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서구관료제의 도입은 미군정 시기의 군대 조직에 의해 처음으로 이루어졌으며 이후 냉전적 분단 상황 하의 병역의무 이행과정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이 군대조직을 경험하면서 더욱 내면화되고 확산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리더십의 특징은 남성들의 군대 조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리더십이 주를 이루었다. 더욱이 이전부터 존재해온 한국의 전통문화인 가부장적 유교문화가 영향을 미치면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리더십이 대세를 이루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리더십 문화는 근대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유교문화를 토대로 서구관료제와 군대문화가 융합되면서 형성되었다.
Chapter 1 미래를 이끌 여성 리더십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어린 시절 마거릿은 1925년 10월 13일 링컨셔주 그랜샘에서 식료품 가
게를 운영하는 중산층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결혼 전 성은 로버츠(Roberts)이다. 아버지가 2개의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처의 가족은 대대로 감리교의 독실한 신자로 감리교도의 가르침인 ‘남에게 기대지 말고 뭐든 자기 힘으로, 늘 반듯하게 모범적으로’라는 신념이 대처의 생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더욱이 가훈도 ‘검소 검약, 자기 책임, 자조 노력’으로 정해 온 가족이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가훈이 대처의 습관을 만들고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어, 총리가 되어서도 생활이 되었다. 대처는 아버지 알프레드를 매우 존경했고,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배웠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았다.전형적인 미들 잉글랜드 출신인 아버지는 나중에 시장을 했다.
Chapter 2 정치로 세상을 바꾼 여성 리더십
1937년 27세에 로게토 성모수녀회의 수녀로서 종신서원을 한다. 이때 테레사 수녀는 본명 아그네스 외에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선택했다. 테레사라는 세례명은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수녀이자 성인인 리지외의 테레사(63)를 본받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1946년 38세에 콜카타에서 다즐링으로 피정(64)을 가던 기차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 속에 살며, 그들에게 봉사하며 살라는 소명을 받는다. 테레사는 수도회 밖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을 요청했다. 그러나 가톨릭 교단에서는 정치적 의미와 그녀의 신변보호 문제, 종교적 문제 등등으로 인해 테레사 수녀의 청원은 2년의 세월을 질질 끌었다. 그러나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고 청원을 거듭했다. 마침내 당시
교황이던 비오 12세로부터 수도원 외부거주를 허가받은 테레사 수녀는 1948년 인도의 거리로 혈혈단신 나섰다. 이제 그녀를 보호해줄 단체나 기관은 아무것도 없었다.
Chapter 3 사회를 바꾼 여성 리더십
마리아의 미모와 연기력에 주목한 유럽의 영화 제작자들은 영화에 출연하라는 제안을 해왔다. 결국 마리아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1936년에 독일계 유대 상인 오페르트를 주제로 한 ‘백의(白
衣)의 처녀’에 출연하면서 영화의 삽입곡을 직접 노래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후 ‘가혹한 마음’, ‘어머니의 노래’, 베르디의 전기영화 ‘베르디의 세 여인들’, 오페라 영화 ‘나비부인의 꿈’, 19세기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말리브란의 전기영화 ‘마리아 말리브란’, 그리고 ‘오데사의 불꽃’, 등의 수 많은 영화에 출연한 그녀는 오페라 가수로서는 물론 영화배우로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마리아는 성악가와 영화배우로 점점 유명해지고, 바빠지면서 남편 비루도프와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남편은 나이가 많아서 연인이라기보다는 스승이나 아버지처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애정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리아는 영화 ‘가혹한 마음’에 함께 출연한 오스트리아의 영화배우 구스타프 디슬과 가까워졌다. 디슬은 자신보다 11년 연하인 젊고 아름다운 소프라노 가수에게 매혹되었고, 마리아와 디슬은 사랑에 빠졌다.
Chapter 4 예술로 세상을 바꾼 여성 리더십
이순신의 어머니는 삵 바느질을 하면서 어려운 가정을 이끌었다. 평소에는 매우 다정했으나, 아이들의 교육만큼은 엄하게 가르쳤다. 비록 벼슬을 하는 집안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훌륭하게 키우고 싶어 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소위 명성있는 집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들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길러냈다. 이순신이 8살 때 어머니의 친정인 충남 아산으로 이사를 하고 32
살까지 살았다. 이순신은 아산의 외가집에서 24년간 가장 중요한 시기에 외가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영향이 매우 컸다.어머니는 틈나는 대로 아들들에게는 늘 남자다움을 잃지 말라고 가르쳤으며 아들들이 커가면서 아들들에게 이 같은 말을 자주 당부했다.
“세상에서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이 달아나도 제 입으로 한 말은 꼭 지켜야 한단다.”
어린 이순신은 어머니의 말씀이 가슴에 매우 와 닿았다.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입으로 한말을 꼭 지키겠다고 다짐하였으며, 실천해 나갔다.
Chapter 5 자녀교육으로 세상을 바꾼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