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딸을 떠나보낸 엄마의
삶의 회복과 재건에 관한 이야기
순식간에 세상이 무너졌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며 키웠던 열일곱 딸이 스스로 생을 등졌다. 아이가 정신과에서 마지막으로 진단받은 병명은 양극성 장애 2형. 임상이 풍부한 종합병원의 진료를 받기 위해 수개월이 걸리는 병원 예약을 어렵사리 잡았지만, 아이는 종합병원 첫 진료일을 일주일 앞두고 떠났다. “그리워 말고 추억해 주세요”라고 적은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널 보낼 용기》의 저자 송지영 작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절망의 한복판에서 시간을 건너기 위해 글을 썼다. 딸의 표정과 말을 반추하면서 상처를 헤집기도, ‘무엇을 놓쳤을까?’ 되짚어보기도, 전문가의 심리상담을 받고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면서 아이를 보낸 이후의 한 계절을 글쓰기에 기대어 살았다. 한 편 한 편 슬픔을 꿰고 엮은 이 책은 “늦었지만 아이에게 다가갈 한 줄의 언어”를 찾으려는 여정이고, 삶의 끝에서 딸이 남긴 말에 힘껏 응답하며 살기 위한 결심의 발로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8.3명.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면 적게는 6명, 많게는 20명의 삶까지 뒤흔들린다고 한다. 가족을 자살로 잃은 이들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20배 이상 높다는 통계도 있다(2022, 삼성서울병원 전홍진 교수 연구팀). 그러나 떠난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슬픔을 털어놓는 일이 금기처럼 여겨지기에, 자살 사별자가 겪는 구체적인 고통이나 당면해야 할 현실은 통계 수치 뒤에 가려져 어림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식을 먼저 보낸 자살 유가족은 ‘저 집엔 무슨 문제가 있겠지’,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어?’ 하는 식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워 더욱 말하기가 어렵다.
저자는 스스로를 치유했던 글로써, 이번에는 비슷한 아픔을 겪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듬길 소망한다. 커다란 상실 이후에도 교교히 흐르는 삶의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오직 겪은 자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로 전한다.
상실을 품고 살아가는 일은 끝내 완결될 수 없는 슬픔이다. 애도는 눈물로 닫히는 문이 아니라, 날마다 열어야 하는 창문과 같다. 나는 남겨진 자로서 어제보다 덜 원망하고, 오늘을 조금 더 살아내는 선택을 한다. 삶은 이런 작은 다짐들이 모여 나를 내일로 이끈다. 그 결심의 끝에서 나는 우리 가족의 비극을 우리만의 비밀로 가두는 대신, 모두의 과제로 내어놓는다.(9쪽)
소중한 이를 추억하면서 살게 되어도 매일 울어야 하는 건 아니다. 《널 보낼 용기》는 슬픔 속에도 한 줄기 빛이 스밀 때가 있다는 걸, 당장은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듯한 시간도 천천히 흘러간다는 걸 말해주는 책이다.
비단 참척(慘慽)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독자더라도 이 책에 실린 삶의 체험을 통해 한 개인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 되고, 어떤 아픔은 더 큰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귀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마음의 병을 앓는 아이들,
“왜 몰라보는 구조일까?”
저자는 딸이 종종 흘리던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이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하는 흔한 투정인 줄로 알았다. 자주 내뱉던 “괜찮아요”라는 말의 본뜻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라는 걸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예전의 유쾌하고 명랑했던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최선을 다하면 끝은 다정할 줄 알았다. (…) 정성으로 키운 아이는 결국 다 잘된다고들 했다. 이 말은 거짓이었다. 사랑으로 키워도, 아이는 떠났다.”(33쪽)
생전 아이는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대학’이라는 아직 보이지 않는 내일의 목표를 위해 오늘을 유예하면서 몸과 마음을 깎아가며 버텼다. 이 땅의 고등학생에게 삶이란 “밀려나면 존재가 부정당하는 생존 게임”이었다.
저자는 과거를 복기하며 딸이 앓았던 병을 이해하려는 한편, 오늘날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현실로 시선을 넓힌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열 살 미만 아동이 10만 명을 넘어섰고, 매년 청소년 자살률이 역대 최악을 갱신하고 있다는 작금의 현실은 그저 단순한 기사 한 줄이 아니었다. 딸의 진료를 받으러 찾아간 학군지의 정신과 대기실에서 자주 마주쳤던 교복 입은 아이들, ‘우리 아이가 그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다’는 온라인 자살 유가족 카페 엄마들의 글. 생사를 넘나드는 마음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 전해 들은 생생한 증언. 그 모든 풍경은 아이들의 병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책은 정신 질환을 앓는 딸을 최악의 결말로부터 지키고자 백방으로 숨 가쁘게 보살펴온 엄마이자, “아이 곁에 가장 가까이 있었기에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는 관찰자의 시선에서 청소년 정신 건강에 대해 다루는 섬세한 르포르타주와도 가깝다. 비탄 속에서도 때론 엄정하다 느껴질 만한 진술의 기저에는 더는 한 아이라도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깔려 있다. 정서적 위기로 인한 아이들의 자살을 과연 한 가정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작년 한 해만 스스로 생을 멈춘 청소년들이 221명이었다. 뼈아프지만, 바로 지금 청소년 동료 시민을 둔 우리 모두가 재고해볼 묵직한 질문이다.
이제 질문은 다르게 던져져야 한다. “왜 몰랐을까”가 아니라, “왜 몰라보는 구조일까” 구조 요청을 보냈던 아이보다, 손 내밀어야 했던 어른과 사회는 훨씬 더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125쪽)
“고통을 없애려 행복까지 덮어야 한다면,
삶은 무엇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삶을 살아갈 이유
상실 이후 삶은 어떻게 이어질까. 저자는 “천체 충돌” 같은 작별 이후 “연기처럼 너를 놓친 그 밤”의 기억에 붙들리는 날도, 온몸이 축 늘어질 만큼 눈물을 쏟아내는 날도 있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충분히 여물지 못한 어른으로 남지 않으려고” 시간을 견뎌내기로 한다. 딸과의 마지막 계절을 글로 옮기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지어나가고, 아이가 떠난 뒤 잠시 멈췄던 청소년교육 공부를 재개한다.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자살 유가족과 교류하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고, 오늘을 사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남아 있는 가족들과 나누며 나아간다. 딸과 보낸 열일곱 해를 짧았다고 한탄하기보다 “선물같이” 껴안을 수 있었던 시간들에 감사하면서.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비록 그가 부재할지라도 한 사람이 살아갈 이유가 된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그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커다란 상실을 딛고 남은 생을 살아가는 자가 들려주는 담담한 고백을 통해 우리는 겪지 않은 부재를 상상해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유함으로써 용기 있는 삶의 태도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추억은 기쁨과 슬픔이 얽혀 만들어진 섬세한 실타래 같다. 웃음 뒤에 울음이, 행복 옆엔 후회가 따라붙는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 모든 감정이 모여 하나의 사랑을 이루었다는 걸.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지키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상처까지도 껴안고 살아간다. 시간은 결국 모든 생을 끝으로 데려간다. 그 끝에는 견딜 수 없는 공허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사랑은 그 너머로 이어진다.(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