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재난의 시대, SF 소설로 배우는 생존 수영
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분과 물꼬방 교사들이 기획한 ‘함께 읽는 소설’ 시리즈 첫 권. 하나의 주제를 다각도로 고민하게 이끄는 작품들을 가려 엮은 테마소설선집으로, 효과적인 ‘한 학기 한 권 읽기’ 활동의 마중물이 되어 줄 책이다. 빛나는 상상력으로 사고의 관성을 허무는 우리 시대 SF 작가 남유하, 원종우, 김이환, 김주영, 김창규의 작품을 한 권에 담았다.
이 책은 ‘SF’의 세계에서 ‘자립’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극적인 상황 속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고 묻는 다섯 편의 소설을 통해, ‘인간’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미리 떠올려 보게 한다. 실제로 막다른 기로에 섰을 때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어떤 기준으로 행동할지 스스로 사고하며 결정할 수 있게 돕는다. 그리하여 세월호·코로나19·심각한 기후 위기 등 일상적 재난의 시대를 사는 요즘 청소년에게 ‘생존 수영’의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는 다른 결말을 만들 수 있어
어딘가 그늘진 세계 속, 인간의 자립에 관한 이야기
미국 SF 잡지 〈클락스월드〉에 번역, 소개된 〈국립존엄보장센터〉(남유하)에서 독자는 매끈하게 포장된 빈곤층 노인들의 죽음을 마주한다. 허울뿐인 존엄 앞에서 지워진 존재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보게 된다.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라는 센터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주인공의 선택을 직시하며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죽음”이 무엇인지 곱씹어 볼 수 있다.
곧이어 펼쳐지는 세계는 그 반대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원종우)는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자 세상이 스스로 거대한 무덤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종말을 제시함으로써, 죽음의 힘과 인생의 목적을 돌아보게 한다. 인공지능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 한 사람의 일상을 그린 <친절한 존>(김이환) 또한 유토피아 밑에 잠복한 서늘한 공포를 드러낸다. 독자는 ‘존’이라는 존재가 과연 우리에게 축복인지, 주체적인 삶의 모습은 어떤 형태인지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다.
로봇이라는 새로운 타자를 둘러싼 인간의 애정과 혐오를 그린 〈인간의 이름으로!〉(김주영), 초미세먼지에 뒤덮인 지구와 버림받은 사람들, 온라인으로만 연결된 관계를 배경으로 한 <유일비>(김창규)는 우리 사회에 실존하는 섬찟한 폭력과 고독을 묘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와 다른 존재를 끌어안는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기억하게 한다. 주인공의 결단을 보며 ‘미래는 고정되어 있고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을 떨치게 해 준다.
‘낯섦’이라는 감각을 배우는 장르,
SF의 매력부터 SF 즐겁게 읽는 법까지
심완선 SF 평론가와 교사들의 생생한 대담 수록
심완선 SF 평론가는 이것이 바로 사이언스 픽션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현실의 고민들을 이곳,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옮겨 탐구하는 일은 독자의 마음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해요. 현실이 아니니까 자유롭게 이런저런 가정을 해 볼 수 있거든요. 몸과 마음에 ‘이건 사실이 아니니까’라는 보호막을 한 겹 두른 채, 여러 가지 상상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효과적일까?’ ‘저렇게 하면 나아질까?’ SF 세계에서 ‘사고 실험’을 하는 거죠. 독자는 사고 실험의 결과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어요. 소설 속에서 가능했다면, 현실에서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거든요. SF는 ‘지금/이곳’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결국 우리가 작품을 읽으며 하는 생각들이 ‘지금/이곳’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 저는 참 멋지다고 봐요.”(146쪽)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SF의 여러 재미부터 SF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소한 팁까지, 사이언스 픽션이 낯선 독자를 위한 친절하고 열정적인 안내가 펼쳐진다. SF는 ‘공상 과학 소설’이나 ‘이과 친구’들을 위한 소설이 아니며, ‘낯섦’이라는 감각을 배울 수 있는 장르이자,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연대의 힘’을 품고 있는 장르임을 밝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쁨,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감각을 일깨울 것이다. 사회의 구조를 전복하는 상상력으로 소수자·빈곤·양극화 등 자칫 지워지기 쉬운 문제에 주목하는 힘을 키워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