일임을 의미하게 됐습니다. - ‘Ⅲ. 탄소중립,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다’ 중에서
유럽연합의 이러한 조치는 2030년까지 1990년 탄소 배출량 대비 55%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방안 가운데 일부입니다. 제아무리 세계 최고의 감축 노력을 기울이고, 가장 먼저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유럽연합이라도 쉽지 않은 목표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강력한 목표를 내걸고, 이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대외적으로 강력한 ‘압박’의 수단이 됩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이야기하는 국제회의 무대에서 유럽연합의 발언권이 막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온실가스와 관련한 국가 대 국가의 논의 혹은 논쟁 과정에서도 ‘우린 이 정도나 하고 있는데?’라며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요? 2020년, 코로나19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 것을 고려해도 배출량은 6억4860만t에 달했습니다. 1990년 배출량의 2.2배죠. 이런 성적으로 1990년 대비 55% 줄이겠다는 유럽연합에 맞서서 무엇을, 얼마나 주장할 수 있을까요? - ‘Ⅲ. 탄소중립,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다’ 중에서
유럽연합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개별 국가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게 했을까요? 바로 유럽의 번영입니다. 단기간의 번영이 아니라 오래 지속가능한 번영 말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유럽이 가장 적극적, 때로는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보일 정도지만, 그들의 우선순위는 ‘지구 살리기’가 아닌 ‘번영’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유럽의 사례를 참고해 따라가자는 말이 경제적 이익은 그저 포기하고 지구만을 생각하자는 뜻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유럽에서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석탄 발전을 앞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그런 유럽연합조차 급진적인 탈석탄은 목표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우리가 겉으로 보기엔 유럽이 매우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엔 공론화를 통한 소통과 공감, 배려가 이미 녹아 있습니다. - ‘Ⅳ. 대한민국, 탄소중립을 선언하다’ 중에서
그린뉴딜에 대한 회의론은 여전합니다. 지구를 살리자고 인간이 피해를 감수하는 ‘밑지는 장사’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은 왜 포스트 코로나 경기 부양책으로 그린뉴딜을 선택했을까요? 많고 많은 분야 가운데 왜 에너지 전환에 대한 투자 활성화로 경기를 부양하려 한 것일까요? 그들은 유럽연합이라는 공동체의 존재 목적 첫 번째를 유럽의 번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저 자선단체인 양 손해를 감수하고 지구를 지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겁니다. 그린뉴딜이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면, 그렇게 될 거란 예측이 우세했다면 유럽연합은 절대 정책 방향을 이렇게 잡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럽연합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풀기로 한 자금은 5500억 유로(우리 돈 약 772조 원)에 달합니다. (……) 유럽연합은 이 돈을 유럽연합투자은행을 통해 그린 산업 지원과 기업의 저탄소 전환 지원에 투입합니다. 프랑스의 항공사 에어프랑스는 2024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50% 감축하는 등 그린 항공사로 전환하는 조건으로 70억 유로를 지원받았습니다. 스웨덴의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는 유럽연합투자은행으로부터 리튬이온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대출(3억 5천만 유로)을 받았습니다. 벨기에의 유미코어도 폴란드에 배터리 양극재 생산 시설을 짓는 데 드는 전체 예산의 50%를 유럽연합투자은행으로부터 대출받게 됐습니다. - ‘Ⅳ. 대한민국, 탄소중립을 선언하다’ 중에서
더는 물러설 곳도, 시간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올해 안에 상향된 감축목표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던 2021년 4월의 그날에 영국은 68%, 미국은 50~52%, 일본은 46%, 캐나다는 40~45% 감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리가 진행 중인 석탄 투자를 중단하지 않고는 그 어디에서 쥐어짜더라도 이들의 수준을 쫓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정부가 석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요구와 압박이 필요한 때입니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는 시민이라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 기후변화에 관심이 없는 시민이라도 우리가 꼬박꼬박 낸 국민연금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 말이죠. - ‘Ⅴ. 인고 끝에 등장한 대한민국 탄소중립 로드맵’ 중에서
제26차 당사국총회 기간에 각 당사국은 2022년 연말까지 2030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2030NDC)를 다시 한번 업데이트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간신히 ‘40% 감축’이라는 목표를 만들어 냈는데, 당장 또다시 이를 더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는 우리 정부에 굉장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노동운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에서 감축목표를 더 올릴 여지가 있다면 그 목표치를 발표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왔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설득할 논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아니, 목표를 더 높여야지 변명부터 준비하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인 조언이기도 합니다. 설령 우리가 2022년 말까지 ‘2018년 대비 50% 감축’이라는, 더욱 강화한 감축목표를 내놓더라도 국제사회로부터 “고생했습니다”라는 인정보다 “그것이 최선입니까?” 하는 비판적 검증을 받게 될 테니까요. 이제는 정말로 우리가 이만저만한 목표를 내놨다고 선언하고 자랑하는 선에서 끝낼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그러기에는 2030년이 너무 ‘가까운 미래’가 되어 버렸죠. 어느새 세계 각국은 서로가 정한 감축목표를 상호 점검하면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에 대한 책임을 본격적으로 물을 수 있게 됐습니다. - ‘Ⅴ. 인고 끝에 등장한 대한민국 탄소중립 로드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