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신의 바람대로 그의 뇌가 삼체인들의 손에 들어가 부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악몽일 것이다. 냉혹한 외계인들이 그의 뇌에 센서를 붙이고 각종 감각을 입력하는 실험을 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가장 관심 있는 감각은 고통일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굶주림, 갈증, 폭력, 화상, 질식 등의 감각을 차례로 체험하게 하고, 고문 의자, 전기 충격, 심지어 능지처참의 감각까지 주입할 것이다. _109쪽
청신이 소유한 DX3906에서 얼마 전 2개의 행성이 발견되었다. 그중 하나가 질량, 궤도, 대기 스펙트럼으로 추측할 때 지구와 비슷한 지구형 행성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다. 사람들은 그 머나먼 세계에 주인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UN과 태양계 함대가 그 항성의 소유권을 되찾으려 했지만 주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이것이 바로 264년 동안 동면하고 있던 청신을 소생시킨 이유였다. _146~147쪽
묵직한 소리와 함께 1미터 두께의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청신까지 4명이 암흑의 숲 위협 시스템의 심장부로 들어갔다.
더 넓고 텅 빈 공간이 청신을 맞이했다. 반원형의 넓은 홀이었고 맞은편에 부채꼴의 하얀 벽이 감싸고 있었다. 표면은 얼음처럼 반투명했고 바닥과 천장은 모두 깨끗한 흰색이었다. 청신이 받은 첫인상은 눈동자 없는 안구 같은 서늘함과 아득함이었다.
곧 뤄지가 눈앞에 보였다. _208쪽
강진이 발생했다. 물방울이 지층을 뚫으며 일으킨 것이었다. 청신은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주위의 단단한 암석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통제 센터가 거대한 북 위에 올라간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물방울이 머리 위 지층을 뚫는 광경을 상상했다. 그 매끄럽고 반짝이는 악마가 우주의 속도로 이곳을 휘젓고 주위의 모든 것을 녹여 마그마로 만들어버리는 상상이었다. _221쪽
눈앞의 우주에 빛나는 긴 선이 나타났다. 처음 나타났을 때는 육안으로 너비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가늘고 5천~3만 킬로미터쯤 길게 이어진 직선이었다. 그것들은 별안간 나타나 파란빛을 내다가 점점 빨간빛으로 바뀐 뒤 천천히 구부러져 짧게 끊어진 다음 사라졌다. 관측해보니 4차원 조각의 가장자리에서 생성된 것들이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펜이 우주에 4차원과 3차원의 경계선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_324쪽
지구는 이미 인간이 거의 살지 않는 곳으로 변했다. 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은 5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고 싶지 않고 언제든 들이닥칠 사신도 두렵지 않은 이들이었다. 벙커 세계의 용감한 사람들이 지구로 여행을 오거나 휴가를 보내러 오기도 했지만 그건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암흑의 숲 공격이 가까워지고 사람들이 벙커 세계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먹고살기에 바빠 지구에 대한 그리움도 점점 옅어졌다. _567쪽
빛점이 빠르게 커지며 타원형 평면으로 변했다. 2차원 평면이었다. 그 평면에서 내뿜은 빛이 주위의 빌딩 숲에 부딪혀 수많은 빛기둥으로 쪼개진 뒤 중심축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었다. 밑바닥에 구멍이 뚫린 거대한 바퀴처럼 우주 도시가 2차원 평면의 바다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2차원 평면이 배 안으로 스며든 물의 수면처럼 빠르게 상승하며 평면에 닿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2차원으로 만들어버렸다. 빌딩 숲이 밑에서부터 나란히 잘리며 2차원 단면의 형태로 우주 도시 끝까지 뻗어나갔다. 점점 차오르는 2차원 평면에 나란히 잘린 뒤 2차원 형체가 평면 위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_676쪽
초기 우주학에 이런 역설이 있었다. 만일 우주가 무한하다면 천체도 무한히 많을 것이고 그러면 수많은 천체의 중력 구간이 서로 겹치며 모든 천체가 사방에서 작용하는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라는 역설이었다. 지금 청신은 자신이 정말로 무한한 중력에 끌어당겨지는 기분이었다. 우주의 수많은 방향에서 다가온 중력이 그녀의 영혼을 갈가리 찢고 있었다. 127년 전 검잡이로서 마지막 순간에 느꼈던 그 끔찍한 환상이 재연되었다. _7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