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오셨습니까?”
부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초점 잃은 눈으로멍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다시 물었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어떤 문제로 오셨는지요?” 이번에는 남편을 보며 물었다.
“그게 말하기가 좀……. ” 남편이 주저한다.
“그래도 말해보십시오. 그래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집 사람이 속옷을 안 갈아입습니다. 교수님도 눈치채셨겠지만……. ”
남편이 열린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악취가 난 모양이다. ‘조현병일 가능성이 크겠구나.’ 속으로 그렇게 짐작하며 남편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씻지도 않습니까?”
“아니, 씻는 것은 잘합니다. 목욕도 하고요. 단지 옷만 안 갈아 입습니다.”
“그래요? 몸은 씻는데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러니까 작년 겨울에 우리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그
후로 아들이 입던 팬티와 속옷을 입고는 도무지 벗지를 않습니다. 겉으로야 드러나지 않지만 냄새가 너무 나서…… 저도 집에서 함께 지내기가 괴로워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참, 말도 안 합니다. 한마디도 안 합니다.” ___〈죽은 아들의 옷을 입고 자는 여자〉, pp33
“할머니, 제가 더이상 괴롭히지 않을 테니 이 노래 한 곡만 듣고 가십시오. 제가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제가 이어폰을 꽂아 드릴게요. 할머니, 큰아드님과 함께 들어 보세요. 그래도 되겠죠?”
휠체어에 앉아있는 할머니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장남이 어머니 손을 어루만지면서 나를 보고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차남과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장남에게 할머니 옆에 무릎을 구부려 앉게 하고는 그의 왼쪽 귀에 이어폰 하나를 꽂아 주고 나머지 하나는 할머니 오른쪽 귀에 꽂아 주었다. 그리고 노래가 계속 반복되어 나오게끔 조작하고는 시작 버튼을 눌렀다. ___〈슬픈 미소〉, pp38
내가 환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이 있다. 끊임없이 자살을 생각하고 또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하여 입원한 환자가 퇴원 후 처음 외래를 방문했을 때, 그때 나는 말한다.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저를 찾아 주어 고맙습니다.”
그 환자가 처음에는 일주일마다 나중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나를 찾을 때 나는 늘 대화의 끝을 이렇게 맺는다.
“밖에서 생활하면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많이 들었을텐데 자살을 시도하지 않고 저를 찾아 주어 고맙습니다. 진심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환자가 눈물을 흘린다. ___ 〈환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 57
5월 어느 봄날 오후, 진료실에 한 여자가 울고 있고 두 남자는 가만히 있다. 남편은 창밖으로 무심히 시선을 던지고 있고 나는 컴퓨터 모니터 뒤에 숨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창을 통해 스며든 한낮의 햇살이 진료실에 천천히 퍼지면서 여자의 얼굴을 비춘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다. 침묵을 깨고 여자가 말한다.
“미안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서. 눈물이 마른 줄 알았는데 또 나오네요.”
티슈를 여자에게 건네주며 내가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도와드릴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알고 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남편이 하도 가자고 해서요.” 여자가 힘없이 대꾸한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뒤따른다. 그들이 나가자 나는 수화기를 들어 외래 간호사에게 말한다.
“방금 그분 외래 접수 취소해 주세요. 한마디도 적은 게 없기때문에 그대로 취소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다음 분 들여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수화기 너머 간호사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늦은 봄날의 따가운 햇살 때문인지 갑자기 눈이 부시고 주위가 온통 하얗게 보인다. 이렇게 봄날은 가는가 보다. ___1권, 〈이렇게 봄날은 가는가 보다〉, pp75
85세 영감님이 신경과에서 자문 의뢰되어 왔다.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해서 자식들이 걱정되어 아버지를 모시고 신경과를 방문했다가 그쪽에서 치매는 아닌 것 같고 정신과 질환이 의심되니 정신과로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한다. 장남과 차남 두 아들 내외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는데, 진료실 안에 앉는 자리가 세 곳 밖에 없어 차남 부부는 서서 우리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신체적으로 영감님은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의식도 명료했고 내 질문도 정확하게 파악하였고 대답도 적절했다. 장남에게 아버님이 어떤 엉뚱한 말을 하는지 물었다. 장남 말로는 금년 1월 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후로는 아버지 혼자 사시는데- 최근 들어 아버지가 거의 매일 새벽에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를 만났다고 하신다 했다. 아들은 아버지 꿈에 어머니가 나타났구나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아버지를 찾아가 함께 살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평생을 지낸 집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아내가 매일 아버지 집을 방문해 식사를 챙겨드리는데 낮 동안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르신. 자주 할머니를 보십니까?” 내가 물었다.
“보는 게 아니라 만나지.”
“얼마나 자주 만나십니까?”
“거의 매일 만나지.”
“그렇군요. 꿈에서 만나십니까?”
“꿈은 아니야. 왜냐하면 내가 임자를 만지고 쓰다듬어 주거든.”
“그렇군요. 만나니까 기분이 어떠셨나요?”
“좋으면서도 슬퍼. 내가 손을 잡아 주면 임자가 울어. 내가 얼굴을 쓰다듬어 주면 임자가 눈물을 흘려. 곧 어디론가 가버려. 그게 슬퍼.” ___ 〈사랑은 만지는 것이다〉, pp81
내가 말했다. “저 개인적으로는, 환자 분은 치료를 받을 권리도 있지만 동시에 치료를 거부할 권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인은 우울증이 아니라 실존적인 딜레마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놀랍군요. 교수님은 제 마음을 이해하시는군요. 똑같은 의사인데 왜 담당의사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여자가 묻는다.
“의사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부인의 암을 치료하는 의사는 부인의 감정보다 암 치료에 더 많은 신경을 쓸 것입니다. 반면 저로서는 부인의 슬픔과 고통, 바람과 소망을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저에게 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가 말했다.
“아닙니다. 남은 시간 동안 하시고 싶은 일 많이 하십시오.”
내가 말했다. 여자와 남편은 돌아갔고 나는 자문 의뢰지에 이렇게 적었다.
〈환자는 우울증이 아니라고 판단됨. 우울증은 욕망이 소멸된 상태인데 이 환자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이지만 가능한 우아하게 보내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음. 치료를 거부하는 것도 그런 욕망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됨.〉 ___ 〈치료를 거부할 권리〉, pp87
일주일 후에 여자와 남편이 다시 외래로 방문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남편이 내게 하소연한다.
“교수님, 집사람이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유를 물어보니 글쎄, 한다는 소리가 약을 먹으면 악몽을 꾸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
“그래요? 그것 이상하군요. 제가 부인과 면담해 볼 테니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남편이 나가자 내가 부인에게 물었다.
“방금 한 남편 말이 사실입니까?”
“예.”
“악몽을 꾸지 않아서 약을 먹지 않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내가 물었지만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는 부인을 돕고 싶습니다. 부인이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 처방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 이유만이라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가 진지하게 설득하자 부인이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악몽을 꾸지 않으면 우리 애를 만날 수가 없어요. 악몽을 꾸어야만 애를 볼 수 있어요.”
그 말을 하면서 부인이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내가 티슈를 건네주자 그녀는 눈가를 닦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___〈밤마다 악몽을 꾸어야 사는 여자〉, pp97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매일 부인과 남편, 그리고 아들이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시간 날 때마다 자주 해야 합니다. 하루라도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밥은 굶어도 그 말은 꼭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뗏목 만들기〉입니다. 아무리 큰 나무라고 하더라도 한 그루만으로는 거센 풍랑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작은 나무라도 여러 개를 묶어 뗏목으로 만들면 풍랑이 아무리 거세도 견딜 수 있습니다. 가족이 세 명이니까 서로 몸을 묶어 뗏목을 만들어봅시다. 아! 3명이 아니고 4명이네요. 저도 뗏목에 몸을 묶겠습니다. 그에 대한 약속으로 제 핸드폰 번호를 드리겠습니다. 뗏목이 흔들릴 때마다 연락하십시오. 제가 뗏목이 뒤집히지 않도록 돕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자식 잃은 부모에게 신경쓰는 이유는 그들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VIP 환자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원죄가 있다. 오래전에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경험이 별로 없었을 때,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찾아와 너무나 슬퍼하면서 자신도 죽고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그러려니 하면서 듣고 그냥 우울증 약만 처방해 보냈다. 얼마 후 죽은 아들의 아버지가 찾아와 아내가 자살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살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때 난 깨달았다. 아! 죄의식은 전염 되는구나.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가족 전체를 묶어 뗏목을 만들어야겠구나.___〈뗏목만들기〉, p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