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솔이네는 아픈 할머니가 계셨다. 누가 봐도 오래 사실 분 같지 않았다. 더 끔찍한 것은 오랫동안 주삿바늘을 꽂고 있어 한쪽 팔이 퉁퉁 부어 있었다는 점이다. 할머니는 이따금 신음 소리를 냈다. 그것 말고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벌써 3년째라고 했다. -본문 11쪽에서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수빈이와 반대하는 은솔이가 카트라는 쟁점에서 부딪친 것이 흥미로웠다. 카트는 남아메리카의 코카 잎과 같은 각성 물질이다. 15세기 예멘에 수입돼서 많은 사람들이 씹어 먹거나 물에 타 먹는 기호 식품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멘에서는 식품이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그것이 마약이라는 사실이다. 난민들과 함께 카트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퍼질 수 있다. 은솔이는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은솔이와 수빈이는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두 사람의 논쟁을 듣고 나서야 아이들은 난민 문제가 아주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본문 31쪽에서
“혼인의 자유가 있잖아? 혼인을 할지 말지, 한다면 누구랑 할지 선택할 자유 말이야.”
은솔이는 수빈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빈이는 더 이상 부연 설명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결론으로 들어갔다.
“누구랑 가정을 이루느냐 하는 건 자유라고 생각해. 남자든, 여자든.” -본문 46쪽에서
“도무지 감당 못 할 정도의 양이 나옵니다. 수백만 마리에 이르는 식용 개가 이를 처리해 주지 않았다면 국토 전체가 음식물 쓰레기에 뒤덮이고 말았을 겁니다.”
재우는 졸린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오잉! 식용 개?’
재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얘기였다. 음식물 쓰레기는 돼지한테나 먹이는 줄 알았는데, 그걸 개한테 준다고? 그리고 그런 개가 수백만 마리라고? 우리나라에? -본문 60쪽에서
꼬맹이들 때문에 쓸데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그렇지, 진료라고 해 봐야 별게 없다. 의사 선생님은 언제부턴가 청진기도 잘 대지 않고 몇 마디 묻기만 하고는 가라고 한다. 처방할 약이 이미 정해져 있기도 하겠지만, 컴퓨터 모니터를 보다가 재우에게 눈길 한 번 주는 게 진료의 전부다. 그래서 병원을 나설 때마다 기분이 찜찜하다. 아예 1년 치 약을 처방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본문 74쪽에서
은솔이는 자유 학년이 아니었으면 아이들과 이렇게 친해지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쉬는 시간만 되면 복도마다 바다표범처럼 널브러져 있던 남자애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지금은 다 시든 상추처럼 웅크리고 있지만, 그때는 학교 안팎이 들썩들썩했다. 그게 마지막으로 크게 웃은 때였던 것 같기도 하다. -본문 89쪽에서
“물리적 거세가 아니고 화학적 거세야. 독일 나치 정권에서는 물리적 거세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못 하고, 약물로 충동을 막는 방법을 써.”
재우는 여자애랑 마주 앉아서 ‘거세’ 얘기를 하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수빈이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한쪽에서는 현우가 수빈이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뭐라도 재미있는 그림이 있는지 자료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본문 102쪽에서
“제2외국어라는 말 자체가 문제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영어 말고 다른 나라 말은 전부 제2외국어냐 하는 푸념이지요. 물론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외국어를 배운다면 당연히 영어를 제일 먼저 배워야 하니까요. 최소한 그런 현실 자체는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문제는 영어 말고 다른 외국어도 더 배울 거냐, 아니면 영어로 충분하냐, 이것이죠. 예전에는 독일어도 배우고, 프랑스어도 배웠습니다. 또 한때는 중국어 열풍이 불기도 했고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제2외국어도 계속 변하고 있어요.” -본문 116쪽에서
독일에서는 AI가 쓴 책도 나왔다. 딥러닝을 통해서 기존에 나와 있는 자료들을 다 섭렵한 다음 말끔히 정리해서 책을 만든다. 사람은 그저 분야만 정해 주면 된다. 가령, ‘리튬 이온 배터리’라는 제목을 줬더니 참고 문헌과 각주까지 달아서 AI가 270쪽짜리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가 AI, 베타 라이터(Beta Writer)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어떨까? 가령, 사람은 그저 “그림 그리기!”라고 명령만 내리고 AI가 혼자서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낸다면 그 작품 역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게 바로 오늘 토론 시간의 주제였다. -본문 130쪽에서
어느 나라 관광지를 가든 우리나라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빨리빨리’라고 우리말 흉내를 낸다고 하죠. 자, 그럼 오늘의 주제입니다. 이런 우리의 특성을 고쳐야 할까요? 아니면 굳이 고칠 필요가 없을까요?” -본문 146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