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록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 지난 앨범들을 정리하면서 혹시나 선영이 오해를 살 만한 사진들은 모두 다 버렸는데, 이 오래된 카메라에 필름이 남아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물론 10년도 훌쩍 지난 일이고 거창한 과거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굳이 끄집어낼 필요도 없었다. 선록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저 카메라 필름에 어떤 사진이 담겨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 카메라를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다시 카메라를 본가에 두는 것은 너무 찜찜하다. 아내와 올 때마다 신경이 쓰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필름만 빼서 버리는 건 더 이상하게 볼 것 같다. 진짜 뭐라도 있는 거 같으니까. 그렇다고 집에 가져가는 건 더 불안하고, 통째로 없애버리는 것도 우습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감귤!]
“이거다!”
선록은 순간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오빠? 팔았어?”
“어, 여기.”
“잘됐네. 저번에 지훈이 방에서 그거 밟고 넘어질 뻔했다니까?”
그 남자는 우리가 예전에 어디서 거래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 듯했다. 그때 그는 아파트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차에서 내려 게임기를 건넸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의 첫 거래는 완수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였다.
완수는 저 남자의 아내를 알고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때 몇 번 마주치고 인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저 남자의 아이도 알고 있다.
그런데 두 번째 거래를 한 이곳은 동네 근처 다른 아파트 단지다. 방금 저 남자에게 오빠라고 부른 여자는 완수가 아는 그의 아내도 아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말한 아이의 이름도 완수 딸의 친구 이름이 아니다.
그제야 완수는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아파트로 올라갔고, 완수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이건 뭐지……?”
- ‘완수-1’ 중에서
“텐트부터 볼게요. 거래하러 온 거니까.”
“예, 좋습니다.”
완수는 말없이 텐트를 둘러보기 시작했고, 그도 역시 완수를 따르며 아무 말이 없었다. 완수는 분명히 눈으로는 텐트를 살폈지만, 모든 신경은 그에게 쏠려 있었다. 그도 완수의 뒤를 따라오면서도 아무 설명이나 대화도 없었다. 그저 완수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렇게 텐트를 다 둘러보고 나서 어색해하는 완수에게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맘에 드시면 좀 빼드려요?”
“아니요. 그냥 살게요. 좋네요.”
“멀리까지 오셨는데, 2만 원만 빼드릴게요.”
“멀긴요. 가깝던데요. 괜찮습니다.”
“별일이 다 있네요. 그럼 만 원만 빼드릴게요.”
“아, 예. 그러시던가요.”
완수가 중고거래를 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은 처음이었다. 파는 사람은 깎아주겠다고 하고 사는 사람은 괜찮다고 하고. 이 비정상적인 대화는 어쩌면 비정상적인 만남에서부터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고 완수는 생각했다.
- ‘완수-3’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