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하늘에서 뿌려지는 하얀 눈이 쌓이면 소복소복한 분위기의 진풍경이 벌어진다. 어둠을 틈타 산대울에 눈이 내리면 이른 아침 화장실 가는 길에 보게 된다. 내 키보다 몇 배나 큰 대나무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그 길에서 곧고 단단한 대나무조차 꺾이기 일보직전인 상황에,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숨을 쉬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벅찬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가지 끝을 흔들어 눈을 털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세찬 눈보라가 다시 내게로 뿌려지곤 했는데 흐뭇했다.
고무신을 신고 뛰어가다가 신을 찾지 못하기도 하고, 낮에 녹지 않은 쌓인 눈이 얼어 딱딱하게 날카로워진 것을 초저녁에 만지기라도 하면 어린 손이 금방이라도 베일 것만 같은 시퍼런 느낌조차도 무서웠지만 모두 겨울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하우스 눈 치우랴 마당 쓸랴 바빴고, 소들이 춥지 않게 막아주고 씻겨주고 먹여줘야 했다. 수돗가 수도꼭지부터 땅까지 얼어붙은 고드름을 녹여야 했으며 그러는 사이 자주는 아니었어도 눈을 담아 밥물로 쓰던 엄마의 모습도 생각난다. 산의 새들은 춥지도 않은지, 시냇가 송사리는 얼어 죽지 않는지 걱정을 한 번 하고는 늦가을 엄마가 만들어 둔 감꼬치를 먹으며 이불 속에 들어가 노닥거렸다. 스케이트를 만들고 썰매를 만들고 팽이를 깎고 눈사람을 굴리고 활을 만들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골세계를 평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치기 어린 꼬마사냥꾼 노릇을, 아니 섭리를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밭에서 토끼를 잡고야 말겠다고 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는 하다.
나는 겨울생으로 유난히 추운 동절기를 동경하고 즐기곤 한다. 추운 것도 내겐 이로운 분위기이다.
- 「겨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