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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게 배우는 인문학

식물은 사람에게 어떤 존재일까


  • ISBN-13
    979-11-5854-340-2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도서출판 학이사 / 도서출판 학이사
  • 정가
    16,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1-12-3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이동고
  • 번역
    -
  • 메인주제어
    에세이, 문학에세이
  • 추가주제어
    나무, 야생화, 식물: 취미일반
  • 키워드
    #식물 #인문학 #환경 #에세이, 문학에세이 #나무, 야생화, 식물: 취미일반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50 * 210 mm, 256 Page

책소개

생태활동가, 환경운동가인 저자가 기청산식물원에서 식물의 성장과 변화를 관찰하고 보살피며 얻은 보람과 위안을 엮은 책이다. 단지 자연과학의 대상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의 역사와 문화, 민속과 정서에 지배적인 존재임을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밝히며 식물을 인문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확장시켰다. 
식물은 언제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로 인간을 맞이한다. 지구 전체가 위기에 처한 요즘, 식물이 해온 일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절박한 일이다. 지구의 주인인 식물, 제대로 알아야만 제대로 사랑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기상청 슈퍼컴퓨터보다 나은 이팝나무 노거수와 그 시절 노동의 피눈물이 어린 모시풀 이야기는 전승할 옛이야기와 전통 가치가 식물과 함께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던진다. 
원래 감자라 불렸으나 이름을 빼앗긴 고구마 이야기, 작물의 경계를 넘어 구황식물로 쓰이던 잡초의 비밀, 야생 돌연변이와 GMO 옥수수, 풍토병과 그 치료제로 쓰이는 지역 식물까지 다양한 식물을 넘나들며 오해를 바로잡아 주고 제대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목차

 

1부 식물을 안다는 것

 

식물을 아는 것이 교양 / 식물 이름 붙이기 / 식물을 가꾸는 마음 / 씨앗이 싹터 큰 나무가 된다는 것 /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식물들 / 성장을 기록하는 나이테 / 꿀, 벌이 식물로부터 만든 음식 / 식물 진화의 두 가지 방향, 난초와 국화 / 억새든, 갈대든 / 시베리아, 극한의 원시림 / 나무의 최저생계비

 

 

2부 자연과 닮은 조경문화를 꿈꾸다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 식물 신비로움 없애기 프로젝트 / 자연을 닮은 조경문화 / 토종 식물은 추억과 감성을 지닌 정서식물 / 식물 터부에 대한 이야기 / 무궁화를 아름답게 피우려면 /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지닌 나무들 / 아까시나무를 위한 변명 / 나무껍질이 지닌 매력 / 더운 날 시원스러운 수국 / 관주도에 묻혀버린 원예생활 / 태화강국가정원 십리대숲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3부 텃밭과 먹거리

 

메밀꽃 필 무렵 / 원래는 고구마가 감자 / 자양강장의 상징인 마 / 잡초의 과학 / 식물로부터 얻은 단맛 / 음식 맛을 돋우는 양념과 향신료 / 야생 식물 종자와 돌연변이 / 우리나라 주식이 옥수수라고요

 

 

4부 식물의 신비로움

 

지진을 감지하는 식물 / 음악과 노래, 그리고 청각을 가진 식물 / 불사의 생명체 / 병 주고 약 주는 식물의 약성 / 식물이 가진 약성, 양보다는 질 / 태양광발전은 식물광합성의 아류

 

 

5부 식물로부터 배우는 인문학

 

수많은 상징체인 ‘꽃’ / 이팝나무 노거수는 기상청 슈퍼컴퓨터보다 낫다 / ‘오동’이라 불리던 나무들 / 가시가 있는 나무 / 정원, 개인의 밀실이자 파라다이스 / 종교 속 나무 / 나무가 가진 신화성 / 정서적 유대를 잃은 우리들 / 나무 한 그루와 동무

 

본문인용

 

[머리말]

 

 잘 통하는 동무가 있으면 좋겠지만 서로가 일상에 바쁘고, 세상은 많이 변해 버렸고, 차나 술 한 잔 기울이며 한동안 눈 맞출 동무마저 귀해져 버린 세상이다. 그럴 때마다 내 의지처가 되어준 곳은 가녀린 풀꽃이고 늠름한 나무였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계곡과 숲을, 혹은 식물원을 찾았다.

 식물은 언제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로 나를 맞이했고 찾을 때마다 그 자리를 지켜줘 더 든든하게 느껴졌다. 작지만 모든 것을 다 품은 듯한 풀꽃은 팍팍해지기 쉬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늠름한 나무를 볼 때면 의연하게 살아갈 용기를 배우기도 했다. 어떤 관계보다 나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주었다.

 아름답게 피는 꽃들은 신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위안이자 비현실적인 황홀이었다. 소복하게 피어난 야생의 꽃들을 만날 때면 허전했던 가슴이 생의 에너지로 채워졌다. 아름다운 그들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픈 마음에 카메라에 담았다.

 찍어온 사진들을 SNS에 올리면서 좋은 인연을 맺었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얻었다. 이 글은 풀꽃과 나무들에게 조금이나마 신세를 갚는 마음으로 쓴 것들이다.

 

[책 속으로]

 

 루소가 일찍이 외쳤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인간을 ‘기능적이고 쓸모 있는 기계’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었다. 인간이 가진 원래의 선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자연과 더불어 생생한 경험을 통해 자연스런 성장을 해나가길, 그리하여 마침내 인간 본성을 되찾기를 루소는 바랐다.

 하지만 제도교육에서 자연과 생물을 배울 때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용어, 도표와 신화로 이루어진 관념 세계를 배운다. 그러고는 자연을 안다고 착각한다. 자연 다큐멘터리로 간혹 감동을 받지만 현실의 도심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도블록 틈에 풀이라도 돋아나면 지저분하다 여기고, 강변 덤불숲은 뱀이나 거추장스런 벌레들의 소굴로 보고 가까이 가길 두려워한다.

 

-p. 17~18, 1부 ‘식물을 아는 것이 교양’ 중에서

 

 

 어느 자연학습장에 들렀을 때, 견학 온 어린이들이 보이는 행동이 아주 신기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명찰에 붙은 식물 이름만 수첩에 열심히 옮겨 적고 있었다. 식물의 명찰이 어느 식물을 설명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것도 많았는데.

 왜 그리 바쁘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식물 이름 100개를 적어 오라는 숙제를 낸 모양이었다. 이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름만 강요하는 순간 식물은 외우는 대상이 되고야 만다. (중략) 해설 안내를 하는 중에 아이들에게 식물 각자 자기 나름의 이름을 지어 보라는 주문을 해본다. 그런 질문을 받는 순간 아이들은 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p. 22~23, 1부 ‘식물 이름 붙이기’ 중에서

 

 

 국화는 여러해살이인데도 축제에 꽃만 피우면 뽑히고 뒤집어진다. 차라리 일년초라면 덜 미안할 텐데… 예산은 매년 나오니 가꾸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식인가? 꽃이 없는 이파리만 무성한 국화는 시민들 항의라도 받을 것이라 여기는지. 모든 것은 ‘꽃’이라는 성과에만 집중된다.

 식물원에도 간혹 피는 꽃이 드물 때가 있다. 늦은 봄, 봄꽃들은 거의 다 피고 아직 여름꽃이 꽃봉오리를 준비하는 계절이 오는 것이다. 관람객은 식물원을 둘러보고는 “식물도 별로 없네요.” 하고 자연스레 내뱉는다. 오늘 온 관람객을 위해 꽃이 피어있지 않으면, 식물로서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사람의 가치 기준이 마치 직업과 연봉에 맞춰지듯 식물은 모든 것이 개화의 화려함에 집중된다.

 식물 일생에 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땅에서 새순이 올라올 때도 있고 잎이 자라 영양분을 모으고, 기다리다 봉오리가 맺혀야 꽃이 피는 걸 볼 수 있다. 그 과정 하나하나를 지켜봐야 꽃을 피우는 순간 아련한 감동이 찾아온다. 곧 꽃도 시들고 열매가 익어가고 무성하던 잎들도 말라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삶의 일부분이다. 이 과정도 음미하고 해석하는 것이 인문적인 시각이고 전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p. 77~78, 2부 ‘식물 신비로움 없애기 프로젝트’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원래 ‘감자’라고 불린 것은 원래는 ‘고구마’였다. 조선통신사 조엄(1719~1777)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들여오며 남긴 기록을 보면 “이름은 감저甘藷라고 한다. 효자마孝子麻라고도 하는데 왜의 발음으로는 고귀위마高貴爲麻다.”라고 했다. 몇십 년 후 북방에서 (진짜) 감자가 들어왔고, 처음에는 이를 ‘북감저北甘藷’라고 했다. 하지만 고구마는 재배지역이 제한적이고 저장도 어려웠던 데 반해 감자는 어디서나 잘 자라 널리 퍼졌다. 결국 고구마는 제 이름을 감자에게 빼앗기고 대마도 사투리 ‘고귀위마’와 비슷하게 불리게 됐다. 지금도 전남과 제주 일부지역에서는 고구마를 ‘감자’ 또는 ‘감저’라고 한다. 김동인 대표 단편소설인 「감자」에서 칠성 밖 빈민굴에서 주인공인 복녀가 키우던 작물도 감자가 아닌 고구마였다. 복녀는 주인 채마밭에 들어가 감자와 배추를 도둑질한다. 배추가 가을 작물이니 고구마 수확기와 일치한다.

 

-p. 137~139, 3부 ‘원래는 고구마가 감자’ 중에서

 

 

 소리 지르지 못하고 움직이지 않지만 식물들도 지진을 예측한다고 한다. (중략) 중국에서도 1970년 서녕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는데 륭덕현에서 지진이 발생하기 한 달 전인 초가을에 씀바귀꽃이 피었다고 하고, 1976년 당산에서 7.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였는데 지진이 발생하기 전 참대꽃이 피고 과일나무에서 열매가 맺힌 후 또 다시 꽃이 피는 등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1923년 9월. 관동 대지진 한 달 전에 〈라쇼몽〉의 작가인 아쿠다가와 류노스케도 각기 다른 때에 피어야 할 등나무꽃, 황매화, 창포, 연꽃이 한꺼번에 피어있는 기묘한 장면을 보고, 천재지변이 일어날 거라고 얘기했는데,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고 기록을 남겨놓고 있다. 지진은 발생하기 전 지온, 지하수위, 대지 전위電位 등에 변화가 나타나므로 땅에 뿌리를 박은 식물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p. 176~177, 4부 ‘식물의 신비로움’ 중에서

 

 

 1960년 이라크 북부지방의 한 동굴에서 네안데르탈인 유골이 한 무더기 발견되었는데 적어도 6만 년은 넘은 것으로 추정했다. 그중 어떤 유골은 특별한 의식에 따라 매장된 것으로 보였다. 동굴은 꽃가루가 날아올 수 없을 정도로 깊었는데, 그 유골 주변에 수많은 꽃가루가 발견되어 그 시신이 꽃으로 둘러싸였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 유골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는 체계적인 형식을 갖춰 매장을 했다는 점이다. 시신은 내던져진 것이 아니라 양손에 머리를 갖다 댄 태아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주변은 원형으로 돌을 쌓아 시신이 벽감 안에 들어 있는 듯 보였다.

 둘째는 함께 묻힌 꽃들 종류와 특성이었다. 그 꽃들은 현대의 약초도감에서 다 찾아볼 수 있는 식물이었다. 염증이 생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효과가 있는 솜방망이, 개쑥갓도 있었고 엉겅퀴와 무스카리, 접시꽃과 아킬레아Achillea 꽃가루도 있었다.

 상처를 입고 죽은 사람에게 식물의 효능을 통해 부활하거나 저승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기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는지 모른다. 식물은 이렇게 실용적 기능을 넘어 문화, 제례를 이끄는 매개물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p. 238~240, 5부 ‘나무가 가진 신화성’ 중에서

 

서평

 

식물은 사람에게 어떤 존재일까

 

거대한 나무가 천수를 누리는 기간에 비해 인간이 살아가는 생은 짧다. 수억 년간 지구 위에서 잎을 내고 꽃을 피운 그들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면 누가 자격이 있다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도시 문명 속에서 식물의 지위는 전과 같지 않다. 식물원을 벗어나면 보잘것없는 취급을 받는다. 가로수는 전선 아래에서 제 키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잘려 나간다. 건물 사이 나무는 준공 허가의 불가피한 조경 요소로 심겨 방치되어 있다.

 

‘식물이 주인’인 공간, 기청산식물원에서 식물의 성장과 변화를 관찰하고 보살피던 이동고 작가는 식물에게서 보람과 위안을 얻었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에 생태활동가, 환경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하며 식물에 대해 경험하고 탐구한 것을 글로 쓰고 사진으로 남겼다. 단지 자연과학의 대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역사와 문화, 민속과 정서를 엮어 인문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제대로 깊이 이해하기까지

 

아까시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낙엽교목으로 성장력이 대단하다. 원산지에서는 20~30미터나 자라고 지름이 2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 ‘아까시’란 가시가 있다는 뜻으로 붙인 우리말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아카시아Acacia는 열대성 관목을 가리키는 라틴어 속명으로 다른 식물이다. 진짜 아카시아는 열대성 관목이기에 우리나라 자연상태에 심어 키울 수 없다. 동요인 〈과수원길〉의 노랫말에 ‘아카시아’로 나오는 바람에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이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나무로 잘못 알고 있다.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죽는다’는 속설은 감나무에 함부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 만들어졌다. 감나무 가지가 겉보기보다 너무 잘 부러지기 때문이다. 실제 감나무는 까치가 둥지를 짓지 않는 나무다. 가지도 날카롭게 찢어져 올라갔다가는 크게 다치기 쉽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위험성을 알고 속설을 퍼트린 것이다.

 

‘덩굴이 벽을 타고 올라가면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말은 실질적인 피해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예전 집은 목구조 뼈대에 황토흙을 발랐으니 덩굴나무가 타고 올라갔다간 벽에서 흙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반대로 ‘능소화 꽃을 만지면 꽃가루 때문에 실명한다’는 속설은 신분 차별 때문이라 짐작할 수 있다. 빛깔이 곱고 품격이 있어 ‘양반꽃’으로 부르며 평민은 못 심게 했기에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이 거리를 두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 밖에도 원래 감자라 불렸으나 이름을 빼앗긴 고구마 이야기, 작물의 경계를 넘어 구황식물로 쓰이던 잡초의 비밀, 야생 돌연변이와 GMO 옥수수, 풍토병과 그 치료제로 쓰이는 지역 식물까지 다양한 식물을 넘나들며 안다고 생각했던 오해를 바로잡아 주고 제대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기상청 슈퍼컴퓨터보다 나은 이팝나무 노거수와 그 시절 노동의 피눈물 어린 모시풀 이야기는 전승할 옛이야기와 전통 가치가 식물과 함께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던진다.

 

씨앗을 뿌려 나무를 키우는 경험을 해본 이는 생명 하나 다루는 데 얼마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세상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생명을 잘 돌보고 키우는 일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는 ‘반려식물’ 하나 들여 보고 싶어진다. 이동고 작가는 식물을, 생명을 돌보는 일을 통해 식물이든, 주변 생활환경이든, 공원이든, 이웃이든, 친구든,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삶의 궁극 목표도 지구의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인간 문명의 원천이자 생명 유지를 가능케 했던 식물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식물에게 배우는 인문학』을 통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식물에 대해 제대로 탐구하고 이해해 보길 바란다. 묵묵히 수억 년간 해온 방식대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위안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이동고
경남 합천, 한적한 산골에서 태어나 자연과 하나 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도시 속에서도 언제나 자연을 그리워했고 풀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이를 좋아했다. 울산 태화강 민물고기 조사 활동과 전시를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후 기청산 식물원에 근무하며 식물을 깊고 새롭게 보게 되었다. 식물원에 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이 자연환경을 파괴해 지구에 위기까지 온 것은 식물생명체의 존귀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짧은 기자생활은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지구생태계를 먹여 살리는 어미 같은 식물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한다.
1954년 대구에서 창립한 종합출판사.
문학·인문·사회·교양·아동·실용 등 모든 장르의 종이책과 전자책을 출간한다. 학이사(學而思)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論語》)’에서 따온 이름으로, 이 말을 기업 정신으로 삼는다.
제37회 ‘한국출판학회상–기획·편집’ 부문을 수상했으며, 아동도서 브랜드 학이사어린이가 있다. 지역독서운동을 위해 학이사독서아카데미와 책으로 노는 사람들, 전국 지역출판사 책을 대상으로 하는 서평쓰기 대회 사랑모아독서대상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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