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는 ‘추운 어느 날…’로 시작하는 낯선 만남이 많습니다. 인천에 당도했던 첫 장면을 끄집어내 봅니다. 자세한 연도는 잊어버렸지만 이십 대 시절, 아주 오래전의 기억입니다. 하나는 저녁때쯤 인천역에 내려 올림포스 호텔(당시엔 파라다이스 호텔) 쪽을 바라보았던 짙은 풍경이고, 또 하나는 내리교회 아래에서 어느 할머니가 운영하시던 삼치집의 왁자지껄한 울림인 듯합니다. 그렇게 담긴 인천이 훗날 거주와 활동의 장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감을 당시에는 수첩에 남기지 못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산을 중심으로 길을 가늠하였기에, 고향을 떠나와서도 주변의 산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천의 입문, 관문 격인 응봉산을 자주 오르내리게 된 것입니다. 바다로부터가 아닌, 육지로부터 인천에 다다른 저는 언제부턴가 서쪽 끝 응봉산 일대를 산책하며, 인천을 수집하고 인천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숱한 흔적이 쌓인 개항장 일대를 은밀히 휘젓는, 한 청년이 바라본 장면들과 날씨의 기록을 닮은 일기들은 결국 인천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공부였던 셈이지요.
이 책은 2011년 봄부터 가을까지의 산책 일기와 2010년대 초중반 단숨에 오르내리던 응봉산 일대의 사진을 맞대어 놓은 것입니다. 매일의 산책이 가져다준 사색은 나의 일상이 지역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고, 이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창작을 이어가도록 다독이는 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 「들어서며」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