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나 마법이라고 말하라고요? 아저씨, 그날 우리 뭐 했냐, 이렇게 말할 때나 그날이라고 하는 거고, 마법은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환상적인 걸 마법이라고 하는 거죠. 생리라고 말하면 어디 덧나요? (9쪽)
그런데 저 생리 중이에요. 호르몬 폭발. 왜 뉴스 기사 보면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미약, 술 마셔서 심신미약 되잖아요. 생리로 인한 심신미약은 인정 안 돼요? 왜요? 지금은 자살 충동이 들어서 저를 칼로 찔러 죽이고 싶어요. 저는 죽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자꾸만 죽고 싶어져요. 이거, 심신미약 아니에요? (37쪽)
왜 여자가 일을 해서 돈을 벌면 안 되는 거지? 소방관도 경찰관도 다 돈을 버는 직업인데, 어째서 마법소녀는 하늘이 내려준 사명이라고만 하는 거지?” (51쪽)
우리는 꿈을 꾸었다. 의사가 되어 사람들을 치료하는 꿈을, 학교에서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꿈을, 노래를 불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꿈을, 혼자 사는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며 늙어가는 꿈을. …… 투쟁을 외치다 보면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다. 마법소녀, 투쟁! (69쪽)
손을 뻗어 언니의 얼굴을 매만지고 싶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살살 먼지를 털어내고, 오늘은 내가 먼저 일어났다고 자랑하며 볼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84쪽)
너 같은 괴물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냐는 뜻으로 들리는 건 내 착각이고 자격지심이다.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이제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언니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많이 놀랐을 텐데 괜찮냐고, 얼굴을 쓰다듬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 심장이 옥죄이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럴 심장이 없으면서도. (95쪽)
실은 알고 있다. 내가 선을 그으면 그은 대로, 사근사근하게 말하면 사근사근한 대로 깔아뭉개고 멋대로 휘두르려 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이 시간에 밤길을 걷는 건 다연하고, 아르바이트가 아니더라도 청정 구역이면 낮이고 밤이고 걷고 싶고 걸을 수 있다. 놀라고 무서워서 몸이 굳은 것도 내 탓이 아니다. (128쪽)
기물을 파손하고 다수의 사람에게 공포감을 조성했지만 다친 사람은 다행히 없었다. 나에게는 실질적인 폭행 증거가 있으나 이걸로 처벌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니. 어떤 방법으로든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내가 겪은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에 참담해졌다. (137쪽)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샤워 타월에 샤워 젤을 묻혀 왼팔부터 오른팔까지 닦고, 샤워 타월을 펼쳐 등을 닦았다. 그다음에 샤워 타월로 가슴팍을 닦는데…… 레이저가 나왔다. 소리 없이 튀어나온 레이저가 파란색 벽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았다. (168쪽)
앨리스는 상처와 흉터, 굳은살이 사라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단단하게 붙잡고 두 눈을 빛냈다. “네가, 왕이 되는 거야.” “내가, 왕이 되는 거야.” (203쪽)
이곳에 모인 이들은 이미 깨달았다. 이제부터 여왕만이 오직 하나뿐인 왕이 되었음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추었다. (2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