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현실 정치가 세종, 즉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로서 다양한 정책대안을 놓고 신료들과 토론을 벌이며, 가끔은 무서울 만큼 강하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의 소유자이자 조선시대 임금들의 준거 군주인 세종의 리더십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필자는 세종을 한국적 리더십의 원형으로 보고, 그 핵심을 ‘수성(守成)의 리더십’으로 정의 내린다. 국가최고경영자로서의 위업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창업보다 어려운 수성을 성공적으로 이룬 세종을 재현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의 리더들에게 세종의 새로운 리더십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세종 르네상스
“왜 갑자기 세종대왕인가”
최근 들어 사회 각계에서 ‘세종대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까지도 “세종이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대했다”고 말했으니 그 관심의 강도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처럼 세종이 인기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에서 필자는 그 원인을 전환기의 불확실한 상황에 처한 우리의 사회․경제적 현실, 고유의 정치사상 부재에 따른 학문적 갈증과 연구의 필요성, 문화 안정기에 접어든 우리의 정서와 여건에 맞는 지도자상에 대한 갈증 등에서 찾고 있다.
기존의 세종 관련 연구나 서적들이 주로 세종시대의 어학․문화․철학․과학기술에 집중되어 있다면, 이 책은 ‘국가경영자 세종’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한국적 리더십의 원형으로서 세종의 리더십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세종의 외교정책, 북방정책, 인재․지식경영법 등 우리의 정서와 기대에 잘 부합될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리더십 사례들과 비교해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의 ‘말하는 법’과 ‘일처리 방식’에서 ‘세종 르네상스’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를 이끈 수성(守成)의 리더십
“백성들의 소박한 행복을 위해 비범한 노력을 기울이다”
세종은 재위 19년간 가뭄, 홍수 같은 열악한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지켜주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던 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개혁의 시기를 넘어 수성의 시기로 접어든 조선왕조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국왕으로서의 권위를 앞세워 신하와 백성들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경연에 참가해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숙의정치를 펴고, 공법을 시행하기에 앞서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등 정치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리더였다. 혁명과 건국이라는 창업의 어수선한 시기를 지나 정치와 사회의 운영 메커니즘이 안정화되고 제도화되어가는 시기를 뜻하는 수성기, 세종은 자신의 시대를 “수성기(守成期)”로 인식하고 있었다.
기업이든 국가든 간에 창업을 하고 일정한 수준까지 올려놓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대내외적 도전과 시련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난관들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키고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따라서 창업의 단계를 넘어서 수성의 단계로 진입시키는 데는 뛰어난 리더십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수성의 리더십을 가볍게 여기거나, 창업의 리더십과 혼동하곤 한다. 기껏 현상유지 능력 정도로 수성의 리더십을 간주하거나, 반대로 창업자와 같은 끝없는 도전정신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가나 기업은 현상유지나 도전정신만으로 지켜질 수 없다. 태종이 양녕이나 효령이 아니라 충녕으로 후계자를 바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종 리더십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은 이런 세종의 정치 내지 리더십의 원천을 다음 네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 세종은 왕업을 안존시키고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까지 경청하는 자기 통제력의 소유자였다.
둘째, 인재를 기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리더십이다. 세종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함께 단점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공적에 의해서 그의 허물을 덮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군주의 시대적 사명이자 정치의 고유한 영역이다.
셋째, 세제개혁 등 민생(民生)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신료들의 의견은 물론 일반 백성들의 여론까지도 수렴하는 숙의(熟議)의 정책결정 방식이다.
넷째, 명나라에 지성으로 사대외교를 하되, ‘파저강 토벌’과 이후 ‘4군6진 개척’ 과정에서 중국의 지지를 얻어 핵심적인 국가이익을 확보하는 실용적 사대외교이다.
총론해서 말하자면, 세종의 정치는 한마디로 ‘백성들의 평범한 생활을 위한 비범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백성들이 각자 맡은 바 일을 하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형제ㆍ부부 간에 우애하는 그런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국왕과 신료들이 비상한 각오로 비범한 노력을 하는 그런 정치라고나 할까. 그래서 백성들이 매일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일상을 진실 된 마음으로 실제에 도움이 되는 정치’를 위해 정성과 지성의 노력을 기울인 정치가였던 것이다.
세종에게서 배우는 “희망의 정치”
조선왕조 전 역사에 있어서 세종은 단순한 한 명의 국왕이 아니었다. 정조를 비롯해 거의 모든 국왕과 신하들이 세종을 일종의 ‘준거가 되는 군주’로 간주했다. 정암 조광조를 비롯해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과 같은 신하들 역시 세종과 같은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서울대학교 김홍우 교수는 “세종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최고봉이자 분수령”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즉 한국 불교사상의 최고봉이 원효대사이고 유교사상의 거봉이 퇴계 이황이라면, 한국 정치의 최고봉은 세종대왕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 우리나라는 건국한 지 60년이 채 안 된, 말하자면 경장의 시기라기보다는 수성(守成)의 시기에 가깝다고 보고, 전면적인 수술을 단행하기보다는 가급적 ‘체질 개선’을 하거나,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바른 태도’를 형성해주는 리더십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점에서 세종이 국가의 기틀을 잡고 인재를 기르며 나라의 비전을 제시했던 ‘과정’과 정치하는 ‘방식’은 오늘날 최고지도자들에게 한국 정치의 원형이자 하나의 새로운 리더십 모델로서 충분하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세종 정치의 사례를 여러 측면에서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은 무한한 문화콘텐츠의 보고이자 용기와 믿음을 주는 희망 정치의 생명수인 셈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600년 전 조선 왕들의 준거 군주인 세종의 북방 외교정책, 인재경영법, 지식경영법, 세제 개혁, 위민정치 등을 재현해냄으로써, 창업보다 어려운 수성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세종의 수성 리더십을 분석하고 있다. 세종시대의 조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수성기임을 주장하는 필자는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리더들에게 하나의 새로운 한국형 리더십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