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쇼는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려면 두브로브니크로 오라.”고 권했다. 그가 발견한 천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르지만, 조지 고든 바이런이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로버트 카플란이 '영광스러운 불사조 도시 두브로브니크'라고 쓴 것이 비단 아름다운 자연 환경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역사상 두브로브니크는 자유와 독립, 그리고 포용력 있는 시민 정신의 상징이었으며 무기에 의존해야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평하는 기록들을 봐서도 그렇다. 심지어 이 도시는 '세계의 보물(Thesaurum mundi)'이란 뜻의 라틴어 별명도 가지고 있다.
-본문 020쪽, '발칸의 빛, 눈부신 두브로브니크'
세르비아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세르비아의 인종청소가 부각되고 오래 회자되는 바람에 세르비아에 대해 인상이 구겨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까? 내가 알고 있는 것,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일까? 세상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순한 도식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일들이 참 많다. 실제로 알아갈수록 발칸유럽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해자였던 과거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 사람들을 학살하고, 세르비아 사람들이 보스니아 사람들을 인종청소했다. 사람들은 불시에 불어닥친 쓰나미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누구랄 것도 없이 '악의 평범성'이 적나라하게 발현되고 만 불행이었다. 그때 과연 세르비아만이 악의 축이었을까?
-본문 092-093쪽, '세르비아를 위한 변명'
종교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학살자와 그 동조자들은 참담한 재앙의 원인을 종교 탓으로 돌리려 한다. 수백 년간 보스니아의 곳곳에서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들이 별일없이 뒤섞여 살았다. 분명한 것은 보스니아의 불행한 사건들이 결코 종교인들의 갈등으로 빚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을 다른 데로 돌려야만 하는 세력들이 줄곧 종교가 분쟁의 씨앗이었다며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
-본문 221쪽, '보스니아, 세 개의 다리'
흔히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라고 불리는 발칸유럽이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와 역사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는 말은, 한편으로 그만큼 다양한 자취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다채로운 삶의 현장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정교인과 무슬림과 가톨릭 신자들. 그들이 겪은 고통의 흔적 위에 치유의 수고가 더해져 더 빛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 발칸유럽이다. 이 작은 책이 발칸유럽을 이루는 모자이크 조각들의 빛과 그림자를 만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연민과 공감으로 내미는 손길이 되면 정말 좋겠다.
-본문 293~294쪽, '점등인의 도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