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카프카에 대해 너무 많이,
동시에 너무 적게 알고 있다”
별나고 어두운 천재 작가, 그 이상의 카프카
옥스퍼드 카프카 연구소 소장 캐롤린 두틀링어의 카프카 가이드,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기념하여 한국어 번역판 출간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작가 중 한 명이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명성을 지닌 프란츠 카프카(1883~1924). 권력, 처벌 그리고 소외와 같은 주제들이 대두되는 그의 음울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소설과 이야기 들은 현대적 삶의 상징이 되었다.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은 카프카의 삶과 작품 그리고 문학적 영향에 대한 명확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제시하고, 이를 둘러싼 기존의 무수한 신화를 뒤집는다. 그의 텍스트는 사실상 ‘카프카적인 것’이라는 클리셰가 암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고, 다채롭고, 명랑하며 아이러니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상정되는 것만큼 결코 어렵거나 불가해하지도 않다. 옥스퍼드 카프카 연구소의 공동 소장인 저자 캐롤린 두틀링어는 카프카 작품들의 스타일, 이미지 그리고 내러티브적 관점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의 재발견을 돕는다. 카프카의 텍스트가 당대와 현재 우리 시대의 관심사에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보여 주면서, 이를 보다 넓은 문화적, 역사적 그리고 정치적 문맥 속에서 고려한다.
은총이자 저주, 카프카의 명성을 둘러싼 딜레마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며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프란츠 카프카는 그동안 주로 우울하고 고립된 천재 작가라는 단편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어 왔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카프카적’(kafkaesque)이라는 수식어는 국경과 분야를 초월하는 그의 영향력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이 표현이 어떤 불가해함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만큼 우리에게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카프카적’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상이한, 심지어 양립 불가능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카프카의 별나고 어두우면서도 코믹한 줄거리를 지칭할 수 있고, 그의 텍스트를 지배하는 부조리하고 억압적인 분위기 일반을 일컬을 수도 있으며, 또는 독자의 예상에 반항하고, 단정적인 해석에 저항하는 특수한 내러티브 기술을 일컬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카프카적인 것의 개념은 이를 유비쿼터스적인 것으로 만들 만큼 충분히 모호하나, 이 편재성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이는 카프카 텍스트들에 대해 뭔가 인지할 수 있고 구분할 수 있는, 심지어 유니크한 무엇인가가 있음을 암시하면서도, 동시에 이 특성이 카프카 텍스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이되고 모방되거나 혹은 진정으로 패러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14~15쪽)
게다가 이 핵심 용어의 의미는 카프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변신』과 『심판』(또는 『소송』)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한데, 카프카는 결과적으로 이 두 작품 모두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두 텍스트에서 카프카의 보편적 상징성이 탄생했다면 이는 그의 덜 알려진 작품들, 다채로운 이미지들을 필히 희생시킨 결과일 것이다.
카프카의 진정한 실체를 맞닥뜨리기 위한 도전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은 카프카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전기적 요소를 가질 뿐만 아니라 카프카 작품 중 영어로 번역되지 않은 생략, 수정, 대안적 형식, 단편 그리고 폐기된 초안 등 텍스트의 주변부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통합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카프카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 그가 살았던 당대의 문화적‧사회적‧역사적 맥락을 톺아보는 장, 그리고 카프카의 여러 텍스트를 클로즈 리딩을 통해 분석하는 장을 통해, 우리는 카프카와 그의 텍스트가 갖는 다양한 면면과 만나게 된다. 특히 이 책은 그의 잘 알려진 텍스트와 덜 알려진 텍스트를 병치함으로써 기존 카프카 해석의 좁은 범위를 넘어선다.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은 ‘카프카 텍스트’로 돌아가 내적 긴장들과 복잡성을 면밀하게 읽어 냄으로써 왜 그가 가장 유명한 현대 작가들 중 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카프카 텍스트로부터 단순히 죄와 권력, 처벌과 소외라는 큰 주제들을 발견하고 만족하는 데에서 그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카프카의 글 대부분이 미완성으로 남았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관성 있는 해석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카프카 텍스트의 유동성과 잠정성을 인정하며 그 무정형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열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끊임없이 살아 있는 텍스트,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더욱 흥미로운 카프카
이 책은 ‘카프카의 텍스트는 난해하다’라는 생각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주저하는 독자들을 그의 흥미진진한 작품 세계로 초대한다. 카프카의 『심판』을 낭독할 때면 친구들이 박장대소해서 낭독이 중단되곤 했다는 막스 브로트가 전하는 일화는, 카프카의 작품에 깊이 들어가 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모든 예상을 빗겨 가는 카프카의 작품만큼 재미있는 텍스트도 드물다. 카프카의 작품세계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명랑하고, 아이러니하며, 독창적이고, 유연하며, 열려 있다.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맞아 번역된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은 세계의 문학연구자들과 강사들에게 유용한 지침서일 뿐만 아니라, 카프카에게 매혹된 일반 독자들이 카프카의 문학이 던지는 우리 삶의 질문을 마주하고, 다양한 해석을 시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카프카가 죽은 지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이곳의 맥락에서 카프카의 현재성을 발견하는 것, 그리하여 카프카 작품의 후생(Nachleben)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독자들의 몫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