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위로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다만 이 세상은 본래부터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우리는 그의 나직한 속삭임을 통해 깨닫는다.
“몹시 외롭고 막막하고 지치는 날이 있었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앉아 불을 끈 채로 한 덩어리 어둠이 되어 있다가 겨우 일어나 막차를 타러 가는 길
이었다.
사무실을 걸어 나와 골목을 지날 때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정거장횟집의 수조를 보았다. 늘 스쳐 지나가는 수조가 그날은 왜 그렇게 커 보였을까.
텅 빈 수조 안에는 멍게 한 마리가 가라앉아 있었는데 멍게를 보는 순간 나는 왜
갑자기 울컥해져 버렸는지, 어쩌자고 멍게를 붙들고 엉엉 울고만 싶었는지.
수조 바닥에 가만히 가라앉아 있는 멍게와 세상에 납작 엎드려 가만히 살아 있는 내
가 다르지 않아서 온종일 멍게를 들쑤셨을 성가신 뜰채와 나를 들쑤신 성가신 하루
가 다르지 않아서 수조 속을 이리저리 굴러 간신히 살아남은 멍게의 밤과 만신창이
가 되어 간신히 걸음을 떼는 나의 밤이 다르지 않아서 여기가 물인지 뭍인지 가늠할
수 없던 밤.
곤히 잠든 멍게를 흔들어 깨워 소주 한 잔 부어 주고 싶던 밤….”
- 본문 〈잘 자라, 멍게〉 중
이 책은 고되고 쓸쓸한 날들 가운데 시인 서영식에게 찾아온 일상의 작은 깨달음
들을 시라고 해도 좋고 산문이라고 해도 좋을 언어로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위 ‘잘 자라, 멍게’는 28페이지에 나온다. 나머지 글들도 전부 그렇게 따듯하고 뭉클하다. 읽다가 한 번에 다 읽기가 아까워 잠시 멈추고 가슴에 보듬는 책이 있다면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하지만 제목만 보아 가볍고 감상적이기만 한 책일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이 책이 보여주는 세상의 진실들은 무겁고 아프며 냉혹하다.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들을 담담하고도 따스하게 풀어내는 시선에서 시인의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와 세계를 관조하는 깊이가 느껴지는데 그는 심지어 버스의 흔들리는 손잡이나 망해버린 꽃집을 통해서도 이 세계와 인간의
틈새를 들여다본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흔들리고 있는 채로 더 흔들리고 있는 이를 향해 가만히 손을 뻗어 주는 일이 곧 사랑이 아닐까요. 내가 몹시 흔들리던 날 나보다 더
흔들리던 당신이 가만히 나를 붙잡아 준 것처럼.”(25쪽)
“그러니까 내가 꽃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
는 불러도 꽃은 사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예뻐하던 그 꽃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 한
번도 꽃을 산 적 없으니 꽃집이 문을 닫은 거지요.”(49쪽)
이 책을 쓴 서영식은 중견 시인이자 브랜드 컨설팅 관련 기업가이다. 조그만 사무실 하나로 시작해 국내 최고 기업들을 컨설팅 하는 위치로 회사를 일구었지만, 그는 자신의 성공담에는 결코 관심이 없다. 모든 사람이 성공을 바라지만 현실은 대부분 그렇지 않으며 시인 또한 실패의 돌들을 쌓아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는 성공한 존재들보다는 실패한 존재, 나아갈 힘을 잃은 존재들에게 더 연대 의식을 느낀다. 그래서 시인은 함부로 위로하거나
설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약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내가 절망에 가까워져 있을 때 나를 위로하는 것은 힘내라는 말이 아니다. 나와 같은 처지
인 사람을 만나서 그도 꾸역꾸역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29쪽)
성공한 사람들이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모두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설령 그렇게 해도 다 성공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위로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시인은 다만 자신의 가난과 외로움, 남루한 삶에 얼룩진 생채기가 무엇인지 그저 말할 뿐이다. 힘없고 가진 게 없는 사람도 말은 할 수 있고, 말에 귀 기울일 수는 있기에. 견딜 수 없었던 아픔들, 괴로운 삶의 틈바구니로 들이치던 빗물들, 간신히
비추던 햇살들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그렇게 견뎌내고 살아낸 시인의 음성이 닿을 때 이 세상은 죽었던 나비가 되살아나 날갯짓하듯 놀라움으로 거듭나지만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본래부터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이었음
을 우리는 그의 나직한 속삭임을 통해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