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을 잊은 결과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이전에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다르게 세상이 변화해가고 있다. 메르스 정도로 끝나겠지 싶었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지난 50년을 통 틀어 전 세계가 동시에 가장 전쟁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팬데믹 사태를 맞고 보니 우리가 얼마나 인간 중심으로만 살아 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동물들의 세계를 침범해서 인간 위주로 바꿔 놓았고, 석유를 써대며 하늘을 날아 열 몇 시간 차이가 나는 먼 나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여행을 하곤 했다.
자연스러워지고 나면 사람들은 잊는다.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누구 덕분에 편하게 지낼 수 있는지,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없던 것들을 넘치게 누리고 낭비하며 산다는 것 모두를 다 잊었다. 그에 대한 대가로 우리는 전 세계를 공포로 뒤덮은 바이러스를 얻었다. 당연한 것들이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펜데믹 시대에 우리가 돌아봐야 하는 것들
초기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렇게 오랜 시간 전 세계를 잠식해나갈 거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확진자 증가로 인해 사람들은 각자의 집에서 잠시 멈추게 되었다. 도시가, 나라가, 세계가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이 멈췄다. 그러고 나니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에 살던 동물들이 마을로 내려오기도 했고, 부옇던 베네치아 앞 바닷물이 맑아져 해파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택배로 사야 할 물건이 어마어마하게 늘었고 그로 인해 택배 기사들이 고된 노동으로 고통 받는 것도 선명하게 목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온전히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야 하고, 나를 위해 누군가가 어둡고 힘든 시간에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만 편안하게 살 것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사는 모든 존재들이 온전해야 나 역시 온전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맞춤한 그림책이 나왔다.
첫 소설 《언더그라운드 맨》으로 휘트브레드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믹 잭슨이 글을 쓰고, 런던 시내 유명 레스토랑에 그림을 그리고, 포트넘 앤 메이슨의 홍차 패키지에 그림을 그리며, 치즈회사의 치즈 그릇에 멋진 그림을 그리는, 전방위 일러스트레이터 존 브로들리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 《우리가 잠든 사이에》가 바로 그 책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는 팬데믹으로 공황에 빠졌던 사람들에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나를 위해 밤늦은 시각에 일하는 사람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말해준다.
펜데믹 이후 깨닫게 된 눈물겹도록 소중하고 따뜻한 일상
한 아이가 아늑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간다. 스르르 눈이 감기는 기분이 너무 좋다. 방은 넓고 아이가 자는지 확인하는 아빠와 함께 사는 고양이가 있다.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안온하고 따뜻한 밤이다. 아이가 푹 잠들었을 때 누군가는 말똥말똥 깨어서 몇 시간 전에 아이가 탔던 버스를 청소하느라 바쁘다. 화물 트럭은 택배 물건을 싣고 밤새도록 달리고 택배 회사에서는 누군가 우편물과 택배 상자를 분류하고 빵집에서는 새벽부터 빵을 만든다. 어떤 가게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필요한 걸 살 수 있도록 밤늦은 시각까지 문을 열어둔다. 24시간 다니는 택시가 있어 급하게 가야 할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소방관들은 잠들지 않고 기다렸다가 종소리가 울리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불을 끄러 달려간다. 병원 또한 밤이 없다. 밤에 아기를 낳는 사람도 있고 간호사나 의사들은 밤이라도 환자들의 체온과 맥박을 체크해야 한다. 어느 동네에 있는 엄마 아빠는 잠 못 드는 아기를 위해 기저귀를 갈거나 젖을 먹여야 한다.
마을 바깥 숲에서는 올빼미가 들판을 날고 박쥐들도 호수를 건너간다. 배고픈 산토끼는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 가끔은 비가 내리는데 비는 냇물에서 강으로 흘러가고 강물은 바다를 찾아간다. 먼바다에서는 배들이 긴 항해를 하고, 수백만 개의 별들이 배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어느 날 누군가는 잠을 뒤척일 수도 있다. 무서운 꿈을 꿨을 수도 있고. 잠이 통 오지 않는 날에는 그 시각에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밤을 살아가는 동물들도 떠올려 볼 수 있다. 소방서와 병원, 24시간 문을 여는 식당과 카페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때로는 먼 나라의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친구들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어느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나 친구와 썰매를 타는 아이, 바다에서 헤엄치는 아이들의 삶을.
우리가 푹 자고 난 아침에 밤새 일한 사람들은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 이를 닦고 이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해가 뜨고 우리는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지만 그 사람들은 잠들어 또 다른 날을 기약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니 첫 페이지에 엄마가 없었던 궁금증이 그제야 풀린다. 아이 엄마는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였고 밤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집에 와 잠자리에 든 것이다.
말 그대로 평화로운 일상이다. 펜데믹 사태를 맞지 않았더라면 평화로운지도 모르고 평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라고 여길 만한 그런 날 중 하나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나니 눈물겹도록 소중하고 따듯한 일상이라는 것을 알겠다. 배경이 영국이고 영국 자연 환경을 그리고 있지만 세계 어디에 빗대어도 유사하고 평범한 하루이다. 이 책이 코로나19 블루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면 좋겠다. 소중한 우리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힘써 주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이 그림책이 대신 건넬 수 있을 것이다.
인종과 성, 종교의 구분 없이 전 세계 사람들과 동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그러면 그림 속에 또 다른 이야기들이 보인다. 밤에 일하고 있는 모든 곳에 남자와 여자가 다양하게 나온다. 버스 청소하는 사람, 빵을 만드는 사람, 소방관 등등 어느 곳에도 남자만 가득하다거나 여자만 가득한 곳이 없다. 심지어 우는 아기를 달래고 잠을 재우는 부분에도 어느 집에는 아빠가, 어느 집에는 엄마가 나온다. 우편물을 분류하는 postmen도 원서를 보면 postmen and women으로 나온다. 작가 믹 잭슨과 화가 존 브로들리는 마치 마음을 맞춘 듯이 성인지 감수성을 발휘하여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만들어냈다. 그에 반면 밤늦은 시간 문을 연 가게 장면에서는 부족한 인종 감수성이 보였다. 원서에는 동양인 여성으로 보이는 점원의 눈매가 쭉 찢어져 있었다. 번역자 김지은 선생님의 지적으로 눈매 수정을 저작권사에 정중히 요청했고 다행히 화가는 민감한 문제라는 걸 잘 알겠다면서 직접 수정해 주었다.
이 책 처음과 끝에 나오는 아이의 가족은 일명 다문화 가정이다. 엄마는 유색 인종이고 아빠는 눈이 큰 백인 같다. 아이는 엄마를 닮아 피부색이 다르다. 이 가족뿐 아니라 책 전반에 피부색이 다른 이도 많고 누구는 페즈(터키 모자)를 썼고 누구는 터번을 쓰고 있고 누구는 페도라를 썼다. 종교도 국적도 인종도 다양한 사람들이 골고루 나온다. 마치 전 세계를 이 작은 도시에 축소해 둔 것처럼.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하룻밤 자고 나면 무섭고 비참한 뉴스가 쏟아진다. 어디서는 인종차별로 인해 흑인이 총에 맞아 죽고, 또 어디서는 종교적인 문제로 21세기인 지금 참수를 당하기도 한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늘어나고 인수공통 질병 또한 빈번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유토피아적인 어느 공간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숲에서는 동물들이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가고, 인종, 종교,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한 곳에서 평화로이 공존하는 그러한 세상을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가끔은 골짜기와 언덕에 비가 촉촉이 내려.
그 비는 냇물을 이루고 냇물은 강으로 흘러가고 강물은 바다를 찾아가지.”
자연의 순리란 바로 이런 거야, 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비가, 냇물을 만나고 강으로 가서 바다까지 흘러가는 순하고 무해한 흐름. 우리가 지금 이 책과 함께 돌아봐야 할 진리가 무엇인지 조용하고 힘 있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