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쁨을 발견해 나가는 간질간질한 마음
우리는 ‘예쁘다’ ‘좋다’는 말을 흔히 쓰고 자주 듣는다. 왜 좋은지, 왜 예쁜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때도 많다. 황인찬 시인은 “좋은 것을 발견해내는 것은 귀중한 재능”이라고 했다.
“무엇인가가 좋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능력이지요. 때로 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영역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_《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62쪽
‘무심코 지나치던 영역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는 일’이 시라면 황인찬 시인이 ‘예쁨’을 발견해나가는 간질간질한 마음을 시처럼 동화처럼 표현한 이야기는 하나의 그림책이 되었다. 시인 황인찬이 쓰고 화가 이명애가 그린 그림책 《내가 예쁘다고?》가 도서출판 봄볕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출간 전에 이미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에 선정되었다. 서점에서 독자를 만나기 전에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황인찬 시인은 22살에 등단한 뒤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은 고정 팬이 많은 시인이 되었다. 시만 써오던 시인이 처음으로 쓴 그림책 글이 《내가 예쁘다고?》이다. 남자아이가 무심코 들은 ‘예쁘다!’는 말을 계기로 ‘예쁘다는 게 뭘까?’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이다. 시처럼 어렵지 않고 쉬운 언어로 쓰여 있지만 다 읽고 나면 가슴은 몽글몽글해지고 머릿속은 ‘예쁘다는 게 뭘까?’를 생각하느라 복잡해진다. 황인찬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명애 작가는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나미 콩쿠르 은상, BIB 황금사과상 등 세계적으로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주는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작가이다. 황인찬 시인과 이명애 작가의 환상적인 콜라보 결과로 그림책 《내가 예쁘다고?》가 완성되었다.
예쁘다는 게 뭘까?
“되게 예쁘다.” 김경희가 남자아이를 보며 말했다. 작게 말했지만 남자아이는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고민에 빠졌다. “내가 예쁘다고?” 선생님이 뭘 하라고 했을 때도, 급식을 먹을 때도, 아이들과 정글짐에 올라가 놀 때도 계속 궁금했다. “내가 왜 예쁘다는 거지?” 혹시 김경희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그건 아닌 거 같다. 분홍색 색연필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김경희는 단호하게 “싫은데!”라고 했으니까 자기를 좋아할 리는 없을 것이다. 남자아이는 자기를 잘 살펴보기 시작했다. 예쁜 데가 아주 없지는 않다. 코도 오뚝하고 눈도 초롱초롱했다. 누군가에게 “예쁘다”는 말을 듣고 나니 늘 먹던 밥도 더 맛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예쁜 게 뭘까? 예쁘다는 게 무슨 뜻일까? 축구를 하면서도 남자아이는 궁금했다. 예쁘다는 게 뭔지 잘은 모르지만 좋은 말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할머니가 “노을이 너무 예쁘다”고 하셨다. 남자아이는 노을이 예쁜 것처럼 자신도 예쁘다는 걸 드디어 인정하게 된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왠지 간질거렸다. 그날 밤에는 좋은 꿈도 꿨다. 이튿날 아침 학교 가는 길이 가벼웠다. 김경희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적 없는 아침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듣게 된다. 친구 송미주와 김경희가 나누는 대화를. 김경희가 무엇을 보고 예쁘다고 한 건지 알게 된다.
남자아이는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귀까지 빨개져서 복도를 달려 나갔다. 김경희가 예쁘다고 한 것은 자기가 아니라 창밖에 핀 예쁜 꽃나무였다. 그걸 알고 나자 왠지 슬퍼졌다. 왜 슬퍼졌는지도 모르면서 교실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남자아이는 꽃나무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작고 귀여운 분홍색 꽃들이 잔뜩 피어 있었다. 꽃이 아주 예뻤다. 그걸 보니 어째서인지 기분이 좋아졌다.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슬픔
황인찬 시인은 시의 소재 가운데 많은 부분을 ‘말’에서 얻는다고 했다. 일상에서 건진 ‘말’을 모아두었다가 오랫동안 생각한 다음 시로 풀어낸다고 한다. “예쁘다”는 말 역시 지극히 일상적인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수도 없이 하고 수도 없이 듣는 말 중 하나이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예쁘다”고 말했을 경우 세상 모든 소음은 사라지고 “예쁘다”는 말이 진공 속에서 오롯이 울릴 때가 있다. 그림책 속 남자아이가 경험한 것처럼. 그럴 경우 “예쁘다”는 흔한 말이 아니라 머릿속에 볼드체로 진하게 부각되는 특별한 말이 된다. 그리고 환기된 그 말의 뜻이 뭘까? 궁금해진다. 일상 언어가 어느 순간 특별해지는 것. 그것 역시 시를 쓰는 것과 같다. ‘무심코 지나치던 영역에서 좋음(또는 예쁨)을 발견하는 일이 시’라고 말했듯이 그림책 《내가 예쁘다고?》에서도 황 시인은 ‘예쁜 것이 뭘까’를 탐구해 나간다. 남자아이는 자기 안에서 예쁨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타인의 평가 속에서 찾아내려고도 하고, 노을처럼 주변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찾는 다양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김경희가 무엇을 보고 예쁘다고 한 것인지 알게 되자 남자아이는 슬퍼졌다. 자기보고 예쁘다고 한 게 아니라서 슬퍼진 것일까? 그것만은 아니다. 예쁨에 내재된 슬픔을 은연중에 발견한 것일지 모른다. 황인찬 시인은 최근 출간한 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를 읽는 일은 다른 존재의 슬픔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중략)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도 종종 슬픔을 느끼는데요, 아름다움이란 ‘손에 닿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는 그 아름다움이 나의 손에 닿지 않음을 절감합니다. 그 손에 닿지 않는 감각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요체이자,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슬픔의 까닭입니다. (중략)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며 내가 저것과 이토록 멀리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아름다움과 무관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슬픔은 바로 거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요. 아름다움이란 ‘너는 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요.”
이 글을 읽고 다시 《내가 예쁘다고?》를 보면 알 수 있다. 황인찬 시인이 평소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시에 대한 생각이 그림책의 모양새로 《내가 예쁘다고?》에 그대로 녹아 있다는 것을.
남자아이 역시 예쁨의 실체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게 벚나무 꽃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예쁨이란 멀리 있고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벚나무 아래에서 예쁨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는 남자아이 머리 위에 꽃잎이 살포시 앉아 있다. 찰나의 순간 예쁨과 내가 스치듯 마주친다. 영원히 나와 함께하는 게 아니라 순간 나와 겹쳐졌다가 다시 사라지는 것이 예쁨의 순간이다.
황인찬 시인이 시처럼 써내려간 글을 이명애 작가가 아니었다면 그림책의 형태로 이토록 잘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시인이 표현하고 싶었던 장면을 척척 그림으로 구현해 내어 스케치 단계에서 충분히 완성도가 높았다. 세부 디테일을 잡아 나가면서도 글이 주는 감성의 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명애 작가의 필력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