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플래너는 사람들이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업이다. 사람들이 조금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럽게, 조금 더 편안하고 더 행복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다. (…)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누구도 나 대신 죽어줄 수 없다. 오직 혼자 가는 길이다. 그래서 출산, 육아, 진로, 취업의 계획을 세우듯,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일을 돕고 싶었다. 어쩌면 나의 고객은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해당한다.
- 16쪽, 나는 웰다잉 플래너, 그리고 꼭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린다. 한국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의 4층 버튼조차 F로 바꿔버렸다. 죽을 死가 연상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혼식이나 출산 같은 좋은 일을 앞둔 사람은 장례식장에 가지 말라고 한다. 한 복지관의 교육 담당자는 내게 교육을 의뢰하며 어르신들이 불편해하실지 모르니 수업 중에 ‘죽음’이라는 단어는 가급적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잘 죽는 법을 공부하는 수업인데 죽음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말라니, 마치 자동차에 핸들을 빼고 운전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 32쪽, 죽음이 죽었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당신은 죽음을 연구한다던데,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에 나는 거리낌 없이 “죽음은 곧 삶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심오한 종교의 교리로 증명하지 않아도, 철학적 논증 방법까지 가지 않아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게 된 죽음은 곧 삶이었다.
- 53쪽, 사람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는다
조사된 내용을 모두 읽고 어르신들에게 공감하시는지 여쭤보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신다. 어떤 어르신들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으시기도 하고, 손뼉을 치며 저렇게 죽는 것이 복이라고 대답하신다. 저렇게만 죽는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나의 말 한마디에 교실은 곧 조용해진다.
“어르신,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죽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좋은 죽음이 불가능할까?
- 147쪽, 어떻게 죽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