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김근희 · 이담 부부 - 그림 그리는 부부의
느리게 사는 삶, 느린 소비, 스스로 돌보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두 분의 느리게 살아가는 일상은
EBS 〈우리만 이런가-부부, 수작을 부리다〉에 소개되었습니다.
https://youtu.be/ZGIPBiMMEO0?si=jBkXiXq54Sduf1ms
이 책은 『고치고 만들고 가꾸는 조각보 같은 우리집』의 개정판입니다.
거대한 생산과 소비의 쳇바퀴에서 잠시 멈추기로 했다
자고 나면 새로운 것들이 또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 더 저렴한 물건들이 사람들에게 손짓한다. 요즘은 무엇이든 많이 만들어지고 빨리 써서 버려진다.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더 많은 물건을 사기를 원한다. 그 소비는 정말 필요한 소비일까. 무엇을 위해 우리는 매일 더, 더 많은 소비를 하며 살아가는 걸까. 의문이 든다. 남들이 보기엔 한심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소비가, 우리의 속도가 과연 맞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시간이 필요하다. 거대한 소비의 쳇바퀴에서 잠깐 멈추어 서는 건 어떨까.
거꾸로 가는 시간, 멈추고 비우며 느리게 살아간다
그림을 그리는 부부인 김근희와 이담은 뉴욕에서 살며 오히려 느린 소비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두 사람은 20년 동안 미국에서 그림을 그리며 전시회를 하고, 그림책에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지내왔다. 그러다가 13년 전 잠시 한국에 오게 되어 머물다가 지금은 ‘느린산 갤러리’에서 그림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 살면서 새로운 상품들이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물건의 홍수를 바라보며, 저자는 오히려 소비를 멈추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든 의문, 이런 식의 소비가 결코 우리에게 어떤 만족도, 위안도 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부부는 소비를 멈추고, 가진 것들을 비우기 시작했다. 비우고 나니, 오히려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필요하다면 지금까지 가진 물건들을 분해해 다시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어낸다. 집에서 먹는 것을 단순하게 만들고, 사먹는 일에서 자유로워지는 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하고 스스로를 살리는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 이러한 작은 실천들을 통해 두 사람은 그들의 생활을 단순하고 느리게 바꿔나갔다.
1부는 미국에서의 삶 - 더 이상 물건을 집으로 들이지 않고 비우는 사십 대 부부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았다.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 작업을 하는 따뜻한 일상과 나무를 분해해 새로운 가구를 만들어가는 일, 건강한 식탁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2부에서는 한국으로 돌아와 설악산과 인연을 맺고, 설악산을 오르며 만난 작은 생명에 대한 감동, 그러나 서서히 망가져가는 산과 자연의 안타까운 모습,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는 삶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부부는 요즘, 당진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와 흙과 더 가까운 하루를, ‘느린산 갤러리’를 지어 따뜻하고 평화로운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이처럼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비움이라도 시작해 볼 수 있는 동력이 되기를
이 책을 만들면서 저자 분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내려간 적이 있었다.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지어진 ‘느린산 갤러리’, 그곳에는 그동안 선생님들이 그리신 그림과 작업한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원고에서 보았던 다시 만들어진 가구들을 직접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더불어 잔잔해졌다.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단 하나뿐인 나무 가구들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재료들이 이렇게 알뜰하게 다시 쓸모 있는 것들로 재탄생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일상의 시간들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멈추고 비우는 삶의 모습에, 진짜 어른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접 농사지은 밀로 빵을 만들고, 텃밭에서 따온 재료들로 만든 천연 피자를 그날 점심으로 먹었다. 집안 곳곳, 그분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쓸모 있는 것들의 존재를 느꼈다. 그 어떤 화려한 소비도 없지만, 하루하루 건강하고 즐겁게, 느리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닿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을 만들었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않는 ‘느림’, 일상에서 실천하는 진짜 ‘느린’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닿아, 어떤 계기가 되어 느린 삶을 살아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