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본문일부
1. 문제 제기
바울의 사상 속에서 몸이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몸은 바울 서신에서 총 91회 사용되었다. 사용빈도만 보아도, 몸이 바울 서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높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 속에 중요한 개념을 진술할 때마다 어김없이 몸을 언급한다. 바울이 몸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몸은 다양하고 또 풍성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몸은 어떠한 개념들을 구체화하는 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몸이 중요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몸 연구가 깊이 있게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애석한 일이다.
몸이 하나이면서 동시에 많은 지체를 가진 것처럼 교회도 한 공동체이면서 많은 지체를 가진다. 특별히 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몸을 통해서 더욱 구체화 된다. 몸은 틀림없이 교회를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교회가 몸의 의미를 전부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몸은 더욱 풍성한 의미를 내포한다.1 새로운 몸 연구는 로빈슨(John A. T. Robinson)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로빈슨의 저서 『몸』(The Body: A Study in Pauline Theology)은 몸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것으로 인정받는다.2 로빈슨은 바울 서신 전체를 아우르며 몸의 의미를 밝혀낸다. 로빈슨의 핵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몸으로 표현된 공동체와 동일시된다는 것이다. 로빈슨이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성을 흐리게 만든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로빈슨이 몸의 의미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로 제한하지 않고 더욱 확장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로빈슨의 연구는 몸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공한다.
로빈슨 이후에 몸연구는 다시 정체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몸의 의미가 교회론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점은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현실은 몸의 새로운 의미를 찾기보다 이전의 연구 결과를 답습하고 있다. 특히나 아쉬운 점은 누구도 성경 본문으로 직접 들어가 몸의 의미를 밝히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세밀한 주석적 작업을 통해서 몸의 의미를 밝히는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성경 본문에 기초한 몸 연구는 바울의 몸 사상을 보다 풍성하고 정확하게 자리매김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몸을 통해서 성경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2. 연구 목적과 방법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존의 몸 연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개념을 밝히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몸은 더욱 풍성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이미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의미에서 몸 개념이 풍성하다고 할 수 있는가? 만약 몸이 다양한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면, 그 개념들과 교회론 개념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러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성경 본문 안으로 들어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 연구는 로마서로 제한한다. 로마서는 몸이 두드러지게 많이 나타나는 성경 가운데 하나이다. 몸은 로마서에 총 13회 사용되었다(1:24; 4:19; 6:6, 12; 7:4, 24; 8:10, 11, 13, 23; 12:1, 4, 5). 몸이 사용된 구절들을 큰 단위로 묶어보면 6개로 구분된다. 몸이 사용된 부분은 각각 1장, 4장, 6장, 7장, 8장, 12장이다. 바울은 각 부분에서 같은 내용을 진술하지 않고, 다른 내용들을 진술한다. 각 부분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내용 안에 흐르는 신학적 개념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 연구의 목적은 먼저 로마서의 몸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몸에 함축된 신학적 개념들의 관계를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