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p. 25 일반적으로 덕 윤리에서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 원칙보다는 널리 유덕하다고 인정되는 인격의 모델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현대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는 어떤 고정된 원칙이나 규칙에 의존하는 사람보다 세련된 감수성과 폭넓은 식견을 지닌 사람이, 즉 실천적 지혜를 지닌 사람이 제대로 된 도덕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pp. 69-70 만일 상대방 이성을 단지 성적 쾌락 추구의 수단으로만 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상대방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소외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상징인 남녀의 만남을 단지 자기중심적 쾌락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삶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녀 관계란 결국 다 그렇고 그런 거야’라면서 냉소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p. 97 만약 기존의 남성 위주의 사회가 여성으로 하여금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여건에서 사회생활을 하도록 한 요인이 있었다면 그것을 개선하는 정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 남성에게도 실질적으로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등 제도적 장치와 문화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진정한 인간의 평등을 구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p. 140 경제가 더 많이 성장하고, 국민총생산(GNP) 수치가 올라가면 국민의 행복도 그만큼 더 커진다고 믿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행복에 관한 여러 조사결과는 다른 진실을 말해 준다. 소득 수준이 삶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까지는 더 많은 소득이 더 큰 행복을 가져오지만, 기본적인 생활 수준에 도달한 이후에는 소득의 증가가 반드시 행복의 증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p. 190 이들에 따르면 진정으로 품위 있는 죽음이란 회생 불가능한 인간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의 의학적 치료를 다 했음에도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죽음이다. 이때 치료를 해도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할 수 없기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한다 하더라도 이는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이 아니다.
p. 235 현재 과학자들은 심각한 질병에 한해서 배아 대상 유전체 편집을 연구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기술이 허용되면 심각한 질병과 장애의 치료를 넘어 선호하는 형질 개선 등의 목적에, 즉 평범한 몸과 정신을 강화하고 증진하는 우생학적 목적에 사용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p. 259 동물에게 인간과 같은 도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고 해서 동물들을 함부로 대해도 좋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이다. 칸트 역시 동물을 괴롭히거나 큰 고통을 겪게 하고 몰인정하게 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깎아내리는 비인도적인 행위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를 위반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라고 보았다.
p. 298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한 인간 삶의 디지털화는 인간관계를 괴할 것이라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우리는 코로나19가 인간 대면접촉을 차단하고 사람들 간의 교류를 단절시키는 비상상황에서도 경제와 사회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위기 때문에 현실 공간은 곳곳이 막히고 폐쇄되었지만, 이와 반대로 디지털 공간은 더 넓고 더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p. 351 원자폭탄의 등장은 과학기술이 더 이상 가치중립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 준 대표적인 예이다. 이제 과학기술은 모든 이가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사회적 행위의 영역 한가운데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큰 힘을 가진 자에게는 그 힘이 커진 것만큼의 책임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과학기술인도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