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열 살을 넘긴 고양이를 ‘노묘’라고 부른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아니 모시는 집사들은 조금 다른 표현을 쓴다. 고양이 묘(猫) 자에 어르신을 접목한 신조어 ‘묘르신’이 그것이다. 다섯 살 때 파양되어 새 가족을 찾던 홍조를 멀리 대구까지 달려가 데려온 만화가 민정원은, 홍조가 열 살이 되던 해에 홍조와의 일상을 인스타그램 만화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흩어져버릴 소중한 기억을 그림으로 붙잡은 것이다. ‘선비 냥이’ 홍조의 모든 것을 담은 첫 결과물이 바로 2017년 12월 출간한 작가의 첫 책 《홍조일기》였다.
고양이가 보여주는 미묘한 습성과 표정, 엉뚱한 행동까지 낱낱이 담은 이 만화는 고양이 집사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 왔다. 후속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독자들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두 번째 이야기가 바로 5년 만에 선보이는 《홍조는 묘르신》이다.
성묘 입양으로 가족이 된 열여섯 살 ‘묘르신’ 홍조 이야기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건, 언젠가 찾아올 이별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노묘 집사들은 ‘고양이 대학 보내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대학에 입학하는 새내기들이 스무 살인 점에 착안해, 내 고양이도 최소한 그 세월만큼은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홍조의 나이도 어느덧 열여섯 살. 나이에 비해 무척 건강한 편이어서 밤만 되면 온 집 안을 우다다 뛰어다니고, 여전히 엄청난 수다쟁이인 데다가, 작가만을 바라보는 개냥이로 살아간다. 하지만 때때로 보이는 노화의 흔적은 감출 수 없기에, 그 모습을 매일 지켜보는 작가의 마음은 애잔하고,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은 커져만 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노라면 작가가 홍조와 함께하며 느꼈을 반려생활의 기쁨과 든든함, 언제일지 모를 이별의 순간을 상상할 때 찾아오는 슬픔과 근심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만화라는 형식으로 가볍게 풀어냈지만,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은 노묘와의 생활 이야기에 독자는 더욱 매료되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엄지손톱을 보면 울게 되겠지> 에피소드(283쪽)에서는, 손톱을 길게 기르면서도 오른쪽 엄지손톱만 짧게 자르는 이유가 나온다. 이 손으로는 매일 홍조에게 약을 먹여야 하기 때문. 약을 먹이지 않아도 되는 어느 날, 서로 다른 손톱 길이를 바라보며 웃다가도 많이 울게 될 것 같다는 작가의 독백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울리고 만다. 한편 <동군영 사건>(84쪽)에서는 노화로 인해 찾아온 변비로 갑자기 건강이 악화한 홍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던 다급했던 상황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노묘와의 생활을 다루었다고 해서 무거운 이야기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홍조의 든든한 매력을 전하는 귀엽고 유쾌한 이야기들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양이는 나이 들어도 언제나 아기 같은 존재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중후한 매력이 더해져 복합적인 매력을 뿜어내는데, 만화 속 홍조의 모습에서 그런 고양이의 다면적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권 가격으로 읽는 2권 분량의 책, 157편의 방대한 에피소드
이번 책은 《홍조일기》 수록 편수의 2.3배에 달하는 157편의 에피소드를 담아, 일반 만화책 2권 분량과 맞먹는 두툼한 분량을 자랑한다. 턱시도 길고양이 아빠와 샴고양이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초콜릿색 턱시도를 지니게 된 홍조의 특별한 매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18쪽의 사진 화보는 홍조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특별한 소장의 기쁨을 선사한다. 또한 작가가 로맨스 판타지의 기본 얼개를 패러디한 홍조 공작님 이야기로 인스타그램에서 큰 사랑을 받은 외전 <홍조는 공작님>을 5편의 완결된 에피소드로 확장해 권말에 수록하였다. 단행본에서만 읽을 수 있는 미공개 분량 10쪽도 중간중간 담겨 있다.
출간 전 크라우드펀딩 매출만 2300만 원을 넘긴 ‘화제의 책’
이 책은 정식 출간 전 텀블벅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2300만 원이 넘는 판매고를 달성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유튜브 ‘겨울서점’에서 민정원 작가의 전작 《홍조일기》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보인 바 있는 김겨울 작가가 추천사를 집필해, 홍조의 사랑스러움을 생생히 전하였다.
민정원 작가는 만화로 홍조와의 삶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튜브 채널 ‘묘르신 홍조’도 운영하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홍조의 모습과 목소리를 오래 기억하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이 홍조를 기억해주었으면 해서다. 홍조가 살았던 모습을 함께 기억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홍조는 그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작가가 꾸준히 홍조에 대한 만화를 그리고 영상으로 남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