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화 작가 류민정의 첫 번째 그림책
캄캄한 한밤중 노란 별만 반짝거릴 때 한순간 빛이 반짝한다.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몽글몽글 무언가가 솟아나 나비가 되었다. 나비가 살랑살랑 어딘가로 날아간다. 어디로 갈까? 작가 류한월과 민화 작가 류민정이 만나 만든 그림책 《모든 순간, 너였어》는 캄캄한 밤에서 시작하여 어여쁜 노란 나비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대갈문화축제 현대민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민화계로 들어선 류민정 작가는 다양한 전시를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민화를 선보이고 있는 작가이다. 커피 전문점 브랜드와 컬래버를 하여 제품 디자인에 그림이 들어가기도 하고, 이탈리아, 프랑스, 카자흐스탄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를 연 바 있다. 민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현대적인 재해석이 가미되어 새롭게 보이는 작가의 그림은 민화인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동시대적인 작품이 많다. 그런 류민정 작가가 처음으로 그림책 작업을 한 것이 《모든 순간, 너였어》이다. 이 책은 세상 모든 존재들에게 생명의 탄생과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나비는 꽃이 되고, 꽃은 새가 되고, 새는 숲이 되는 마법 같은 이야기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생겨난 나비가 꽃밭에 살포시 앉았더니, 어여쁜 꽃이 되었다. 분홍과 노란빛이 어우러진 꽃은 참으로 화사하게 피었다. 새벽빛이 떠오르는 순간, 꽃잎은 살랑살랑 하늘로 날아갔고, 이내 새가 되었다. 세상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다가 어느 순간 숲이 되었다. 가만히 그림책을 넘겨보니 이 다음엔 무엇이 될까 궁금해진다. 초록과 연두, 파랑 등이 조화롭게 섞인 숲을 지나면 기세 좋고 용맹해 보이는 호랑이가 보인다. 어흥, 세상을 향해 포효하던 호랑이는 거대하고 웅장한 산이 된다. 산은 바람이 되고, 바람은 바위가 되고, 바위는 이내 구름이 된다. 구름이 모여 비를 내리니 온 세상이 슬픔으로 잠긴다. 그 뒤로도 아름답고 무해하고 꼭 필요한 존재들이 넘실넘실 파도를 타듯 리듬을 타고 이어진다. 마침내 태양빛에 다다랐다가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는데, 마지막 종착지는 과연 어디일까?
자연 순환과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
그림책 《모든 순간, 너였어》는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독자의 마음을 사르르 녹인다. 따뜻한 온기가 온 가슴에 퍼지는 듯하다. 이 작품은 한 생명이 온 우주의 기운을 받아 탄생하는 것을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을 통해 보여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의 변화도 느낄 수 있고 자연의 순환과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도 맛볼 수 있다. 비가 내리는 장면은 슬픔을, 넓고 푸른 바다는 포용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고래는 도전과 열정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 지구와 인간에게 원천의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태양에 가 닿았다가 다시 사뿐사뿐 지구의 땅으로 내려와 드디어 긴 여행을 마친 너는 마지막 종착지인 엄마 품에 포근히 안긴다.
우주를 이루는 4원소를 흙, 물, 불, 공기라고 한다. 하나 더 보태자면 빛이 될 것이다. 세상을 이루는 기본적인 원소들이 모여 인간과 꽃, 나비, 비, 호랑이, 바위, 산 등을 만들어 낸다. 그런 면에서 이제 갓 태어난 아기는 세상 모든 요소들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그림책은 인간이 혼자만의 힘으로 태어나고 살아가고 세상을 이룬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버리고, 온 자연과 우주가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구성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리듬을 타듯 넘실대는 아름다운 언어의 향연
류한월은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라는 언뜻 들으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분야의 전문가로 오래 활동하면서 여러 책도 출간한 작가이다. 어느 순간 그림책에 반해 수백 권의 그림책을 보며 그림책의 언어와 구성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림책 《모든 순간, 너였어》를 출간하면서 딱딱한 이미지의 공대 출신 작가에서 말랑말랑한 시적 언어를 부드럽게 구사하는 작가로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누가 음을 붙이면 서정적인 노래로 불러도 좋을 만큼 언어의 말맛을 잘 살린 글과 한 순간의 아름다운 장면이 앙상블을 이뤄낸 그림책 《모든 순간, 너였어》는 아기의 탄생을 앞둔 예비 엄마를 비롯하여,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여러 독자들에게 아름다움을 한껏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