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 사표를 내던 날, 텅 빈 책상을 보면서 나는 아쉬움보다 홀가분함을 느꼈다. 두 번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테다. 하지만 살아가는 내내 그리워할 것임은 분명했다.
특종을 향한 오만한 집착과 인간에 대한 서툰 연민 사이에서 서성이며 살아온 기자 인생.
“좋은 기자가 될 것인가? 좋은 인간이 될 것인가?”
가슴 먹먹한 질문은 앞으로도 결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 “특종의 맛” 중에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천천히 겸손함을 배웠다. 그리고 주연과 조연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공동의 목표를 세운 뒤 내가 기울인 노력을 다른 누군가를 빛내기 위해 사용하는 일, 그것이 조연의
미덕이다. 스스로 별이 될 수 없다면, 남을 위해 애쓰는 것도 좋은 일이리라.
- “추락의 날개” 중에서
경력을 모두 지우고 나니, 이력서는 겨우 A4 반장. 나는 한 손을 들어 턱을 괴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
테스코의 일용직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까? 두려움에 짓눌렸던 마음을 겨우 다잡았다. 낯선 일을 마주하고 생짜 초보가 되는 건 분명 힘든 일이다. 하지만 부딪히지 않으면 아예 모를 세상. 과거의 경력을 전부 잊고 수줍게 도전할 용기와 열린 마음이 필요했다.
- “어차피 초보 인생” 중에서
한때는 특별함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얼마나 가엽고 고된 시절이었던가.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외투를 벗어 던졌다. 평범한 자신을 인정하고 나니, 창작의 자유를 얻었다.
옥스퍼드에는 가을이 왔다.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며 고딕 건물의 벽을 스친다. 나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캠퍼스 중심으로 향한다.
- “리셋 인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