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19-20
부르디외는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성향'으로 아비투스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그 자신의 삶의 경험 속에서 착상되었다. 어려서부터 길러진 부르디외의 예민한 사회적 감수성과 특권에 대한 거부감은 그를 잘 싸우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그의 이러한 아비투스는 훗날 세계적인 석학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아 가면서도 결코 권력에 영합하거나 명성을 좇아 허망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 주었다.
p. 53
부르디외는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철학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오히려 철학과의 대결 및 단절을 통해 사회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적 삶을 새롭게 직조하였다. 부르디외는 존재의 문제를 살피느라 개별 존재자들에게는 무심했던 철학의 관행을 깨고, 무방비 상태로 삶의 현장에 던져진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일상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p. 103
사회는 우리의 실천에 의해서 계속 재생되는 것이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비투스는 구조화된 것이지만 구조화하는 것이다. 구조는 개인의 실천적 성향을 형성시키고, 성향은 일상적 활동을 통해서 구조를 재생산한다. 그런 점에서 아비투스 이론은 행위의 원리를 행위자의 자유로운 선택과 합리적 결정에서 찾는 자원적 행위이론과는 차이를 보인다.
p. 140
사회적 장에서 투쟁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의 실천은 전략적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즉 성취 지향적인 주체의 주관적인 계산에 기인한 전략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다분히 무의식적인 아비투스에 의한 전략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흔히 합리적 선택이론과 게임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합리적 계산이란, 객관적인 장의 구조적 위기 상황이나 주관적인 심리적 위기 현상 때문에 아비투스가 작동되는 데 실패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p. 172
부르디외는 사회적 장의 상징적 가치를 두고 발생하는 집단 간의 대결이나 권위의 불평등한 질서를 포착하기 위해서 현실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자본 유형을 끌어들인다. 이는 경제적 계급과 더불어 위신, 명성, 영예 등과 같은 사회적 인정도 중요한 불평등 요소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베버의 제안에 대한 응답이었다.
p. 212
부르디외에 따르면, 계급은 살아 있는 집단으로서 확인 가능한 한에서만 실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기존 계급이론의 문제는 연구자가 재구성한 '종이 위의 계급'을 곧바로 실재하는 계급으로 오인한 논리적 비약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이론적으로 구성된 종이 위의 계급과 실재하는 집단과의 일치성을 계급의 개념적 틀에 맞춰 쉽게 가정해서는 안 된다.
p.244
부르디외는 스스로를 표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소외자들을 대변하고, 어떻게 지배이데올로기가 상징폭력을 통해서 자연스러운 규범으로 통용되게 되는가를 들춰낸다. 따라서 지배적 통념의 감추어진 재생산 기제를 드러내는 그의 사회학은 근본적으로 저항적이다. 그는 사회세계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드러내 보여 주는 자신의 사회학이 소외된 사람들에게 심리적 임상 효과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