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매우 큰 격차가 존재하고,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계속 비슷한 수준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해야 한다는 건 이제는 증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당장 일할 수 있는 ‘그저 그런 회사의 비정규직’이 되기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좋은 회사의 정규직’이 되는 길을 택한다. 그 과정에서 생활비, 학원비 등 적지 않은 취업 준비 비용이 발생한다. 청춘을 투자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은 더욱 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도 아닌 특정 비정규직 집단만, 정부의 정책적 결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니 정규직만 바라보며 취업에 매진하던 청년들로서는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공정, 경쟁, 그리고 능력주의’ 중에서
MZ세대 중 많은 이들이 정량평가에서 정성평가 중심으로 변화한 교육체제가 출생 배경에 따른 교육 격차를 더욱 확대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들은 자신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잘난 부모를 둔 덕분에 자기보다 못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게 된 친구를 보며 불공정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학창시절 경험했던 교육제도의 불공정함은 사회 전반의 공정을 요구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정시확대나 사법고시 존치를 주장했던 것의 이면에는 그런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것이 기성세대의 눈에는 능력주의를 추종하는 것처럼 비추어졌다. 그러나 결코 이들이 능력주의를 추종하거나 주입식 암기교육으로의 회귀를 바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년들이 그런 주장을 했던 건, 그나마 그게 ‘흙수저’들에게도 ‘비빌 수 있는’ 기회나마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과도기 : 정량평가에서 정성평가로’ 중에서
2010년대의 전반부에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후반부에 들어서는 가상화폐가 사람들의 대박 신화를 이어갔다. 어쩌면 가상화폐야말로 사람들 마음속에 내재한 대박 신화가 가장 강렬한 형태로 표출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람들이 또다시 복권방을 찾기도 했지만, 로또 따위의 복권은 적어도 2030 청년들에게는 그 매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과거엔 로또에 당첨되면 강남 아파트를 사고도 펑펑 쓸 돈이 남았다. 그러나 이제는 강남은커녕 서울에 붙어있는 아파트라도 사면 다행일 만큼 그 값어치가 떨어졌다. ‘로또 맞았다’는 말이 인생역전의 또 다른 표현이 될 수 없을 만큼 삶의 격차는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영리한 청년들은 로또의 기댓값이 500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확률적으로 매우 미련한 짓에 인생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슈퍼스타K에서 비트코인까지’ 중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 당선된 스트롱맨들의 공통된 특징은 일자리, 경제, 치안 등의 소재를 주로 다룬다는 점이다. 그들은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 따르면 가장 밑바닥에 위치할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충족을 위한 정책과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자국민 우선주의는 그 방향일 뿐, 본질은 대체로 당신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삶의 조건조차 충족되지 못한 이들에게 이런 메시지는 큰 호소력을 갖는다.
- ‘상남자들의 부상’ 중에서
청년들은 늘 정치권에 물어 왔다. 극심한 취업난과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연금개혁이나 쓰레기매립지 이전처럼 큰 반대에 부딪혀 손도 못 대던 난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지, 4차 산업혁명으로 예견되는 대량 실업과 양극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지, 등등. 이렇게 숱한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내놓은 답변은 늘 엉뚱한 데를 향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오는 답답함이 오늘날 다수의 부동층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2010년대 초반 반값등록금부터 열정페이, 가상화폐 논란을 거쳐 최근의 부동산 문제까지, 청년들의 목소리는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그 본질은 같았다. 우리 일상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비전을 갖춘 세력에 표를 주겠다는 것이다.
- ‘유능한 세력에 표를 주겠다’ 중에서
지금까지 기성 정치인들은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세대라는 텃밭에 안주하며 변화를 게을리했다. 캐스팅 보트를 쥔 집단은 대규모 토목공사라든가 경제적 이득이 주어질 만한 공약으로 회유할 수 있다고 여겨왔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는 투표율이 낮거나, 당연히 진보적일 거란 이유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당연히 이들은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후순위로 고려되었다. 그 관성은 여전히 남아서 청년들의 표심이 매우 중요해진 오늘날에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 보여주기식 인재영입과 퍼포먼스, 그리고 설익은 공약들은 그 고민의 깊이를 보여주는 반례다. 아마 선거가 끝나면 이런 어설픈 노력마저 사라질 것이다.
- ‘집단으로 표류하는 세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