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관념과 세상 모든 사람이 가지는 행복의 관념이 전혀 다른 것 같다는 불안, 그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밤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끙끙 앓다 그만 미치고 환장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과연 나는 행복한 것일까요? 나는 어릴 때부터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남들에게서 심심찮게 자주 들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고 나더러 행복하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외려 감히 나와 비교조차 할 수도 없을 만큼이나 훨씬 더 평안하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16쪽)
비합법. 나는 그곳이 은근히 즐거웠습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서 좋았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통용하는 합법이라는 게 오히려 더 겁이 나고 요지경 속처럼 돌아가는 그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창문 하나 없는 그 냉골 방바닥에는 도저히 죽치고 앉아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깥세상이 비록 비합법이라는 망망대해라 할지라도 나는 거기에 풍덩 뛰어들어 헤엄치다 이윽고 죽음을 맞이하는 편이 차라리 속이 후련할 것 같았습니다. 합법이라는 세계에는 정체 모를 강력한 힘이 작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64쪽)
다만 분위기를 확 깨버린 것이 숨통이 막힐 만큼 두려운 나머지 나중에 내게 손해로 고스란히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주특기인 익살 연기로 죽을힘을 다해 봉사를 했습니다. 설령 그것이 왜곡되고 보잘것없고 어리석은 짓일지언정 오로지 봉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더 앞서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그만 한마디씩 꾸밈말을 덧붙이고 마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습성도 세상의 이른바 ‘정직한 자’들에게 된통 이용당하게 되는 허점이 되었습니다. (129쪽)
이때 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건 중학교 시절에 내 가 몇 장 그린 것으로, 다케이치가 이른바 ‘요괴’ 같다고 표현한 그 자화상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걸작. 이사를 몇 차례 다니는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그 자화상만은 의심의 여지 없이 뛰어난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도 나는 다양하게 그림을 그려도 봤지만 옛 추억 속의 그 걸작에는 발 벗고 뛰어도 근처에도 못갈 정도라서 내 가슴은 늘 텅 빈 것 같고 노곤한 상실감에 내내 시달렸습니다. (117쪽)
처세에 능한 재능이라……. 나는 하도 기가 차서 쓴웃음 이외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내게 처세에 능한 재능이라니 하지만 나처럼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피하려 들고 게다가 속임수로 일관하는 자도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속담처럼 영리하고 꾀바른 그 처세술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 되는 건가요. 오호라, 인간들은 상대방의 속내를 아무것도 모르고 서로 착각 속에 빠져 둘도 없는 친한 친구라 굳게 믿고 착각에 빠진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한 채 평생 그렇게 살다가 상대방이 숨을 거두기라도 하면 울먹이며 애도를 표하는 조사 따위를 읽어 내려가는 건 아닐까요. (123쪽)
마침내 나는 모든 것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급기야 사람들을 한도 끝도 없이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에 거는 기대감을 완전히 접고 게다가 기쁨과 공명에서도 영원히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