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는 만물들 속에서 본체가 되어 이 세계의 작용을 낳는 존재다. 만물은 생겨나면 상(象)을 지니게 되고, 이 상이 이루어져서는 수를 가지고 헤아릴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 된다. 이렇게 구체적이어서 수를 통해 헤아릴 수 있는 생명체[物]들이, 움직임[動]에 의해 작용을 일으켜 행하게 된다. 그리고 생명체들은 이렇게 행함을 통해, 이 세계 전체의 근원인 도에서 얻은 것으로서 자기만의 구체적인 덕(德)을 드러내게 된다. _27면
‘한 번은 음이었다 한 번은 양이었다 함(一陰一陽)’이 시작함이 되어 바야흐로 선(善)으로 계승되고 맨 처음 성(性)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렇게 하늘과 사람이 주고받으며 오고 가는 즈음에 단지 이 생하는 이치를 끊어서 처음과 시작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선(善)이 생겨 나온 곳을 미루어 보고 그 덕을 기려서 ‘으뜸 됨’이라 하는 것이다. 성(性)을 이룬 뒤에는 명(命)이 우리 몸에 엉겨 있고 으뜸 됨의 덕이 이어진다. 이에 ‘인(仁)’이라는 명칭이 세워진다. _45면
건괘의 여섯 위(位)는 모두 용의 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본디 어떤 것은 귀하고 어떤 것은 천한 것이 될 수가 없다. 초효의 위(位)는 때[時]로 보면 ‘(물속에) 잠김’이다. 2효의 위는 때로 보면 ‘(밭에) 드러남’이다. 3효의 위는 때로 보면 ‘두려워함’이다. 4효의 위는 때로 보면 ‘비약함’이다. 5효의 위는 때로 보면 ‘(하늘을) 낢’이다. 상효의 위는 때로 보면 ‘목을 뻣뻣이 세우고 젠체함’이다. _52면
비록 그러하다고는 하지만, 군자가 세상에 나아가 쓰이는 데는 또한 이유가 있다. 하늘·땅에도 비색함이 있거늘 군자에게 어찌 이 비색함이 없을쏜가. 군자가 세상과 통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군자가 세상에 주는 것으로서의 덕[능력]이고, 또 하나는 군자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것으로서의 녹봉이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한다면, 세상과 담을 쌓는 것이 스스로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지 남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아무런 일도 하지 아니한 채 외물(外物)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그들과 소통하려 들지 않는 것일 뿐이다. _189면
음과 양이 수적으로 서로 필적하면 각기 서로의 짝을 구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 음과 양의 수가 서로 필적하지 않으면, 음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달고 양에게는 쓰며, 음은 주고 양은 구하는 처지가 된다. 그런데 주는 이가 하나이고 구하는 이는 많으면, 단 것을 열망하면서 이로움의 구렁텅이로 여기게 되리니, 다툼은 바로 이러함에서 비롯된다. 오직 존귀한 자리를 차지한 채 주는 것을 잘 관리하는 이에게는 다중이 그 기세에 눌려서 한갓 베풂을 기다리기나 하는데, 바로 대유괘가 이러하다. 이를 지나치는 이는 이러한 상황을 맡아서 관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같음’은 ‘다름’이 출현하는 문이고, 동인괘가 상징하는 상황은 싸움을 저장하고 있는 곳집이다. _20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