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장
산상수훈(1): 팔복
(마 5:1-12; 눅 6:17-26)
2. 주님은 설교 도입부에서 여덟 가지 복 또는 덕을 제시하시고, 각각의 복에 알맞은 상을 말씀하셨다. 주님은 하나의 문장에 “복이 있다.”라는 표현과 함께 각각의 덕을 소개하시고, 그에 대한 상을 말씀하셨다. 문장의 전반부는 공덕으로서의 복과 관련되고, 후반부는 상으로서의 복과 관련된다. 상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덕을 소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상을 원하는 사람은 상 받기에 알맞은 일 하기를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 복받을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달려올 것이다. 또 해야 할 일을 말해 줄 때 집중하여 경청해야 한다. 만일 상을 갈망한다면, 싸움을 피하지 말라. 상이 주어지는 일을 열심히 행하라.”
팔복에는 양면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소망 속에서 경험되며, 천국 본향에서는 실제로 경험된다. 덕이 탁월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은혜로 복을 받고, 천국에서는 영광의 팔복을 받을 것이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그들은 영이 가난하기 때문에 복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에 복을 받으며, 나머지 팔복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3. 예수께서 입을 열어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어쩔 수 없기 때문이나 속임수가 아니라 자유로 선택하여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공덕에 상응하는 상이다.” 여기서 마음의 가난은 세상에 대한 사랑, 즉 세상을 사랑하는 사랑이 붙잡고 매달리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피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부, 사치, 영예 등에서 발견되는 모든 기쁨을 철저히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팔복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부귀와 육적인 쾌락을 멸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재능을 무시함으로써 자신이 선함에도 불구하고 무익하며 사람들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부를 멸시하는 것의 출발점은 자신을 멸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진실로 겸손히 자기 자신을 내려다본다면, 자신을 위해서 세상 물건을 무시할 수 있고, 자신을 후대하지 않으면 외적인 것의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가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자벌적인 가난과 참된 겸손을 암시한다.
팔복은 어떻게 이해해도 우위로 차지한다. 첫째 의미에서, 가난은 그리스도와 영적 건물의 기초를 따르려는 사람의 첫 번째 완전함이다. 재산에 짓눌리는 사람은 방해를 받지 않고 가난의 거울이신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이 세상의 덧없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이다. 나는 사랑하는 것을 자유로이 섬긴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