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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신과 의사의 37년간의 기록 1

죽은 아들의 옷을 입고 자는 여자


  • ISBN-13
    978-89-98043-25-4 (04330)
  • 출판사 / 임프린트
    안목 / 안목
  • 정가
    18,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1-3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김철권
  • 번역
    -
  • 메인주제어
    건강, 인간관계, 개인발전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건강, 인간관계, 개인발전 #정신의학 #정신분석 #심리치료 #우울증 #공황장애 #정신분열 #행동치료 #말치료 #정신과의사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8 * 188 mm, 368 Page

책소개

37년 동안 기록한 한 정신과 의사의 방대한 임상기록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저자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의대를 갔고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37년 동안 진료실에서 상상의 현실이 아닌 현실 그 자체의 아픔과 고통을 마주하며 그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환자들과 나눈 대화, 진단, 치료과정에 이르기까지 총 4권, 한 권당 80여편의 이야기가 모여있는 37년간의 임상체험기록은 19세기 이후 객관적인 과학의 도래와 함께 사라져버린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임상기록집으로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

 “진료실에서 만난 수백 명의 환자에 대한 기록이 넘쳐 충돌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침묵하려고 했다. 수많은 글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또 다른 글을 보태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문득 진료실에서 그들과 나누었던 말을, 그들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곧 의무감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책으로 내게 되었다. 이 책들은 지난 37년 동안 진료실에서 날아다닌 말들을 채집해 모은 하나의 도감圖鑑이다.”   ___ 들어가는 말, pp13

 

우울증부터 중증 정신질환까지 고통받는 환자들과 나눈 생생한 대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식이 죽은 뒤로 속옷을 갈아입지 않은 여자의 손을 끌고 진료실에 들어온 남편은 냄새가 너무 괴로워 정신과를 찾았다고 말한다. 어떻게 치유될 수 없는 상실의 상처를 치료한단 말인가. 자식을 잃고 가슴에 박힌 가시를 빼달라는 환자에게 저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 저는 가슴에 박힌 가시를 빼는 의사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부인의 가슴에 가시가 박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의사입니다. 자식이 죽으면 어미는 그 가시가 박힌 채로 살아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억지로 뺀다고 빠지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가슴의 통증만 더 심해집니다. 너무 아파 견디기 어려울 때는 큰소리로 울부짖고 흐느끼십시오.” ___ 1권 〈죽은 자식의 옷을 입고 자는 여자〉, pp56

 

정신과 약을 직접 먹어보고 24시간 전화를 당부하는 의사

 

저자 김철권은 자신이 처방하는 정신과 약을 모두 먹어본다. 약의 부작용을 직접 체험해보고 환자의 자리에서 약을 처방하기 위해서다. 되도록 약보다 환자 자신의 의지로 병을 극복하도록 적극적인 행동지침을 밤새 고민한다.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핸드폰번호를 알려주고 위급할 때 24시간 전화를 당부하고 식사를 거부하는 환자에게는 직접 죽을 떠먹여준다. 죽기전에 단 한번이라도 혈육을 만나려는 환자를 위해 전국을 수소문해 직접 환자를 데리고 찾아간다. “오로지 환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만이 정신과 의사의 존재의미"라는 저자는 공감과 동감을 바탕으로 기계화된 의료 현장의 현실에서 보기드물게 ‘인간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의사다.

추천의 말에서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정신의학의 치료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인데 37년의 경험이 있다고 모두가 저자 김철권처럼 환자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근후 박사는 강조한다.

“우리가 공부한 정신치료 교과서에서 ‘환자들이 치료되는 수준은 치료자의 인격 수준에 비례한다’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환자를 대하는 치료자의 내공이 얼마나 쌓여야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 내 경험을 통해서 보면 수련의 초기 때는 교과서의 매뉴얼대로 따라 하느라 사람을 보지 못했다. 김 교수의 말대로 증상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아야 하는데…… 병이라는 것도 결국은 앓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는 병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가 없다.”   ___ 〈추천의 말〉, 이근후 (정신과의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다양한 인간 심리와 인간사회를 탐구하기 위해

67개국 여행, 영화학, 유행가 타로카드까지 동원한

환자 맞춤 치료법의 개발

 

저자는 증상 뒤의 사람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연구해왔다. 인간의 정신과 연관된 학문인 철학, 심리학 방면의 권위자들을 찾아 스승으로 모셨고 다양한 상황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심리를 파고들기 위해 시작한 영화 연구는 2016년 영화학 박사학위로 결실을 맺었다. 세계 각국의 풍속, 다양한 인간탐구를 위해 60여개국을 여행했으며 저자가 여행지에서 직접 촬영한 수만장의 사진 가운데 36장을 골라 표지와 본문에 실었다. 개별적인 환자들의 치료에 효과적인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하기위해 말치료, 행동치료, 타로카드, 마술까지 배웠고 그 내용들은 전 권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사의 고뇌, 의료 현장의 고충들에 대한 진솔한 고백

 

환자들의 사례만 담은 것이 아니다. 4권, 『나는 항구다』에서 저자는 환자들의 대한 애정의 크기만큼 환자들에게 점령당한 자신의 삶에 대한 고충 또한 진솔하게 토로한다. 환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잠들지 못하는 괴로움에 하루빨리 바다가 되고 싶고 하루에 80여명을 진료해야하는 대학병원 정신과의 외래 진료 후엔 공원으로 달려가 나무를 향해 넋두리를 한다. 

치료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환자들에 대한 죄책감, 정신질환 진단체계로 기계적인 처방에만 급급한 현대 정신의학계에 대한 회의들 그러나 이 모든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태어나도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저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이 바로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이라고 단언하다. 그 누구보다 여리고 착한 마음을 가졌기에 그만큼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앓는다는 것이다. 이런 착한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야말로 가장 보람된 직업이니 좋아서 자다가도 웃는다는 것이다.

 

공통의 사연들, 각자의 아픔들

정해진 답이 아니라 길을 찾게 하는

전공의들과의 질의응답

 

비밀엄수가 요구되는 의료인으로서 저자는 이 책의 저술을 위해 환자 본인들에게 직접 책의 취지를 설명하고 허락을 구했으며 비슷한 주제는 재구성하여 책의 내용만으로는 어떤 환자를 특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환자들의 임상기록이지만, 알기 쉽게 이야기처럼 소개된 각 에피소드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공통의 사연들을 다룬다.

또한 의과 대학의 의료 실습 현장에서 이루어진 전공의들과의 질의응답을 고스란히 기록함으로써 평생에 걸쳐 터득한 그의 치료 원칙을 알기 쉽게 전수한다. 1권~4권에 걸쳐 골고루 소개된 이 교육 과정은 사실 정신의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전무한 일반인들도 이니셜 K로 대표되는 전공의가 되어 개별적인 환자의 증상에 따라 최선의 치료방식을 찾아가는 현장에 동참하게 되며 독자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바라보고 점검할 수 있는 자가치유의 길을 열어 놓았다.

 

우울증 100만명의 시대,

갈등과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해줄 자가치유백서

 

우울증 환자 100만명의 시대다. 이 4권의 책을 읽고 나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한 숨은 환자들인 우리들에게 의사 김철권은 마치 모두의 정신과 주치의가 된 것 같다. 천편일률적인 분류 체계로 인간의 정신을 재단하는 이 기계화된 의료시대에, 의사 김철권은 유행가든, 마술이든 온갖 방법을 찾아내며 환자와 함께 울고 웃는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드리고 싶은 선물같은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재미로 읽히는 책은 아니다. 환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자기 성장의 한 단계를 높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___ 〈추천의 말〉, 이근후(정신과의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목차

저자의 말 ◆ 13

추천의 글 ◆ 19  

 

1 죽은 아들의 옷을 입고 자는 여자 ◆ 33

2 슬픈 미소 ◆ 38

3 바다를 잃은 노인 ◆ 44

4 밀양 할머니는 왜 나에게 돈 50만 원을 주었나? ◆ 48

5 가슴에 박힌 가시 ◆ 55

6 환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 ◆ 57

7 사례 토론 ◆ 62

8 삶의 비극은 짧을수록 좋다 ◆ 67

9 한 가지 제안 ◆ 69

10 이렇게 봄날은 가는가 보다 ◆ 73

11 제가 끝까지 듣겠습니다 ◆ 77

12 눈물이 앞을 가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겠어요 ◆ 80

13 사랑은 만지는 것이다 ◆ 82

14 치료를 거부할 권리 ◆ 86

15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요? ◆ 88

16 노란 옷 여인 ◆ 92

17 밤마다 악몽을 꾸어야 사는 여자 ◆ 95

18 27년 만의 만남 ◆ 99

19 눈을 열면 아들 목이 보이는 여자 ◆ 103

20 술을 마셔야 살 수 있는 남자 ◆ 112

21 뗏목 만들기 ◆ 115

22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우는 여자 ◆ 119

23 울기 위해 노래방을 찾은 남자 ◆ 125

24 적이 쳐들어온다 ◆ 128

25 멀리 갈 거에요 ◆ 131

26 시한부 인생 ◆ 139

27 상처받은 기억은 없어지지 않는다 ◆ 143

28 단 하나를 놓친 K선생 ◆ 147

29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 154

30 강산이 세 번 바뀌면 자살해도 되나요? ◆ 158

31 오빠의 선물 ◆ 161

32 넘지 말아야 될 선 ◆ 165

33 위시리스트 ◆ 167

34 울기 위해 나를 찾아온 여자 ◆ 171

35 칼과 얼음이 되는 말 ◆ 173

36 때로는 정신의학보다 철학이 더 필요하다 ◆ 176

37 눈물이 펑펑 나는 약 ◆ 180

38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187

39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막을 건너는 것이다 ◆ 190

40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 194

41 문신 ◆ 197

42 바닥에 대하여 ◆ 201

43 다리를 묶고 자는 여인 ◆ 203

44 외로워하는 사람들 ◆ 205

45 날짜를 문신으로 새긴 여자 ◆ 209

46 슬픔이 전염될까 두려워요 ◆ 213

47 보속증 ◆ 215

48 그럼에도 불구하고 ◆ 220

49 무조건 ◆ 222

50 인생에 즉문즉답은 없다 ◆ 225

51 마음속 휴지통을 큰 것으로 바꾸다 ◆ 227

52 그 자리에 더 오래 앉아 있으면 ◆ 231

53 정말 내가 잘못했다 ◆ 236

54 그때그때 삶을 즐겼어야 했는데 ◆ 238

55 그냥 한번 와 봤어요 ◆ 241

56 미다스 왕의 욕망에 몸을 던진 남자 ◆ 244

57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 두려워하는 남자 ◆ 250

58 용기야말로 진정한 살해자다 ◆ 255

59 병식 모순 ◆ 260

60 취생몽사주 ◆ 267

61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은 위험한 말이다 ◆ 269

62 당신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 273

63 세 가지 선택 ◆ 278

64 하소연하는 사람들 ◆ 283

65 아이에게 부모는 온 세상이다 ◆ 287

66 남자는 벌레다 ◆ 291

67 잉여 인간 ◆ 296

68 오직 사랑만이 자해를 치료한다 ◆ 305

69 검은 옷의 여인 ◆ 310

70 삶은 본래 그런 것이다 ◆ 315

71 삶의 고통에 대처하는 법 ◆ 318

72 분리불안 ◆ 322

73 자해는 나의 힘 ◆ 327

74 성깔이, 텅빈이 그리고 기대니 ◆ 333

75 매달 일주일씩 앞당겨 외래를 찾아오는 할아버지 ◆ 337

76 위로와 공감 사이 ◆ 342

77 자살 시도에 대한 단상 ◆ 346

78 모든 고통의 근원은 생각이다 ◆ 350

79 가르쳐주세요 ◆ 354

80 늦가을이면 언제나 우울해지는 남자 ◆ 356

 

에필로그 ◆ 363

삶은 애도다

저자소개 ◆ 367

본문인용

“어떻게 오셨습니까?”

부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초점 잃은 눈으로멍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다시 물었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어떤 문제로 오셨는지요?” 이번에는 남편을 보며 물었다.

“그게 말하기가 좀……. ” 남편이 주저한다.

“그래도 말해보십시오. 그래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집 사람이 속옷을 안 갈아입습니다. 교수님도 눈치채셨겠지만……. ”

남편이 열린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악취가 난 모양이다. ‘조현병일 가능성이 크겠구나.’ 속으로 그렇게 짐작하며 남편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씻지도 않습니까?”

“아니, 씻는 것은 잘합니다. 목욕도 하고요. 단지 옷만 안 갈아 입습니다.”

“그래요? 몸은 씻는데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러니까 작년 겨울에 우리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그

후로 아들이 입던 팬티와 속옷을 입고는 도무지 벗지를 않습니다. 겉으로야 드러나지 않지만 냄새가 너무 나서…… 저도 집에서 함께 지내기가 괴로워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참, 말도 안 합니다. 한마디도 안 합니다.” ___〈죽은 아들의 옷을 입고 자는 여자〉, pp33

 

“할머니, 제가 더이상 괴롭히지 않을 테니 이 노래 한 곡만 듣고 가십시오. 제가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제가 이어폰을 꽂아 드릴게요. 할머니, 큰아드님과 함께 들어 보세요. 그래도 되겠죠?”

휠체어에 앉아있는 할머니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장남이 어머니 손을 어루만지면서 나를 보고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차남과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장남에게 할머니 옆에 무릎을 구부려 앉게 하고는 그의 왼쪽 귀에 이어폰 하나를 꽂아 주고 나머지 하나는 할머니 오른쪽 귀에 꽂아 주었다. 그리고 노래가 계속 반복되어 나오게끔 조작하고는 시작 버튼을 눌렀다. ___〈슬픈 미소〉, pp38

 

내가 환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이 있다. 끊임없이 자살을 생각하고 또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하여 입원한 환자가 퇴원 후 처음 외래를 방문했을 때, 그때 나는 말한다.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저를 찾아 주어 고맙습니다.”

그 환자가 처음에는 일주일마다 나중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나를 찾을 때 나는 늘 대화의 끝을 이렇게 맺는다.

“밖에서 생활하면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많이 들었을텐데 자살을 시도하지 않고 저를 찾아 주어 고맙습니다. 진심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환자가 눈물을 흘린다. ___ 〈환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 57

 

5월 어느 봄날 오후, 진료실에 한 여자가 울고 있고 두 남자는 가만히 있다. 남편은 창밖으로 무심히 시선을 던지고 있고 나는 컴퓨터 모니터 뒤에 숨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창을 통해 스며든 한낮의 햇살이 진료실에 천천히 퍼지면서 여자의 얼굴을 비춘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다. 침묵을 깨고 여자가 말한다.

“미안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서. 눈물이 마른 줄 알았는데 또 나오네요.” 

티슈를 여자에게 건네주며 내가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도와드릴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알고 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남편이 하도 가자고 해서요.” 여자가 힘없이 대꾸한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뒤따른다. 그들이 나가자 나는 수화기를 들어 외래 간호사에게 말한다.

“방금 그분 외래 접수 취소해 주세요. 한마디도 적은 게 없기때문에 그대로 취소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다음 분 들여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수화기 너머 간호사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늦은 봄날의 따가운 햇살 때문인지 갑자기 눈이 부시고 주위가 온통 하얗게 보인다. 이렇게 봄날은 가는가 보다. ___1권, 〈이렇게 봄날은 가는가 보다〉, pp75

 

85세 영감님이 신경과에서 자문 의뢰되어 왔다.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해서 자식들이 걱정되어 아버지를 모시고 신경과를 방문했다가 그쪽에서 치매는 아닌 것 같고 정신과 질환이 의심되니 정신과로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한다. 장남과 차남 두 아들 내외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는데, 진료실 안에 앉는 자리가 세 곳 밖에 없어 차남 부부는 서서 우리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신체적으로 영감님은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의식도 명료했고 내 질문도 정확하게 파악하였고 대답도 적절했다. 장남에게 아버님이 어떤 엉뚱한 말을 하는지 물었다. 장남 말로는 금년 1월 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후로는 아버지 혼자 사시는데- 최근 들어 아버지가 거의 매일 새벽에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를 만났다고 하신다 했다. 아들은 아버지 꿈에 어머니가 나타났구나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아버지를 찾아가 함께 살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평생을 지낸 집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아내가 매일 아버지 집을 방문해 식사를 챙겨드리는데 낮 동안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르신. 자주 할머니를 보십니까?” 내가 물었다.

“보는 게 아니라 만나지.”

“얼마나 자주 만나십니까?”

“거의 매일 만나지.”

“그렇군요. 꿈에서 만나십니까?”

“꿈은 아니야. 왜냐하면 내가 임자를 만지고 쓰다듬어 주거든.”

“그렇군요. 만나니까 기분이 어떠셨나요?”

“좋으면서도 슬퍼. 내가 손을 잡아 주면 임자가 울어. 내가 얼굴을 쓰다듬어 주면 임자가 눈물을 흘려. 곧 어디론가 가버려. 그게 슬퍼.” ___ 〈사랑은 만지는 것이다〉, pp81

 

내가 말했다. “저 개인적으로는, 환자 분은 치료를 받을 권리도 있지만 동시에 치료를 거부할 권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인은 우울증이 아니라 실존적인 딜레마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놀랍군요. 교수님은 제 마음을 이해하시는군요. 똑같은 의사인데 왜 담당의사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여자가 묻는다.

“의사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부인의 암을 치료하는 의사는 부인의 감정보다 암 치료에 더 많은 신경을 쓸 것입니다. 반면 저로서는 부인의 슬픔과 고통, 바람과 소망을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저에게 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가 말했다.

“아닙니다. 남은 시간 동안 하시고 싶은 일 많이 하십시오.”

내가 말했다. 여자와 남편은 돌아갔고 나는 자문 의뢰지에 이렇게 적었다.

〈환자는 우울증이 아니라고 판단됨. 우울증은 욕망이 소멸된 상태인데 이 환자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이지만 가능한 우아하게 보내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음. 치료를 거부하는 것도 그런 욕망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됨.〉 ___ 〈치료를 거부할 권리〉, pp87

 

일주일 후에 여자와 남편이 다시 외래로 방문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남편이 내게 하소연한다.

“교수님, 집사람이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유를 물어보니 글쎄, 한다는 소리가 약을 먹으면 악몽을 꾸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

“그래요? 그것 이상하군요. 제가 부인과 면담해 볼 테니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남편이 나가자 내가 부인에게 물었다.

“방금 한 남편 말이 사실입니까?”

“예.”

“악몽을 꾸지 않아서 약을 먹지 않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내가 물었지만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는 부인을 돕고 싶습니다. 부인이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 처방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 이유만이라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가 진지하게 설득하자 부인이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악몽을 꾸지 않으면 우리 애를 만날 수가 없어요. 악몽을 꾸어야만 애를 볼 수 있어요.”

그 말을 하면서 부인이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내가 티슈를 건네주자 그녀는 눈가를 닦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___〈밤마다 악몽을 꾸어야 사는 여자〉, pp97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매일 부인과 남편, 그리고 아들이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시간 날 때마다 자주 해야 합니다. 하루라도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밥은 굶어도 그 말은 꼭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뗏목 만들기〉입니다. 아무리 큰 나무라고 하더라도 한 그루만으로는 거센 풍랑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작은 나무라도 여러 개를 묶어 뗏목으로 만들면 풍랑이 아무리 거세도 견딜 수 있습니다. 가족이 세 명이니까 서로 몸을 묶어 뗏목을 만들어봅시다. 아! 3명이 아니고 4명이네요. 저도 뗏목에 몸을 묶겠습니다. 그에 대한 약속으로 제 핸드폰 번호를 드리겠습니다. 뗏목이 흔들릴 때마다 연락하십시오. 제가 뗏목이 뒤집히지 않도록 돕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자식 잃은 부모에게 신경쓰는 이유는 그들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VIP 환자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원죄가 있다. 오래전에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경험이 별로 없었을 때,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찾아와 너무나 슬퍼하면서 자신도 죽고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그러려니 하면서 듣고 그냥 우울증 약만 처방해 보냈다. 얼마 후 죽은 아들의 아버지가 찾아와 아내가 자살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살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때 난 깨달았다. 아! 죄의식은 전염 되는구나.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가족 전체를 묶어 뗏목을 만들어야겠구나.___〈뗏목만들기〉, pp117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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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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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철권
1984년에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부산대학교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와 의학박사를 받았다. 부산대학교 재학 중에 소설로 부대 문학상을 받았다. 30대 초에 미국 UCLA 정신과학 교실에서 2년 동안 행동치료와 정신재활을 공부하고 돌아와 국내에 정신재활을 소개했고 한국정신가족협회와 한국정신사회재활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40대에 10년 동안 부산광역정신보건센터장, 광역자살예방센터장, 해바라기센터소장, 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을 맡아 지역사회정신의학을 실천했다. 50대 들어 소설가나 철학자가 되고 싶다는 젊은 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산대학교에서 영화 전공으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로이트라캉 정신분석학회에서 10년 이상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동시에 니체철학, 불교철학, 그리스신화와 비극, 사진미학, 타로, 마술 등을 공부했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주 저자로 80여 편의 논문을 쓰고 저서와 번역서 16권을 출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출판한 의과대학 교과서 『신경정신의학』에서「정신분열병」(제2판)과 「지역사회정신의학」(제3판)을 집필했다.영화 저널에 영화 논문 30여 편을 게재했다. 1998년에 세계정신사회재활협회가 선정한 정신재활 분야에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100명의 정신과 의사에 선정되었고, 세계 인명사전에 여러 차례 등재되었다.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3회, 부산시장 표창, 교육감 표창, 얀센 학술상을 포함한 정신의학 분야 학술상과 논문상을 7회 받았다. 현재 동아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진 : 김철권
정신과 의사. 37년 동안 70여개국을 여행하고 각국의 고유한 인간의 삶과 풍경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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