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문학평론가 박인성의 미스터리 안내서
〈선재 업고 튀어〉, 〈오징어 게임〉, 〈곡성〉, 〈파묘〉…
사랑받는 이야기 설계의 필수 요소 ‘미스터리’는
어떻게 모든 서사에 침투하는 힙한 장르가 되었나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동백꽃 필 무렵〉, 〈시그널〉, 〈비밀의 숲〉, 〈오징어 게임〉, 〈보이스〉, 〈커넥션〉 … 영화 〈살인의 추억〉, 〈곡성〉, 〈파묘〉 …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장르를 불문하고 미스터리 요소를 차용했거나 추리 기법을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오히려 미스터리 요소를 활용하지 않은 콘텐츠를 찾기가 더 어렵다. 미스터리는 어떻게 모든 서사에 침투하는 힙한 장르가 되었나.
1841년 에드거 앨런 포가 〈모르그 거리의 살인〉으로 추리소설을 발명한 이래, 미스터리는 시대와 지역에 맞게 변화하면서 각종 장르와 혼합하거나 하위 장르를 창출해왔다. 미스터리는 사람을 매혹하는 몰입감을 줄 뿐 아니라, 가장 포괄적이며 사회적인 장르로서 모든 장르와 결합하여 이야기성을 강화하고 깊이를 더한다.
미스터리야말로 그 관습과 문법을 가장 치밀하게 발달시킨 장르다. 이 책은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장르 문학과 문화콘텐츠 연구·비평 활동을 수행하는 박인성 평론가가 쓴 미스터리 장르 안내서다.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로부터 출발하여, 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며 어떻게 한국적인 변형을 거쳤는지 살핌으로써 ‘K-미스터리 리부트’ 현장의 깊숙한 곳까지 도달한다. 독자들에게는 문화콘텐츠를 향한 새로운 시선을 알려주는 장르 강의이자 현장의 이야기 설계자들에게는 폭넓은 영감을 주는 책이 될 것이다.
“미스터리는 유해하다”
‘약’이자 ‘독’인 미스터리 장르의 본질에 관하여
미스터리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장르다. 미스터리는 ‘파르마콘pharmakon’이다. 철학자 플라톤이 ‘약’이자 ‘독’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가진 이 단어에 주목했듯이 저자는 미스터리가 가진 위력에 주목한다. 무균실을 지향하는 세계에서 미스터리는 분명 유해한 이야기다. 언제나 선을 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스터리는 범죄를 도구화하는 범죄자의 시선을 거울처럼 되비춘다. 그것은 범죄를 둘러싼 사회적 현실이기도 하고, 범죄와 연관된 사람들의 두꺼운 사연의 다발이기도 하다. 여기서 핵심은, 미스터리는 독성을 부정하거나 무효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스터리는 유해한 이야기가 아니라 유해함에 대한 이야기다. 미스터리는 범죄를 매개로 하여 우리 세계, 사회, 개인에게서 촉발되는 다양한 유해함의 상상력을 다룬다. (…) 인간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경험하는 온갖 감정들은 단순히 부정적이기 때문에 극복해야만 하는 장애물이 아니다. 그러한 감정들은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고 시련으로 내몰며, 타인에 대한 책임감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끈다.”
“독자의 관심을 강력하게 빨아들이지만, 외부에서 관측할 수 없는 텍스트 내부의 블랙박스가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중심이 된다. (…) 블랙홀 내부의 진실을 알려면 위험을 감수하고 그 안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좋은 미스터리는 결국 독자들에게 추리의 힘이 아니라, 추리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제공한다.”
범죄를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적 증상으로 주목하고, 독자를 그 해결 과정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 저자는 이것이 미스터리 장르의 본질이자 목적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미스터리
- 전통적인 미스터리부터 첩보물, 하드보일드, 누아르, 오컬트, SF 미스터리, 역사 미스터리, 그리고 미스터리 게임까지.
미스터리는 사회적 장르로 출발했다. 저자는 고전적인 미스터리의 공식을 ‘범죄라는 형태로 드러난 사회적 문제를 공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이야기 모델’로 보았다. 인간이 발명한 가장 뛰어난 스토리텔링 방법인 미스터리는 이후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고 진화하며 문제 해결의 과정을 몰입감 있게 만들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미스터리 장르의 개괄적인 설명과 함께 사회적인 마스터플롯으로서 미스터리의 역할을 짚는다. 2부에서는 인접 장르들과의 결합과 교차 속에서 미스터리가 어떻게 해당 장르를 갱신하고 있는지 살핀다. 홈스식 퍼즐 미스터리가 세계대전을 거치며 어떻게 첩보 미스터리로 발전하는지(〈007〉,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제이슨 본〉 시리즈 등), 미국으로 건너간 탐정이 왜 마초가 되어 하드보일드와 누아르 장르를 낳았는지(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 등),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오컬트와 고유 문법이 없는 SF는 어떻게 미스터리 문법을 이용하는지(〈사바하〉, 〈파묘〉, 〈블레이드 러너〉 등), 멜로드라마와 미스터리가 결합하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비밀의 숲〉), 과거를 흔들어 현재를 재구성하기 위해 역사 미스터리가 어떻게 이성적 추리로 과거를 탐색하는지(《흑뢰성》) 등등. 더 나아가 미스터리의 게임성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 다양한 게임들까지 다룬다(〈역전재판〉, 〈오브라딘호의 귀환〉 등).
여러 요소가 결합한 미스터리 콘텐츠를 보며 독자 혹은 관객이 “이런 것도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나?”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미스터리가 영리하게 다른 장르의 문법을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성공한 한국 콘텐츠들이 공통으로 미스터리 장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모두가 법관인 시대,
무엇이 현재 한국 사회의 미스터리가 되어야 하는가
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세계에서 미스터리는 필연적으로 전혀 다른 정체성의 수수께끼와 씨름하게 된다. 바로 범죄를 둘러싼 사회적 장르로서 미스터리의 역할에 관한 질문이다. 3부 ‘K-미스터리 리부트: 법정에서 뛰쳐나온 탐정-자경단’에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사적 처벌 판타지가 커지는 현상을 주목한다. 〈모범택시〉, 〈빈센조〉, 〈더 글로리〉 같은 드라마나 〈참교육〉 같은 웹툰처럼 사적 처벌 서사가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폐쇄적 부족주의가 어떻게 단죄의 쾌감을 양산하는지 분석하며, 이를 통해 저자가 도달한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현재 한국 사회의 미스터리가 되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갈등으로서 미스터리의 대상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미스터리가 본래의 사회적인 장르로 거듭나기 위해선 ‘로컬리티’에 방점을 찍으며 답을 모색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로컬리티의 영향력은 특히 장르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하나의 로컬리티를 함께 살아가는 집단적 존재로서의 인간 공동체가 역사라는 공유지를 통해서 공통의 추리를 수행하는 과정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적 미스터리의 주된 관점 중 하나다.”
더불어 미스터리가 공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을 매개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을 구성하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관점에서 한국 미스터리의 고유함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 안내판을 세우는 일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범죄에 얽힌 사연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화된 억압과 소외와 이어져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따라서 사회적 증상으로서의 범죄자에 관한 미스터리 특유의 논리적 사연이 더해질 때, 비로소 한국의 본격 미스터리는 대중적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미스터리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모든 사람의 사연담이다.
사회를 위협하는 범인을 찾기 위해 발명된 장르가,
우리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수수께끼와 탐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