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에 신경을 쏟는 대신 내가 속한 마을과 사회를 다르게 상상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비혼 여성이 마을사람들과 텃밭에서 상추를 키우고, 그 상추가 식단에 오르는 동네 식당에서 식구(食口)를 만나고, 이들과 돌봄을 주고받으면서 유연한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간다면? 치매를 앓는 노인이 중증 환자로 격리되기보다 의료협동조합에서 오랫동안 치매를 학습해온 주민들로부터 집단적인 보살핌을 받는다면? 그리고 마을돌봄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제도적 문제들에 대해 주민들이 간편하게 중지(中智)를 모으고 정부에 책임을 요구하는 플랫폼이 열려있다면? 이 책은 이러한 풍경을 즐겁게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에 나선 10인의 인터뷰를 담았다. - 5쪽
전환마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요. 전환마을이라고 ‘선언’하면 돼요. 누군가 시작하고 전환마을 비전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거예요. 누구의 허가도 필요 없고 정해진 방식도 없어요. ‘내가 좋으니 너도 함께하자’고 손 내미는 겁니다. 전환마을운동은 따로 리더가 필요 없어요. 뭔가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저 시작하면 돼요. 실패하면 또 다르게 시도하면 되는 거죠. - 24쪽
공동육아 아이들은 세균, 미생물, 미세먼지, 중금속이 묻어 있는 더러운 흙에서 놀아도 실내에서 노는 아이들보다 더 건강해요. 플라스틱 놀잇감 대신 천이나 나무 등 구조화되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놀고요. 짜여진 주입형 교육 대신 아이들이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놀이를 하죠. - 54쪽
당장 저부터도 대책이 없어요. 제가 돈을 많이 벌어놓은 것도 아니고. 분명히 나이 들면 아파서 병원 다니고 돌봄 받아야 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젊은 사람들도 돌봄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돌봐줄 사람이 없어요. 결국 지역사회에서 주민들 간의 상호돌봄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일 거예요. - 84쪽
만약 과학기술이 돈이 없어도 추울 때는 따뜻하게, 더울 때는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깨끗한 물을 언제든지 마시는 방법과 어두울 때 불을 켜는 방법 등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인간을 위한 기술들이 바로 적정기술이에요. 사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고 고칠 수 있는 간단한 기술이 자 전기나 물이 많이 필요 없어 값이 싼 기술, 화석연료나 핵발전에 의존하지 않는 기술,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나 생활습관에 잘 맞는 기술이지요. - 112쪽
청년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한 줌도 안 되는 삼성이나 현대 가려고 목매지 말고 제2의 스티븐 잡스 같은 사람이 돼라”라고 해요. 그런데 혼자 하지 말고, 같이 하라고 하죠. 안되는 취업에 목 매지 말고, 젊음을 자산 삼아 같은 길을 꿈꾸는 사람과 함께 적더라도 돈을 즐겁게 벌라고 해요. 돈은 마흔 넘어서 버는 거죠. 창업자끼리는 경쟁하지 말고 협동조합으로 해결해야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망하는 제로섬 게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요. - 142쪽
세상에 기댈 곳도, ‘빽’도, 자본도 없는 사람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만나는 거예요. 만나지 않고 개별로 떨어져 있을 땐 힘이 없어요. 저는 특히 동네에서 만남의 공간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많이 고민했어요. 일상생활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자본주의 방식이 아닌 협동조합 방식으로, 그리고 개별 단체에서 끝내지 않고 네트워크로 만들어야 돼요. 자신의 일상을 둘러싼 문제와 욕구가 여러 단체의 협업으로 해결되는 거죠. - 166쪽
메이커운동의 핵심은 뭔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만든다는 건데, 그걸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든다는 것이 중요해요. 다만 스스로 하되 협동해서 하는 거죠. 공유와 협력, 이걸 놓치면 안 돼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과 교환가치를 생각하지 않고 아이디어와 기술을 나누고 토론하는 공유의 메이커 문화가 너무나 멋져 제 인생을 걸고 싶더라고요. - 194쪽
소비자가 발암물질이 든 제품을 사지 않으면 기업도 만들 리가 없겠죠. 그러면 노동자도 암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요. 거꾸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지키려고 한다면 소비자도 보호할 수 있어요. 노동자만 안전한 세상도, 소비자만 안전한 세상도 불가능해요. 그러니 손을 잡아야 돼요. - 220쪽
저는 “정치는 아무나 삼시세끼 밥 먹듯이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녀요. 직접 시민들이 토론하고 논쟁하고 합의하며 필요한 것을 정치에 반영시키는 걸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거죠. 점심 먹다가 휴대폰으로 정책 토론도 벌이고 법안도 발의하고요. 퇴근 후에는 가족들과 모여 앉아 후보들이 어떤가 살펴보면서 점수 매기고, 새로운 인물도 발굴하고 그래야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고 시민들이 권력을 가진 정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 246쪽
의사인 내가 전문가이니 믿고 따라오기만 하면 돼, 환자는 자세한 건 몰라도 돼”라는 식의 태도가 지배하는 의료체계 속에서 우리는 소외를 경험해요. 여성주의적인 의료복지는 환자와 의사가 평등하고도 협동적인 관계를 이뤄 믿을 수 있는 의료기관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건강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 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