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여름이었다. 나는 적어도 10년은 보지 못했던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크누텐과 나, 우리는 늘 함께였다. 내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불안 증세로 내 왼팔, 내 손가락이 쑤신다. 난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문밖에 나선 지도 몇 달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불안감이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내가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난 무엇이든 해야 한다. 이 불안감이 그치질 않는다.
_8쪽
그녀의 손이 내 손의 살갗을 스친다, 나는 혼자서 웃음을 짓는다, 그렇지만 나는 시간 감각을 잃어, 그녀가 내 손을 더듬은 순간이 길었는지 짧았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양동이를 받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녀는 내 살갗을 만진 것일까.
_31쪽
갑자기, 난데없이, 저물기 전보다 강력하게, 아주 분명하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몸속을 파고들어 내 왼팔과 손가락이 쑤시기 시작했다, 아프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곳에서 무언가가 날 덮쳐 온다, 내가 크누텐의 아내를 쳐다보자 그녀가 날 바라본다, 나는 그녀의 놀란 눈을 알아차리고, 불현듯 알게 된다, 나는 크누텐이 해안가에 서 있음을 그녀에게 말할 수 없다, 나는 말할 수 없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말할 수 없다.
_37~38쪽
당신은 늘 그래, 라고 말하는군요, 그의 아내가 내게 말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무척이나 이상하다, 불안감, 이 극심한 불안감,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그녀의 눈이, 그녀의 눈이 이제는 어디에나 있다, 하늘 위에, 피오르 너머에, 이 불안감,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은 것을 결코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녀의 눈.
_41쪽
지금에 와서는 너무도 사소해 보이는 그 일들이, 그때 당시에는 훨씬, 훨씬 더 큰, 거창하고 비밀스러운 일로 보였어. … 지금 돌이켜 보면, 전부 다 사소해 보이고, 우리가 무슨 일들을 했었는지 떠올리기조차 어려워, 우린 해변에서 쓰레기를 주워 모았고, 암호명을 쓰거나 그런 비슷한 것들을 했어,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모든 게 다 참 거창했단 말이야,
_144~145쪽
그 보트하우스처럼 지금은 모든 게 너무나 달라, 그곳은 정말로 큰, 거의 내 모든 삶이었던 곳인데, 그런데 지금 거기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이,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아, 그냥 사라지지, 모든 것은 달라져, 한때 그랬던 것은 예전과는 꽤나 다른 어떤 것이 되어 버려, 사소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 그런 식인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냥 그런 거야,
_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